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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Mar 12. 2024

호르케 원정대

(Day 4 보레스에서 베르두세도까지 27킬로미터, 38365 걸음)


 10월 25일, 호르케 원정대가 결성되었다. 호르케 부부, 콰다, 호세루이스, 조셉, 제이콥, 나까지 7명이 의기투합하여 아침 8시 준비를 마치고 어두운 아침을 깨우며 출발했다. 프리미티보 순례길 중에서도 제일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비교적 걷기 편안한 폴라데아얀데로 향하는 기본루트와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는 오스피탈레스 길이다. 오스피탈레스 길은 1200m 산을 오른 후 능선을 따라 15km를 걸어야 하지만, 힘겨움이 즐거움으로 바뀐다는 절대 풍경을 기대하며 우리는 씩씩하게 걸어보기로 했다.

 폰파라온(Fonfataon) 산, 호스피탈(Hospital) 산, 폴라(Palo) 산을 차례로 넘는 험한 코스, 능선길 지대가 높아 마을도 쉬어갈 바르도 없으니 급한 볼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걱정되었다. 그래도 점심을 대신할 빵, 초콜릿바, 오렌지, 물을 가방에 넣고 가니 마음만은 든든했다. 여러 해 이 길을 경험한 호르케 부부는 준비부터 남달랐다. 상하의 우의는 기본이고 바지 밑단으로 흐르는 물도 신발이 젖지 않도록 스패츠도 꼼꼼하게 장착했다. 방한 장갑까지 끼고 나선 부부의 모습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무릎 꿇지 않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듬직한 부부의 뒤를 따르니 걱정도 두려움도 조금씩 사라졌다.

 모르테라(Mortera)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낮은 풀만 가득한 능선길, 고원지대를 지날 때는 거침없이 불어대는 바람과 실랑이해야만 했다. 세찬 바람은 쓰고 있던 모자를 날려버렸고, 비와 우박 세례를 맞은 나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가쁜 숨이 차올랐고 손은 시리다 못해 손끝까지 얼어버릴 기세였다. 중세 후기 지나던 순례자들의 대피시설이나 휴게시설로 이용되었을 병원은 흔적만 남아 쉴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앞서 걷던 호르케 부부는 진즉부터 멈춰 서서 숨 고르기를 하는 중이다. 내가 다가가니 빨개진 내 손을 보자마자 호르케가 장갑을 벗고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입으로 가져가 호호 불더니 점퍼 지퍼를 내려 본인의 겨드랑이 속으로 쏙 집어넣는다. 옆에 있던 아내 로사는 호르케가 입김으로 녹인 손에 배낭에서 새 양말을 꺼내어 장갑처럼 끼워주었다. 이렇게 세상 따뜻한 부부가 또 있을까? 남편도 있었다면 이렇게 해주었을까? 순수하고 따뜻한 부부의 마음에 내 마음도 모닥불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 길을 정말 행복하게 걸어 보겠다고 한 번 더 마음속으로 다짐한 순간이었다.

 바람 부는 능선길에서 “뽀또 뽀또!” 외치는 호세루이스의 카메라를 보며 함께 걸음을 멈추었다. 한바탕 즐겁게 온몸을 흔들며 깔깔깔 큰 소리로 웃었다. 비바람도 막지 못한 흥겨웠던 순간이 영상과 사진 속 멋진 추억으로 남았다. 이 영상을 볼 때마다 두고두고 이 친구들이 그리워지겠지.

 세찬 비바람과 함께 배낭에서 빵을 꺼내어 흐르는 콧물과 섞어 먹으며 유쾌하고 조촐한 점심을 나누었다. 험난했던 오스피탈레스 길을 넘어 푸에르토델팔로(Puerto del Palo) 끝자락에 무지개가 떴다. 눈앞에 펼쳐진 일곱 빛깔 무지개를 보며 우리는 폭풍처럼 지나간 몇 시간을 벅차게 위로받았다.

 완만한 오솔길이 펼쳐진 몬테푸라도(Montefurado)에는 산타마리아 교회가 있다. 잠깐의 휴식 후 라고(Lago)를 지나 드디어 베르두세보(Berducedo)에 도착했다.

스페인에 도착해 100km를 걷는 동안 큰일 한 번을 제대로 못 본 나는 배가 묵직하고 단단해져 있었다. 로사는 배 아픈 나를 위해 저녁으로 치킨을 넣은 죽을 끓이고, 참치와 토마토를 넣은 샐러드도 만들어 주었다. 저녁 식탁에 둘러앉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지친 기색 하나 찾을 수 없다. 웃음꽃 피어나는 즐거운 수다, 우리의 정다운 밤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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