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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Apr 24. 2023

그녀의 가방 속엔 사연이 있다

초1 책가방의 속사정

제법 묵직해졌다.

교과서를 모두 학교 사물함에 넣고 다녀도 몽실이의 가방은 항상 만원버스 같다. 아침엔 가볍게 출발했었는데, 하교할 땐 고객님(?)들을 가득 싣고 오곤 한다.


색종이 조각, 스티커 몇 장, 마이쥬, 막대사탕,

낙서같은 끄적임 흔적이 있는 찢어진 종이 조각,

고리가 빠진 키링, 완성한 색칠 학습지,

클레이부에서 만든 작은 클레이 작품,

그리고 아침에 다 채워보냈던 물병-이미 물은 다 빠져나간 상태.

안내장 파일도 반으로 구겨진 채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먼저 물병을 꺼내 싱크대에 넣어두고,

본격적으로 버려야할 것과

남겨둬야할 것을 분리하는 시간!

어김없이 몽실이가 다급하게 달려와서 내 손을 저지한다.


"안돼! 엄마, 안돼!"


버리면 안된다는 외침.


"이 건 방과후 선생님이 주신 거. 글씨 잘 썼다고 주셨는데, 방과후 선생님은 이런 간식 정말 많아. 내가 고를 수 있어. 난 추파춥스 골랐어. 정말 크지. 다른 사탕보다 더 크지?"

"이 것은 내짝 00이가 준 거. 내 짝은 색종이 접기 정말 잘 하는데, 다음엔 하트 접어준다고 했어. 나도 유치원 때는 하트 접었었는데 다 까먹었어. 짝한테 배울 거야."

"이 것은...."

"이 것은..."


종이 조각 하나 사연 없는 물건이 없다.

구겨진 종이조차 소중하단다.

새로 사귄 친구가 준 거란다.


엄마 눈엔 단지 쓰레기통에 버려질 재생 불가한 휴지 조각인데.

몽실이에겐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란다.


"알았어, 알았어, 안 버릴 게. 정리만 하자."

엄마의 말에도 안심이 안 되는 듯 내 옆을 지키며 매의 눈으로 내 손길을 살핀다.

한 두번 당한 것이 아니라는 듯. 삐딱한 자세로 팔짱까지 끼고 눈총을 준다.

그러고는 냉큼 책상위에 늘어놓아진 그 물건들을 낚아챈다.


"안 버린다니깐."

말은 그렇게 해도 엄마 머리 속은 바쁘다. 색칠 학습지는 2~3일 냉장고에 붙여 두었다가 슬그머니 처리해야겠다, 색종이와 종이 조각은 내일 당장 버려도 기억하지 못하리. 키링은 고쳐준다고 말하고 인형박스 안에 넣어야겠다. 공부시간에 이 키링을 얼마나 만져대며 헛짓을 했을꼬. 바쁘게 움직이는 손만큼 엄마 머리 속도 바쁘다.


몽실아, 엄마도 너의 소중한 추억들을 존중해! 하지만, 이 세상의 기억은 모두 다 안고 살 수 없는 거란다.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야 다시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지는 거지.

몽실이가 아직은 이해 할 수 없을 이야기는 엄마 속으로 삼켜본다.


학교에서 여러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몽실이처럼 이것 저것 주워담는 "수집가"들이 더러 있다.

쓸모있는 물건들을 수집해 주면 좋겠지만,

어른들 눈에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들을 가득가득 담는 아이들.

그 물건 하나 하나에 나름의 사연이 있어서겠지만,

온통 뒤죽박죽 엉킨 물건들 속에서

정작 자신이 필요한 것을 찾아내지 못해 쩔쩔매는 친구들을 종종 만난다.

서랍속엔 가위, 풀, 구겨진 학습지, 찢어진 교과서, 집을 잃은 색연필, 사인펜들이 서로 뒤엉켜서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


그 아이들은 수업 준비물을 챙길 때 항상,

"선생님, 저는 풀이 없어요."

하고 쪼르르 앞으로 나와서 도움을 요청한다.

"그래? 선생님과 함께 찾아볼까? 지난 번 쓰고 어디에 두었니?"

아이의 자리에 다가가서 책상 속에서 없어진 물건을 찾아주려 하면 쭈뻣쭈뻣 하는 모습.

책상 속에서 간신히 뚜껑 잃은 풀을 찾아서 주면, 머쓱한 미소.

"다음엔 쓰고, 제자리에 정리하면 좋겠다. 풀 뚜껑은 쉬는 시간에 책상 서랍 정리하면서 찾아보자."

선생님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다음 시간엔 쪼르르.

"선생님, 가위가 없어요."

"아마 네 책상 속이나 사물함에 있을 거 같은데, 같이 찾아볼까?"

이젠 민망한지 고개를 절래절래. 그리곤 시골 할아버지 창고같이 복잡한 책상 속에 손을 넣고 더듬더듬.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짝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가위를 빌려주면 그제서야 그것을 받아들고 활동하던 그 아이.


알림장에 00이가 준비물을 분실을 많이 하니, 잃어버린 물건들을 챙겨주십사 메모를 써서 보내 봐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쪼르르, "선생님, 지우개가 없어요" 한다.


아마도 습관이리라. 물건이 많으면 찾기 어렵기 마련. 쓸 것과 치울 것을 판단하여 자신의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습관이 평소에도 꾸준히 연습된다면 아마도 학교 생활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어렸을 때부터 자기 책가방을 정리하는 것, 책상 위, 서랍 정리하는 것, 장난감 제자리에 두는 것 등을 꾸준히 연습시켰을 때 자연스럽게 학교에서도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내 자녀가 학교에서 자신의 물건을 잘 정리하고, 잘 챙기는지 부모는 잘 알 수 없기에 저학년일수록 매일 아이의 가방을 열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없어진 물건은 없는지, 더 필요한 학용품은 없는지 대화하며 생활습관을 체크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



그녀의 가방 속엔 사연이 있다

가끔 아이의 책가방을 열어보고

경악할 때도 있지만,

그 물건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는 것도 초1 학부모로서 소소한 재미가 될 듯.


가방 속만 봐도 우리 아이의 학교 생활이 그려지는 교사맘이지만,

물건 하나 하나에 얽힌 이야기는

오직 몽실이의 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날 것의 초1 삶이니까.

너의 초1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엄마는 네 책가방 속에 있는 그 사연있는

종이 조각도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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