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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15. 2024

뜨거웠던 밴쿠버 오케스트라 무료 콘서트

Symphony in the park


해마다 여름이면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Vancouver Symphony Ochestra: 이하 VSO)의 무료 콘서트를 Sunset Beach와 Burnaby Deer Lake Park에서 감상할 수 있다. 


Sunset Beach에서 하루, 그다음 주에 Deer Lake Park에서 열리는데 2023년 Sunset Beach에는 무려 15,000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2024년 7월 13일 토요일이었던 어제, Deer Lake Park에서 열린 무료 콘서트에 다녀왔다. 작년에는 망설이다가 못 갔는데 이번에 다녀오고 나니 해마다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 전날

Deer Lake Park는 3년쯤 전에 딱 한 번 가 본 곳이라 지형도 주차장 위치도 기억이 안 났다. 마침 금요일에 버나비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길을 나선 김에 사전답사를 가 보기로 했다. 




공원과 연결된 시티홀 주차장에 차를 대고 표지판을 따라 걷다 보니 무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넓은 곳에 사람이 얼마나 찰까 궁금해졌다. 어디쯤 자리를 잡으면 좋을까 대충 훑어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구글에서 콘서트 풍경을 검색해 보니 돗자리도 있지만 대부분 캠핑용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작년에 캠핑용품을 대 처분했지만 혹시나 몰라 캠핑용 의자와 테이블, 돗자리는 남겨두었는데 참 잘한 일이었다. 


푸드트럭도 온다고 하니 시원한 물과 과일, 음료수와 과자 정도만 준비했고 음식이 여의치 않을 것에 대비해 점심도 넉넉하게 잘 먹어두었다.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나'라는 사람은 노는 일에는 정말이지 용의주도하고 치밀하다 못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콘서트 당일 4시 

지역 커뮤니티에 검색을 해 보니 공연 시작 최소 두 시간 전에는 가야 자리를 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럼 나는 최소 두 시간 반 전에 도착하기로 했다. 집에서 4시에 출발해 고속도로를 달려 어제 사전 답사를 했던 시티홀 주차장에 차를 댔다. 주차요원이 'VSO 콘서트에 왔냐'라고 묻더니 출구 가까운 쪽에 차를 대게 해 주었다. 


주차장은 아직 여유가 있는 상태. 너무 오버해서 일찍 왔나 싶었는데 '응, 아니야' 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왔다. 공원에 도착하니 이미 그늘자리는 빽빽하게 사람들로 들어차 있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자리도 앞쪽은 꽤나 사람이 많다. 



오케스트라가 연습하는 시간에 도착했기에 스피커의 위용을 파악하고 앞에 자리를 잡으려다가 기세에 밀려 뒤로 물러났다. 오케스트라가 개미만 하게 보여도 스피커가 웅장해서 소리를 즐기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이쪽이 더 듣기 편했다. 


기다리는 동안은 그늘막이나 우산을 허용하지만 공연시간 20분 전부터는 진행요원이 다니면서 모두 접으라고 한다. 이미 작열하는 태양은 뜨거운 김을 다 토해냈고 잔열만 남아있는 상태였기에 우산을 접어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곧 어디에선가 큰 그늘이 밀려와 사람들을 시원하게 덮어주었다. 


약 두 시간 반의 대기

출발하기 전에 아들에게 일러두었다.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고역이 될 것이야. 그냥 피크닉 간다고 생각하자. 피크닉의 끝에 오케스트라가 등장해서 콘서트를 하는 거지. 


아들은 다운로드한 게임 영상을 즐기고 나는 요즘 읽고 있는 '앵무새 죽이기'를 펼쳐 들었다. 곧이어 아들이 푸드 트럭에 관심을 보였고 아들이 좋아하는 타코를 사 와야 했다. 


아직은 한산한 푸드트럭의 모습. 



낮에 뜬 달과 나무를 보니 르네 마그리트가 생각났다. 


공원 끝에서 끝까지 꽉 들어찬 사람들


콘서트 시간이 가까워져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의 그 텅 빈 공간에 온갖 다양한 얼굴들이 점묘화처럼 잔디밭을 가득 가득 메웠다. 


콘서트 시작

저녁 7시 35분쯤, 진행자의 소개로 영어 이름 윌리엄이라고 하는 인디언 원주민이 인디언 복장으로 무대에 올랐다. 자신의 가족 소개와 인디언 노래 두 곡으로 콘서트의 오프닝을 장식했다. 그가 부른 Wolf song 은 어딘가 구슬프고 구성진 가락이 한국의 민요와도 어슴프레 하게 혼이 맞닿아 있는 느낌이었다. 


콘서트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모차르트의 호른 연주자는 런던에서 온 알렉스였는데 곡이 끝나자 지휘자가 '알렉스의 연주가 마음에 들었다면 다음 주에 있는 그의 공연에 관객이 되어 달라'며 깨알 영업을 하는 모습이 재치 있어 보였다. 지휘자는 지휘뿐 아니라 입담도 좋아야 하는 것 같다. 인터미션 전에 연주된 스메타나의 곡을 소개하면서 공원 뒤편에 마련된 VSO 인포메이션 부스에 신용카드를 탭 하면 도네이션을 할 수 있는 기기가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물론 인터미션에 바로 인포메이션을 찾아가서 $20에 나의 신용카드를 가볍게 탭 해주었다. 아들이 자기에게도 $20만 도네이션을 해달라기에 '너는 충분히 많이 받고 있다'며 어깨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곡은 스메타나의 Dance of comedian이었다. 한여름 페스티벌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음악이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이 곡은 2023년 무료 콘서트에서도 연주되었다. 


야외 무료 콘서트라고 하면 브리즈번에 있는 두 개의 다른 공원에서 락밴드의 콘서트나 디제잉 콘서트는 본 적이 있지만 야외 심포니 콘서트는 처음이었다. 락밴드나 디제잉은 자유롭게 영혼의 이끌림에 따라 춤도 추는 분위기였지만 클래식은 어떨까 궁금했다. 


평화, 여유, 아름다움, 편안함 

지속해서 관객이 유입 되었고, 푸드 트럭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식사를 사다 날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얌전히 앉아서 음악에 몰입했다. 돗자리를 깔아놓은 사람들은 누워서 하늘을 보며 음악을 즐겼고, 어린아이들은 돗자리 위에 엎드려 만화책을 읽거나 피자를 먹거나 비눗방울을 공중으로 날렸다. 


내가 기대하고 원했던 바로 그 분위기였다.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된 매너가 있는 야외 공연의 모습이었다. '끝난 줄 알았다 박수'가 한 번 있기는 했지만 그런 정도는 어디에서나 있는 일이니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작년에는 마치 연출된 것처럼 구스 떼가 하늘로 날아가는 장관이 연출되었다고 했는데 올해는 아쉽게도 그런 장면은 볼 수 없었다. 내년을 기대해 본다. 


콘서트의 끝

프로그램에는 인터스텔라가 마지막으로 연주될 것 같았는데 스타워즈 메인 테마곡이 엔딩송이 되었다. 인터스텔라는 너무 아름다웠는데 깜깜한 밤이었다면 더 기가 막힌 분위기가 연출되었을 것 같다. 


밴쿠버 공연 민심은 기립 박수에 후한 편이다. 어느 공연을 가도 기립박수 없는 마무리는 없었다. 역시나 스타워즈 엔딩 송이 멋지게 끝나고 관객들이 일어나 가열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지휘자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때면 나는 늘 속으로 '앵콜 곡 하나만!!'이라고 외친다. 내 마음의 외침을 듣기라도 한 듯 지휘자가 청중을 등지고 오케스트라를 향해 돌아서며 팔을 높이 들어 올린다. 


앵콜이다!! 기쁨을 느끼는 순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스타워즈의 Imperial March의 첫마디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돌고래 소리를 내 버렸고 (아무도 안 쳐다보는데) 자의식이 강한 사춘기 아들은 내 얼굴에 손을 흔들며 진정하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정리

앵콜곡까지 모두 끝나고 사람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있던 자리에 떨어진 휴지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사실 궁금한 건 이렇게 떠나면 이 공원 바닥에 쓰레기가 얼마나 뒹굴까였다. 한국에서도 이제 곳곳에서 야외 음주 금지를 하고 있는데 놀다가 떠나는 사람들의 정리 상태가 너무 엉망 이어서이다. 하지만 수천 명이 떠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으니 나도 사람들의 물살에 합류하여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주차장 출구 쪽에 차를 대서 빠져나오기가 수월했고 다스베이더의 여운이 남은 나는 이 여운을 좀 더 강하게 잡고 싶어서 아들에게 비엔나 필하모닉의 Imperial March를 틀어달라고 했다. 


서가 명강의 책 시리즈 중에 <음악이 멈춘 순간 진짜 음악이 시작된다>라는 책이 있다. 제목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동안 음악에 심취해 있는 듯 하지만 음악이 끝난 뒤에 밀려오는 여운이 진짜 그 음악이 전하고자 하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차르트는 '음악은 음표 안에 있지 않고 음표와 음표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에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음악은 듣기 전의 기대감, 듣는 가운데의 여백, 들은 후의 여운이 만들어내는 무정형의 아름다움이다. 





표지사진 : 2024년 7월 13일 Deer Lake Park에서 열린 VSO Concert 



*내 마음을 사로잡은 두 곡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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