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메모한 줄)
길고 긴 연휴의 끝, 달력의 빨간 숫자가 끝났다. 남들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따뜻한 시간이었겠지만, 내겐 ‘일’이라는 단어로 꽉 찬 휴일이었다.
‘물고기자리는 쉼 없이 오픈합니다.’
SNS와 매장 문 앞에 공지글을 올리며 ‘나는 연휴 중에도 일과 연애 중이야!’라고 나에게 소리쳤다. 관광특구인 헤이리마을은 근처에 경모공원이 있어 추석 전후가 되면 많은 성묘객으로 북적대는 대목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영업을 하며 느끼는 고단함은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연휴가 다가오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신선한 재료를 확보하고, 손님들 맞을 준비를 하며 바쁘게 움직인다. 연휴 동안은 한순간도 쉴 틈이 없다.
가족들과 직원 식사를 챙기며 위아래층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했다. 물고기자리를 운영하며 종종거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언제쯤 뒹굴뒹굴하며 귤 하나 까먹을 수 있으려나….’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연휴가 끝난다고 해서 나를 위한 시간이 늘어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조금은 숨통이 트일 테니 말이다.
그나마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이 있다. 매일 새벽 6시, 모두가 아직 잠든 시간에 나는 조용히 일어나 나를 위한 걷기를 시작한다. 이른 아침의 선선한 공기는 나만의 힐링 타임이다. 하루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 시간이 나를 위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걸으면서 드는 생각은 늘 비슷하다. ‘오늘도 힘내자.’ 이 다짐 하나로 정신을 차리고 하루를 맞이한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물고기자리로 돌아와 커피머신을 켜고, 샐러드를 다듬어 찬물에 씻어 놓았다.
고향에 갈 수는 없지만 추석 기분은 내고 싶었다. 명절 전날이 되면 아이들과 몇 가지 전을 함께 부친다. 올해도 집안에 고소한 기름 냄새를 진동시키며 고향에 못 가는 아쉬움을 대신했다. 나는 빗소리가 들릴 때마다 프라이팬을 꺼내 전을 부쳤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그랬고, 나 역시 그랬기에 가족들 모두 비가 오는 날이면 으레 부침개를 기다린다. 김치전, 부추전, 파전, 호박전, 가지전, 배추 전, 감자전, 버섯 야채 전 종류도 이름도 내 맘대로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냉장고 속 채소가 상할 일은 없다. 돼지고기에 소금, 후추, 마늘을 넣어 밑간 하고, 채반에 받쳐둔 물기 빠진 두부 한 모를 으깼다. 혈액 순환에 좋은 초록 부추와 간간이 씹혀 느끼함을 잡아줄 빨간 고추, 익히면 베타카로틴의 흡수율이 높아지는 당근을 잘게 다졌다. 볼에 준비한 재료를 모두 넣고 달걀과 부침가루를 추가해 반죽을 치댔다. 단호박을 살짝 익혀 잘라두고, 고구마와 오징어도 손질도 마쳤다. 아침잠 없는 아들이 곁에 와 말을 걸었다.
“나는 뭐 할까?”
“우선 달걀 10개만 깨서 풀어주고, 튀김가루 꺼내줘.”
가끔 요리하는 것도 즐기기에 이제 웬만한 양념이 어디 있는지 한 마디면 알아서 척척 내미는 눈썰미 좋은 아들이 든든했다. 디자인을 전공해 좀 더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던 녀석은 공대생이다. 요즘 부쩍 외모에 관심이 많아졌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옷과 신발 사진을 보내며 “이거 어때?” 물어오는 품새가 아무래도 관심 있는 여자가 생긴듯하다.
달그락거리는 아침, 더 잘 수 없겠다 싶었는지 딸아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잠옷 차림에 주방으로 걸어왔다. 직장생활 2년 차에 짠내 나는 사회 맛을 알아버린 딸이다. 빨간 날 늦잠이 고플 텐데 알아서 일어나 주니 그저 고마웠다.
우리 셋은 죽이 척척 잘 맞는다. 딸은 식탁 위에 신문을 펼치고 전기 프라이팬을 준비했다. 아들은 인덕션에 올려둔 튀김 팬에 기름을 부었다. 나는 구워진 전을 담을 수 있도록 채반을 꺼내어 키친타월을 깔았다. 우리는 찰떡같은 호흡을 맞추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깻잎에 부침가루를 살짝 묻히고, 고기 반죽을 한 숟가락씩 떠서 삼각형 모양으로 접었다. 달걀물을 묻혀 프라이팬에 착착 구웠다. 동글동글 빗은 동그랑땡을 타지 않게 노릇노릇 잘 굽는 일은 인내심 많은 딸의 주특기였다. 튀김반죽을 한 방울 떨어뜨렸을 때 떠오르는 반죽을 보며 적당한 온도도 잘 맞춘다. 아들은 손이 바쁘게 고구마, 단호박, 오징어까지 바싹하게 튀겨냈다. 나는 식탁과 싱크대를 오가며 잘 구워지고 있는지, 도울 일이 없는지 살폈다. 아이들이 제 몫을 야무지게 해내는 모습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 이제 씻어. 나머지는 우리가 정리할게.”
아침도 거른 딸이 단호박 튀김을 한입 베어 물다가 시계를 보며 나를 재촉했다.
“그럼, 부탁해. 너희 손이 점점 빨라지네. 최고다! 정리하고 내려오면 같이 커피 마시자.”
아이들에게 뒷정리를 맡겼다. 기름배인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눈썹 휘날리게 단장했다. 아이들이 기특했다. 내 손 없이도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을 주방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물고기자리에 내려오니 셰프와 아르바이트생은 이미 출근해 있었다. 가게 안은 사방에 문을 활짝 열어두어 상쾌한 아침 공기로 가득했다. 거리에는 벌써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분주한 하루가 예상되었다.
‘오늘도 손님이 많겠구나.’
하나둘 자리가 채워지더니 주문이 밀려들었다. 숨 돌릴 틈도 없는 바쁜 시간이 찾아왔다. 주문 순서대로 셰프는 파스타를 만들고, 나는 피자와 샐러드를 맡았다. 아르바이트생은 주문받고, 테이블 세팅과 음료 준비, 서빙까지 분주히 움직였다. 좁은 오픈 주방이다. 몇 번이고 동선이 교차되었지만, 우리는 서로 부딪치지 않고 리듬을 타듯 맡은 임무를 척척 해냈다.
하지만 바쁜 주방에선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아르바이트생이 서빙으로 바빠지자 나는 음료를 만들고, 주문을 받는 동시에 피자를 꺼내려 급히 움직였다. 그때 마침 셰프가 오븐 문을 열고 있었고, 피자를 보기 위해 오븐 앞으로 가는 찰나 내 팔이 오븐 문에 스쳤다. 고통이 퍼지는가 싶었는데 팔에 화상을 입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로 찬물을 틀어 화기를 식혔지만, 후끈 달아오른 팔은 계속 욱신거렸다.
어쩌겠는가, 내 상처보다 급한 건 손님들이 기다리는 음식이었다. 나는 서둘러 얼얼하고 화끈거리는 팔에 화상연고를 바르고 다시 일에 몰두했다. 분주하고 정신없는 점심시간이 그럭저럭 끝나갔다.
오후 3시, 가게 안의 북적임이 잦아들고, 시끌벅적한 테이블도 어지간히 정리되었다.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점심을 챙기러 집으로 올라갔더니, 온 식구가 각자의 방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주방 설거지까지 말끔히 해두었다.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시큼한 열무김치와 오이를 썰어 넣어 국수를 한 양푼 가득 비볐다. 채반에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전도 접시에 소복이 담았다. 가족들과 직원들 모두 함께 점심을 나눴다. 배가 불러오니 온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제야 팔의 화상이 떠올랐다. 딸에게 팔을 내밀자, 소독약과 연고를 가져와 발라주며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상처가 깊어. 연휴 끝나면 병원부터 가봐야겠어."
걱정 섞인 딸의 말에 나는 살짝 웃어 보였다.
물고기자리로 내려오니 셰프가 미안한 눈빛을 보냈다.
"사장님, 많이 아프시죠?"
"괜찮아. 밥 먹으면 나아. 우리 모두 불조심, 칼 조심, 몸조심하자!"
셰프를 안심시키고 커피 한 잔을 내렸다.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순간, 하루의 피로가 조금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때 아르바이트생이 나에게 티슈 한 장을 내밀었다.
"사장님, 테이블을 치우다가 메모가 남겨져 있길래요."
‘맛이 없어서 남긴 게 아니라, 배불러서 남긴 거예요. 잘 먹었습니다.’
진종일 종종거리며 보내온 일상을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인생을 살맛 나게 해주는 건 대단하지 않다. 나는 이 메모 한 줄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