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여전히 단종을 기억하는가

사극 마니아이자 역사학도가 바라본 단종과 세조

by 세온

<왕과 사는 남자>의 관객 수가 천만을 돌파했다. 직접 영화를 감상하고 싶었지만 아직 시간을 내지 못했다. 시놉시스를 통해 살펴본 역사적 해석은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았다. 대중영화의 문법에 충실했다는 느낌이었다. 영리한 선이었다.

90년대에 단종 전문배우로 유명했던 정태우는 <왕사남>의 흥행을 반갑게 여기고, 영화에서 단종 역을 맡은 박지훈을 칭찬했다. 정태우의 인터뷰를 보니 98년도쯤 방영한 사극 <왕과 비>에서 보여준 배우들의 열연이 떠올랐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이 귀양길에 오르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세조는 단종이 후사를 보는 일을 막아야 했을 것이다. 아내와 생이별을 시켰다. 왕후 역의 김민정이 상궁들에게 끌려가며 절규하고, 정태우가 피맺힌 울부짖음을 토하던 순간이 뇌리에 선명하다.

그의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거슬러 올라가면 생모의 죽음이 있다. 세자빈은 산욕열로 죽었다. 그 시절에 항생제가 있었다면 단종은 어머니를 잃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새장가를 들었다면 삼촌은 감히 조카의 자리를 넘보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문종은 재위기간 내내 국상 중이었다.

할머니가 살아 있었다면 역사의 물줄기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부모와 조부모를 모두 잃은 단종에게 남은 사람은 세종의 후궁에 불과했던 보모였다. 그녀는 미약한 힘으로 단종을 보호하려 애쓰다 교수형을 받고 죽었다.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단종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 장인도, 여섯째 삼촌도, 신하들도, 매형도. 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친인척을 무자비하게 죽인 세조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을까? 실록에 세조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기사는 없다. 단종의 조카가 연좌되지 않았다는 것과, 누나가 공주의 신분을 유지했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동정심이 털끝만큼이라도 있었는지, 철저한 이미지 관리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야사에는 세조의 꿈에 형수가 등장해 저주를 퍼부으며 침을 뱉었고, 그 자리에 종기가 돋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 설화를 차용한 <왕과 비>에서 세조는 끔찍한 피부병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배우 임동진이 열연한 노년의 세조를 잊을 수 없다. 자기 손으로 죽인 조카가 계속 꿈에 나타나 무덤 속이 너무 춥다고, 꺼내달라고 애원하자 세조는 부르짖는다.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느냐!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무덤을 판다.

홍위야! 내가 널 꺼내주마, 이 숙부가 널 구해주마!

실제 세조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슴에 더 와닿는 건 <왕과 비>의 세조다. 그는 욕망에 굴복해 파멸의 길을 걸어간 한 미약한 인간이다.




오래전 임용에 합격한 동기가 영월로 발령이 났다기에, 축하하며 물었다.
"영월? 청령포 있는 곳?"
"너 그걸 어떻게 알아?"

이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월과 청령포를 안다. 한 소년에게 가해진 폭력의 가혹함을, 권력의 비정함을 안다. 단종의 영혼이 그곳에 서려 있다면 자신의 억울함이 잊히지 않았다며 기뻐할까?

오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청령포가 강줄기에 갇혀있듯, 역사는 무고한 피해자를 남긴 채로 흘러간다. 고통에 무심한 세상에 대항해 인간들은 영화를 만들고 드라마를 쓴다. 오늘도 그 노력에 감화된 또 다른 인간들이 영월로,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