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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an 15. 2024

말레이시아에서 한국학교 설립하기!

학교법인 말레이시아 한국학교의 설립 멤버가 되기까지! ('13-16')

현재 학교법인 말레이시아 한국국제학교(이전 학교법인 말레이시아 한국학교-이사회의 논의 따라 한국국제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여 쓰고, 한국 교육부의 승인도 받았다.)의 설립 과정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다. 나는 2013년 4월, 대한민국 외교부의 채용공고란에 '한국학교 설립 담당자 모집'이란 글을 읽고, 지원하게 되었다. 2011년 11월, 대한민국 외교부 중유럽과에서 독일어권 국가 외신통번역 사무보조원의 2개월 경력과 2012년 3월, 주한룩셈부르크대표부의 홍보인턴(PR Assistant) 3개월의 경력을 가지고 무대뽀로 지원을 했다. 지원 동기는, 고등학교 때까지 공교육과 대학에서의 사교육, 크게 말해 '교육'을 통해서 직장 생활도 하고, 번듯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이 업무에 지원하게 되었다.


1차로 서류합격 전형이 있고 난 후, 온라인 화상 줌채팅으로 주말레이시아대한민국대사관의 총영사님, 대사관의 1등 서기관, 그리고 곧 개교하게 될 말레이시아 한국학교의 이사장님까지 총 3분의 면접 전형이 있었다. 먼저 면접 내용은 무난하게 자기소개부터 시작, 윤공사님께서는 "외국에서 살게 될건데, 부모님이 걱정하지는 않으시는지?" 여쭤보셨고 나는 "외국 근무에 대한 부모님의 열정적인 지지가 있었다"라고 말씀드렸다. 류이사장님도 "혼자 근무해 본 적이 있는지?" 라고 여쭤보셔서 "팀으로 근무는 해 봤지만 혼자 근무를 해 본적은 없다"고 말씀드렸고, 왜 이일에 지원하게 됐는지 동기에 대해 여쭤보셔서 위에서 언급한 대로, "교육으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는데, 그걸 후배들에게 되갚아 주고싶다"라고 말하고 면접을 종료하였다.


한 일주일이 지났을까? 국내전화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나중에 알고보니 이 전화는 해외공관에서 쓰는 외교전화로 서울 외교부 전화번호가 뜬다.) 감사하게도 소중한 이 기회에 합격하게 되었고, 그 후 사업 담당자가 일주일간의 시간을 줄테니 먼저 서울에서 쿠알라룸푸르까지 왕복티켓을 구매하면, 실비지원해준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당시, 백수였고 돈도 없는 찰라 소정의 용돈과 비행기값을 엄마에게 빌려 쿠알라룸푸르로 행했다.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날, 아빠는 출근 전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엄마는 공항까지 나를 배웅해 주셨다. 나는 여행비자를 가지고 쿠알라룸푸르에 들어가게 되었다. 외국에 간 적은 많았지만, 언제돌아온지 모른다는 심정으로 해외에 간건 처음이라, 씁쓸한 심정이 들었다. 향후 이 여행비자는 대사관에서 이민국에 지원을 하여, 취업비자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도착하는 날, 나는 빠르게 인터넷에서 한인민박집에 단기숙소를 구했고 밤 12시가 넘어서 도착한 비행기는, 무섭기도 그지없는 야자수 나무를 뒤로하고 민박집으로 향했다. 현지에 1주일 정도 미리 도착해 근무 전, 필요한 휴대전화 심도 구매하고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현지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빨리 대사관으로 오라는 거다.


민박집에서 주말레이시아한국대사관(이하 "대사관"으로 줄임)까지 약 10분 정도 택시를 타고, 날아가

점심시간 이전에 도착을 했다. 도착하니, 현지에 미리 와 있는 나를 위해 윤공사님께서 점심을 사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공사님은 나를 현지에서 제일 맛있다는 딤섬을 파는 호텔에 데려가 주셨다. 당연, 다른 현지 직원, 마변호사님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그 후로 몇일, 대중교통으로 숙소에서 회사가 얼마나 걸리는지, 일단 회사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버스에 내려서 걸어가는데 약 10분 정도가 걸렸다. 걸어가는데 10분 정도 걸리니, 약 20-30분이면 넉넉할 것 같았다. 구글 맵을 보고 찾아가는데, 글쎄, 어떤 차가 옆에서 빵빵거린다. 마변호사님이다. 왜 지금 여기있냐고 물어보셔서, 쉬는 날이라 내일 출근 하루 전, 이미 출근해 본다고 말씀드리니 자기 차에 타라고하시면서 태워주셨다.


2013.5.1, 근로자의 날은 말레이시아에서 쉬는 날이 아니였기에, 나는 5월 1일부터 출근을 했다.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의 취업 비자를 대사관의 마변호사님께서 신청해 주셨다. 듣기론, 마변호사님께서 한국학교 사업을 함께 하기 위해 새로 임용되셨다고 들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될 분이시기에, 잘 지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첫 날, 나는 이**대사님께 인사를 하러 갔다. 대사님이 들으시기로는 내가 "씩씩하다"고 들었는데 "너무 조용해서 놀랐다"라고 하셨다. 사실, 대사님을 살면서 처음만나 좀 쫀것 같다. 앞으로는 좀 더 씩씩하게, 어른들께 인사도 하고 해야겠다. 대사관에 처음 출근한 날, 대사관이 이렇게 신기한 곳인줄 처음알았다. 외교부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작은 정부를 구성하는 대사관은 외교부 주재 서기관들 뿐만 아니라, 국방부, 국정원, 산자부, 한국은행에서 온 서기관들이 있으며, 큰 대사관은 교육부에서도 교육관을 파견한다고 한다.


나와 함께 한국학교를 일하실 분은 1등서기관 겸 영사, 김영사님. 그리고 학교의 교장선생님을 대행해 주실, 윤공사님. 교육, 문화 업무를 맡고 계신 정서기관님. 이렇게 세 분과 함께 교육부 업무를 맡게 되었다.첫 업무는 학교 기공식 행사를 열어라! 였다. 기공식, ground breaking ceremony라고해서 학교 설립에 도움을 주신 양국 (말레이시아-한국) 분들을 모시고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내 생애, 처음 맡은 행사이다. 정서기관님께서 "행사 진행해 본적 있어요?"라고 물으셔서 "아니오...없어요"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외교가에서는 참석자 관리를 RSVP라고 한다. 나중에 안건데, 프랑스어로 répondez s’il vous plaît(please reply)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VIP가 참석하시는지, 부재중이신지, 부득이하게 참석 못하시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표시를 해 둔 리스트를 말한다.


학교부지는 대사관에서 45분 정도 차로 떨어진 곳에 있다. SSP2(Sepang Science Park2)라는 곳에 땅을 lease(50년 임대했는데), 학교 건물을 짓는 데에만 건물용 정부 국고지원금이 책정 되었다. 확정된 국고지원금은 당시 한화로 15억원 정도 배정되었고, 국회-교육부-외교부를 거쳐 대사관에 오게 된다.


학교 부지에서 기공식을 열기로 하고, 대형 현수막과 야외에서 행사 할 때, 비가 자주오는 말레이시아의 날씨를 고려하여 캐노피(천막)과 의자를 함께 대여하게 되었다. 나는 행사 때, 전체 행사 관리도 하고 사회도 맡았다. 땡 볕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어른들에 눈에 좋게 보였던 것 같다. 같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사진: 왼 쪽, 마변호사님, 나, 학교 이사장님, 말레이시아 슬랑오르주 토지공사의 하지 록크만 사장님,  김은희 국회의원님, 캡틴 리 - 무관님)


기공식 이후에, 학교 설립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기금 모금도 해야했고, 1:1 매칭 조건으로 국고지원금 15억원이 지원되기 때문에, 우리 팀은 15억원이라는 큰 기부금을 모아야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외교활동을 펼치시는 대사님께서 많은 기부금과 약정서를 걷어 오셨고, 우리는 아래 교육부 장관님(서남수) 행사때처럼 교민들을 모시고 한국학교 설립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사진은 출근 3일 째, 대사관 내 연회장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님과 학교 이사장님, 한인회 회장님 등을 모시고 대사 배 설립 설명회를 열었다.)


나는 주로 대사관에서 시키는 모든 교육행정 업무, 통역, 사회, 기부금 모금, 기부금 관리, 주재국 회의 배석 등의 다양한 업무를 하게되었다. 주로 아래와 같이 슬랑오르주 주정부 주장관님(학교 부지가 있는 슬랑오르주의 행정 서열상 가장 높으신 분)이 계시면, 회의에 따라가 회의록을 작성하는 일을 하였다. 막내로서, 항상 한국을 대표하는 선물을 챙겨야했고 주재국 정부 인사들에게 대사관에서 지원하는 '설화수', '홍삼' 등을 선물하고 설명했다.


SSP2학교부지가 땅 구역상 Land Title이 안나와 학교 설립에 어려움이 있을 때, 대사관의 대사님과 학교 이사장님께서 쫓아가 학교 설립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학교 설립을 위해 수많은 미팅, 주재국 회의에 참여했다. 건축사 설계사로부터 수많은 어려움과 피드백을 들었고, 우리도 한국 측도 수 많은 회의의 결과물로 많은 디자인 변경을 요구했다.


현지 업체와 아무래도 많은 작업을 하다보니, 계약서 쓸일이 많다. 그 때마다, 영문 계약서 쓰는 법을 공부했고 옆방에 계신 마변호사님께 많을 것을 여쭤보았다. 영문 계약서를 쓸 때, 가장 중요한 점은 표로 한 장짜리 summary를 만들면 좋다. 영문 계약서는 한글로 된 계약서와 달리, 매우 길때도 많다. 특히 부지계약서의 경우에는 the supplementary agreement를 만들 때도 있다. 지레 영단어에 겁먹지 말고, summary를 만든다면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또 다른 정부 사업이나 PM을 할 때 중요한 점은, '동기'이다. 이 사업을 어떻게 실현시켜 갈지, 안된다고 하는 사업도 긍정적으로 봐야 할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학교는 꿈에 그리던 2016년 4월 12일, 학교운영 승인 (대한민국 교육부)를 받았고, 2016년 9월 1일 개교하게 된다. 나를 개교를 끝으로, 학교 설립에 몸 담은 시간이 벌써 3년이 지났다는 것, 그리고 나의 임무를 다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2016년 4월 30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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