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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Oct 10. 2024

사랑의 꿈 연습하다가 시작한 매거진

리스트 덕분인가..

 브런치에 글을 쓴 지 하도 오래돼서 새 매거진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잊어버렸다. 몇 번의 무용한 클릭 끝에야 해당 버튼을 찾아서 누를 수 있었다.


피겨스케이팅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쓰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 쉽게 시작할 수 없었다. 격식을 갖춘 정돈된 글을 써서 멋진 브런치북으로 발행하고픈 욕심 때문이었다. 언제나 현실보다 이상이 앞서는 나 아니랄까봐 머릿속에서만 거의 평론을 쓰고 있었다. 이렇게 상만 하다가는 이 아름다운 스포츠에 대해 영영 아무 얘기도 못하겠다는 위기감도 있었지만 브런치북에 대한 야욕이 그것을 뛰어넘곤 했다. 오늘에 와서야 마음을 고쳐먹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채 손이 가는대로 끄적여 보기로 결심한 것은 순전히 피아노와 리스트 덕분이다. 그래서 솔직히 매거진에 쓰는 글들이 일관적인 문체를 유지할 거라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혼잣말처럼 주절주절 쓰다가도 갑자기 돌변해서 힘을 잔뜩 줄지도 모른다..


몇 개월 전 피아노 선생님이 내게 <사랑의 꿈> 악보를 들이미신 것이 발단이다. 아니 쌤 리스트 꺼를 제가 어떻게 쳐요?? 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이건 그의 작품 중에서도 그나마, 그~~나마 제일 쉽다며, 요령을 익히면 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사랑의 꿈은 어쩐지 오묘한 매력이 있는 곡이었다.


어려워서 연습하기 싫다가도, 매번 다 치고 나면 신기하게도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치고 싶어졌다. 잘 치지도 못하면서 끝까지 치고 나면 성취감을 느끼게 해줄 뿐더러 손가락을 막 복잡하고 어지럽고 힘들게 놀리고 싶은 이상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심플한 곡은 쉬워서 좋긴 한데 좀 심심하다면, 어려운 곡은 토할 것 같긴 해도 은근 치는 재미가 있다고나 할까.


그렇게 틀리고 또 틀리면서 더듬더듬 연습을 하다가, 문득 이 곡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오래 전에 봤던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떠올렸다. 아사다 마오의 경기였다.




오랜만에 그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 유튜브를 켜고 Asada Mao, Liszt를 검색했더니 2011년의 경기들이 주르륵 떴다. 몇 년도 꺼였는지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2010-2011 시즌 프리 프로그램이었던 모양이다. 화질이 좋은 4대륙 선수권 경기를 보고 나서 아사다의 순위가 궁금해 찾아보니 2위였다. 그 시즌에 김연아는 세계선수권 외에는 참가하지 않았는데 누가 1위를 했을까 했더니, 안도 미키였다. 오늘 글은 이 두 선수의 연기를 감상한 이야기다. (최초로 이 매거진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을 땐 당연히 김연아의 경기로 스타트를 끊으려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굳이 거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다른 선수를 얘기할 때도 무조건 그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아사다가 선택한 음악은 피아노 솔로가 아닌 오케스트라 버전 사랑의 꿈이었다. 연기를 죽 보면서, 옛날에 내가 그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을 했다. 뻣뻣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제법 우아하고 부드러다. 음악을 타는 능력도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 좋아서 놀랐다. 아마 김연아의 연기가 워낙 월등히 유려했기에 비교가 되었던 모양이다.


눈에 띄는 약점은 점프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토 점프가 약한데 그중에서도 러츠와 플립은 좀 많이 약하다. 그 둘은 원래 굉장히 파워풀한 점프지만 아사다의 것에서는 그런 호쾌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맨 처음 선보인 3악셀은 상당히 잘 뛴 걸로 보세부점수표를 찾아봤더,역시 감점이 없었다. 확실히 2악셀보다 스케일이 커서 멋지다.


특유의 부드러운 스케이팅이나 극강의 유연함이 돋보이는 스핀도 좋다. 많은 팬들 아사다가 주니어 시절보다 스케이팅 스킬이 퇴보했다고 얘기하지만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인지 나는 잘 느끼지 못하겠다. 엔딩 직전에 선보이는 비엘만은 포지션이 완벽하다. 안무가 너무 비어있는 느낌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활력이 넘치고 큰 실수가 없었기에, 왜 안도에게 밀렸는지 궁금해졌다. 안도의 경기를 틀었다.


헉,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이다. 선곡이 너무 사기 아닌가. 그러고 보면 안도가 처음으로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던 시즌의 음악이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도 선곡 참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안도는 이렇게 임팩트가 확실하고 화려하며 극적인 클래식이 유독 잘 어울린다.


점프가 아사다보다 훨씬 시원하다. 러츠가 제대로 된 아웃엣지라서 도약할 때 쾌감이 느껴진다. 잘 뛴 트리플 러츠는 진짜 멋있단 말이야.. 근데 오프닝 점프가 겨우 3러츠-2룹인 것이 의아했다. 안도라면 3회전-3회전 콤보가 가능했을 듯한데. 해설자인 리핀스키(미국, 98년 올림픽 금메달)도 이 점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자기도 나가노 올림픽 때 미셸 콴을 상대하면서 그녀가 강적이라는 걸 알았기에 3-3이 꼭 필요했다는 식의 설명이다. 그래, 그때 리핀스키정말 대단했지.. 잠시 추억에 젖었다.


그런데 안도가 이렇게 스핀이 좋은 선수였나? 초반의 독특한 싯스핀(앉아서 회전)과 이어지는 콤비네이션 스핀(여러 다른 스핀의 연결)들은 집요하기까지 한데, 빠르다기보다는 단단하고 견고하다는 느낌이다. 카멜 스핀(ㄱ자로 회전)은  정확한 직각이. 이렇게 기본기 탄탄한 기술 너무 좋다.


세부점수를 보니 아사다는 3개의 점프에서 감점을 받은 반면 안도는 단 하나의 마이너스도 없는 깨끗한 채점표를 자랑하고 있다. 구성점수는 둘이 비슷하게 8점대이니 결국 안도의 안정적인 점프력이 승부를 갈랐다. 그래봤자 점수 차이는 겨우 2점 정도지만.


점수표를 보고 안도가 3플립을 구성에 넣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엣지 사용이 잘못돼서 자주 감점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때문인가 보다. 이렇듯 최상위권 선수들도 특정 점프에 유독 약한 경우가 왕왕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4대륙 선수권 결과는 이러하고 문득 세계선수권 결과가 궁금해 찾아보니 이번에도 안도가 우승이었다. (올림픽을 제외하면 세계선수권이 가장 권위 높은 대회다) 김연아가 준우승이었던 것만 기억에 남아서 누가 우승했는지도 까먹었었네. 아사다는 3위권 밖인 걸 보니 쇼트와 프리에서 둘 다 큰 실수를 한 걸로 보인다.


아무튼, 셋 다 00년 후반 ~ 10년대 초반을 풍미한 탑랭커들이었다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한다. 그 시절 거의 모든 대회 시상대 그들 차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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