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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바 Dec 29. 2023

그러니까 친구지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스펙트럼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더욱 느끼고 있다.

한 인간이 생각하는 사고의 범위나 행동의 반경은

시간이 쌓여갈수록 견고하고 좁아지게 마련인 것 같다.

나의 기준에 견주어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확고해지고,

그에 따라 나와 생각의 결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

내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하지?', '왜 그렇게 생각할까.'

하는 사람들을 꽤 자주 만나게 된다.




며칠 전 한파경보가 발효된 금요일 밤의 일이다.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던 저녁 9시,

문 밖에서 남녀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린다.

대게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에는

술에 취한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은 편이다.

그날도 그러했다.

2023년이 며칠 남지 않은 올해 끄트머리의 밤이었다.


부장님이 밖에 나가시더니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사람들 앞에 서서

휴대폰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 무슨 일이 있구나.'

사무실에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 112나 119에 신고를 하시는 모양이다.

잠시 사무실을 비워두고 나가보니

두 여성 중 한 명은 울고 있고,

한 남성은 그 사람을 달래고 있다.

상황을 파악해 본 바,

연인 사이인 남녀와 친구인 여성이 술자리를 가진 후

지나가던 이곳에서 일이 난 것이었다.

연인이 서로 부딪혀 여성분이 뒤로 넘어져

머리를 그대로 바닥에 부딪히고는

구토와 두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은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이었다.


그 여성은 병원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특별한 외상 없었고, 

본인의 동의 없이는 병원 후송이 불가능하다.

미성년자도 아닌지라 부모님께 별도의 연락을 하는 것도

애매한 상황이다.

게다가 연인과 친구도 같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자꾸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두통을 호소하고 구토를 하고 있는데도,

남자친구라는 사람과 친구라는 사람 어느 누구도

병원에 가보자고 설득하지 않았다.

넘어진 당사자는 아프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고집을 피운다 치더라도,

남자친구이고, 친한 친구라면

아파하는 친구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순간 넘어진 여성의 부모 마음이 된다.

'만약 내 딸이 이렇게 넘어졌다면 

당장 병원에 데려갔을 텐데..'

작은 한숨을 몰래 쉬었다.




집에 와서 남편과 얘기를 하다

자연스레 그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니, 너무 화가 나더라고.."

하는 나의 말에 남편이 너무 흥분하지 말라며

한 마디 툭 던진다.


"다 비슷한 사람 만나는 거야."


아.

친구도, 남자친구도, 넘어진 사람도

거기서 거기인 비슷한 사람들...


셋이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던 뒷모습이 떠올라

자조 섞인 쓴웃음이 났다.



+) 제가 넘어지거든 꼭 병원에 데려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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