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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Apr 19. 2023

'할머니 선생'이 되고 싶어

'할머니 엄마'는 사절이야.

"엄마! 내가 언니처럼 20살이 넘으면 엄마는 할머니 되는 거야?"

 할. 머. 니.

 말문이 턱 막혀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몽실이를 바라봤다.

 이렇게 묻는 우리 아이의 마음은, 엄마가 할머니가 되어 금방 하늘나라로 가시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 엄마가 빨리 늙어버릴까 하는 걱정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나는 아이의 말이 가슴에 팍 꽂히는 순간, '속상함'이라는 단추가 꽉 눌러졌다보다. 어리석게도. 목소리가 뽀족하게 나간다.


"너에게 엄마는 항상 "엄마"야. 네가 스무살이 되어도, 마흔 살이 되어도, 백 살이 되어도!! 우리 몽실이가 결혼해서 몽실이처럼 귀여운 아가를 낳으면 그 아이가 엄마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거지!"

"내가 백살이 되어도, 엄마는 죽지 않고 내 옆에 있을 거지?"

 몽실이가 내 가슴에 푹 안겨온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뽀족했던 내 태도가 괜시리 미안해진다.



사실,

나는 "할머니"라는 말에 그리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꿈이 뭐에요?"

 학생들이 그렇게 물어오면,

 "선생님의 꿈은 어서 할머니가 되는 거야."

 라고 대답하곤 했다.

 내 대답을 들은 우리 반 꼬맹이들,

 "에~~에~~ 거짓말이죠?"

 했었다.

 "정말인데!!"

 "왜요? 왜 할머니가 되고 싶으세요?"

 아이들은 어처구니 없는 내 꿈의 이유를 정말 궁금해했고, 그 이유는 학년이 끝나는 날, 말해주마 하고 약속했었더랬다.


  학년을 마무리 하는 1월(옛날엔 2월에 종업식을 했었는데, 요즘엔 1월에 종업식을 하는 곳이 많다.)이 되면 항상 마지막 인사말로 "할머니 꿈"의 이유를 말해주었다.

 선생님의 꿈은 정말 소박하다고.

 할머니가 되어 거실 한 가득 커다란 책꽂이를 만들거라고. 책꽂이에는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의 저서들, 자서전들을 가득 채워둘거라고. 동네 할머니들을 종종 우리 집 거실로 초대해서, 차를 마시며, 그 책들을 꺼내,


 "얘는 내가 2019년에 가르쳤던 아이라고, 그 때부터 이렇게 훌륭하게 자랄 것을 알았었다고"

 "얘는 내가 2020년에 가르쳤던 아이인데, 그 때도 정말 그림을 잘 그렸었다고"

 "얘는 내가 2021년도에 00에 근무할 때 지도한 아이인데, 그 때도 정말 감동적인 글을 잘 썼었는데, 정말 멋진 작가가 되었다고."

 그렇게 동네 할머니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선생님 꿈이라고.

 아이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선생님의 꿈 속 등장인물로 넣어주곤 했었다. 선생님의 꿈을 이뤄줄 수 있는 것은 너희들이라고.


 정말 그렇다.

 나의 소박한 꿈이다.

 내가 짧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르치고, 지지하고, 응원하고, 때론 꾸증하고, 격려했던 그 꼬맹이들이 훌륭하게 자라서 이 세상의 곳곳에서 빛이 되는 거. 그래서 그 순간을 그리며, 어서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었더랬다.


 동료 교사에게도 늘 입버릇처럼 "난 어서 할머니 선생이 되고 싶다"고 하면, 다들 "아휴~~"하며 고개를 절래 절래. 왜 하필 할머니 선생이냐고.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때론 동료 교사들에게도 무시 당하며 설움을 겪는 그런 할머니 선생이 왜 되고 싶냐고.

 조금이라도 젊어보이려고 피부 미용에도 힘쓰고, 다이어트도 하고, 비싼 옷으로 자신을 가꾸며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동료들에겐, 나는 철없어 보이는 한낫 꿈쟁이일지도 모르겠다.


 

  학기초에 자녀들의 담임이 연세가 지긋한 분으로 배정되었을 때, 낙담하며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을 본적이 많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노골적으로 "할머니 선생이야, 어떻게!!"하며 전화하는 학부모도 본 적 있다.

물론, 그분들이 어떤 편견과 생각으로 걱정하시는지 모르지는 않는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지 못하실 거 같고, 무능하고 고지식하실 거 같고, 옛 스타일을 고집하실 거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활동적인 체육 수업도 소홀히 하실 거 같고, 무엇보다도 아이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거 같은 막연한 걱정들.


 하지만, 난 오히려 경력있는 선배 교사들이 존경스럽다.

 내가 노력하고 준비해도 뛰어 넘을 수 없는 그 분들의 통찰력, 지혜, 너그러움, 여유!! 숨바쁘게 바뀌는 디지털 교육 환경에 대한 적응도, 새로운 교수법, 교육 자료에도 능숙하신 "할머니 선생님들!" 여전히 나는 그 분들을 따라가기 어렵고, 항상 그 분들께 배우고 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도, 젊은 교사와는 사뭇 다른 지혜와 사랑이 있다. 성과를 이뤄내기 위해 아이를 조급하게 지도하지 않으신다. 먼 앞을 보신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경청해 주신다. 나는 아이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아직도 서툴다. 마치 어머니의 손길처럼 아이를 다독여주시고, 들어주시고, 끌어주신다. 나는 여전히 조급하고, 어서 이 일을 해결해서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나가려고 아이를 재촉한다. 아이를 기다려주기엔 난 너무 바쁘다. 그러나 그분들은 기다려 주시고, 참아주시고, 때론 함께 걸어주신다.



그래서, 난 어서 할머니 선생이 되고 싶다.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힘없는 노인네, 무능한 늙은이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존재만으로 동료, 후배 교사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할머니 선생님. 아이들이 마음을 느긋한 마음으로 살피며, 등을 두드려주는 여유를 가진 할머니 선생님. 깊은 통찰력으로 아이의 먼 미래를 보며, 그에 맞게 교육해 주는 할머니 선생님. 언제나 달려가도 넓은 품으로 안아주며 위로해주는 그런 할머니 선생님을 꿈꾼다.


그렇지만, 나는 할머니같은 엄마는 사절이다!!

곧 아파 병들어서 제 곁을 떠날 거 같은 불안감을 주는, 그런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 나의 어린 시절처럼, 일찍 나를 두고 하늘나라로 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원망, 슬픔을 내 늦둥이 딸에겐 되물림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였을까. 몽실이 입에서 "할머니"라는 단어가 나오자 감정이 뾰족해져버렸나 보다.


몽실아, 네가 결혼해서

너처럼 예쁜 아가를 낳고,

그 아가가 다시 결혼해서

더 예쁜 아가를 낳기까지

엄마가 너의 옆에서 "엄마"로 남고 싶은 것은,

정말 지나친 욕심일까!


너에겐 "늙은이", "할머니"가 아니라,

평생 건강하고 씩씩한



그냥 "엄마"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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