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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엄마HD아들 Aug 12. 2023

몰래카메라 같았던 ADHD와의 만남

영화 '트루먼 쇼'를 아시나요?

30년을 넘게 살면서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ADHD라는 단어를 나 자신에게 연결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ADHD아이를 키우는 성인 ADHD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글을 쓰고 있다.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ADHD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인의 아이가 ADHD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이를 의심했던 그날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ADHD영상을 보며, 내 아이가 ADHD임을 확신했던 그날을.



유튜브 알고리즘이 친절하게 나를 성인 ADHD영상까지 안내하였던 그날을.






남편에게 애써 호탕하게 "나 아무래도 성인 ADHD인 것 같아! 맞아 나는 성인 ADHD야. 그래서 그런 거였어!"라고 말했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울어야 할 상황인데 웃음이 나왔다. 나의 본능은 빠르게 자기 방어를 시작했고 멘탈을 보호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그러나 성벽은 결국 무너졌고 나는 지하감옥으로 떨어졌다. 나는 참패했다.


사춘기시절 왼쪽얼굴이 마비가 되었을 때 보다, 결혼도 안 했는데 첫째가 찾아왔을 때보다, 임신 5개월에 양막이 빠져나와 둘째를 잃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다 충격적이었던 ADHD와의 조우.


내일 당장 전쟁이 난다 해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에 대한 믿음이, 나의 정체성의 뿌리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누구지?









트루먼쇼

태어나면서부터 섬에 갇혀 모든 삶이
24시간 TV쇼로 생중계되는 '트루먼 버뱅크'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트루먼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가짜다.
트루먼은 자신의 인생이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을 모른 채 서른 살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트루먼은 자신의 인생과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국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트루먼이 스스로 세트장
밖으로 나오며 영화는 끝이 난다.







학창 시절 영화 '트루먼쇼'를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단 한순간도 자신의 인생이 가짜라는 것을 모르고 살 수 가 있을까? 30년 동안 속인다는 게 말이돼?



트루먼을 보며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진 인생이라니, 너무 불쌍해'


어린 시절 본 영화는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었고 영화를 본 이후 종종 이런 상상을 했다.


내가 만약 트루먼이라면?

지금의 삶이 진짜라고 평생 믿고 살았는데, 어느 날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얼마나 충격적일까?


슬플까?


화가 날까?


세상이 무서울까?  




그런 상상을 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트루먼이 되었다. 서른이 넘어서야 진짜 자신의 정체를,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가엽고, 불쌍한 트루먼.


억울했다. 마구 소리를 질렀다.


 '내가 주인공이면 어떨까? 했던 거지,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시간이 지나도, 병원에서 ADHD진단을 받고 나서도 믿을 수 없었다. 사실 아직도 가끔 믿기지 않는다.


내 인생이 ADHD인생이었다니. ADHD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았지만, 그 많은 힌트들을 무시하고 살았다.


10여 년 전 유아교육 전공시간에 ADHD아동에 대해 배웠고, 유치원에서 근무할 때도 ADHD성향 일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음에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는 ADHD가 아니니까.



감히 상상도 못 했다.

 

ADHD는 그저 과하게 충동적이고, 심하게 산만한, 가끔은 폭력적인 아이들을 나타내는 단어였으니까. 그렇게 배웠으니까. 세상의 편견과 오해들이, 편협한 지식들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아니야, 너는 칭찬도 많이 받고 잘 지냈잖아. 그러니까 관심도 갖지 마'


나는 ADHD에 대해 철저하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런 아이들이 있구나, 너무 안타깝다'라는 생각을 하며 연민과 동정을 느꼈을 뿐, 더 이상의 생각은 없었다.


ADHD에 대해 배우면서도 ADHD를 깊이 알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전공책에 나와있는 몇 줄의 설명으로 나와 그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내가 ADHD라고?

내 아이도 ADHD라고?

나를 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몰래카메라




어딘가에 카메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평생을 모르고 살았던 ADHD와 어쩌다 마주친 그 순간이 얼마나 강렬하고 충격적인지. 믿기지 않는지.



그냥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니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ADHD라는 단어를 나에게 대입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내가 ADHD였다.



유치원 교사까지 했으면서 자신의 아이가 ADHD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니. 나를 닮은 건데, '도대체 누굴 닮아 저러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트루먼을 보고 답답해할게 아니었다.


도대체 나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떤 인간으로 살고 있었던 것일까.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착각이었을까?



디들 알고 있었을 지도.



내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부주의하고, 정신없고, 충동적이고, 산만한 나를 볼 때마다 다들 얼마나 우스웠을까.



나만 모르고 있었던 나의 실체에 소름이 끼쳤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던 주제에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고, 구박을 했다.


'도대체 몇 번을 이야기하냐고', '왜 조절이 안되냐고',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하냐고' 가시 돋친 말을 쏟아냈다. 마귀할멈처럼 무섭게 화를 내던 나의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나 잘하세요



살면서 내가 했던 모든 실수와 잘못들이 거센 파도로 변하여 나를 덮쳤다. 하늘에서 울리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끝으로 나는 가라앉았다. 철저히 무너졌다.

내 인생은 이대로 끝인 것일까.








'끝'이 아니다. 나의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트루먼에게 느낀 감정은 '불쌍함'이었지만, 이제는 안다. 트루먼이 모든 것을 알게 되고, 세트장의 문을 박차고 나온 그 순간이 그에게는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절망과 분노가 문을 하나 두고 환희와 희망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가 살고 있던 가짜 삶 속에서 진실을 말해주었던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진실이었던 여인을 찾아 나서는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을지.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나는 네버엔딩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짜 인생은 끝이고 진짜 인생은 이제 시작이니까.








나도 트루먼처럼 문을 박차고 나왔다.  


ADHD성향을 가진 채로 태어나 ADHD로 사는 것이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억울해하면서 불행하게 살지는 않겠다.


평생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에 가슴 치기보단,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


트루먼이 자신을 속인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잘 살길 바란다.  나도 ADHD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잘 살아내고 싶다.








트루먼은 조작된 가짜 인생을 살았지만. 그의 존재 자체는 진짜였다. 그는 조작된 삶 속에서도 유일하게 각본 없이 움직였던 사람이다. 오히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TV 쇼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며 가짜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나도 진짜 나의 모습을 이제야 마주했지만, 나의 존재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것을, 진실하다는 것을 안다. 늘 산만하고 정신없고 힘들었던 삶이지만 그 또한 나의 의지와 선택이 만든 인생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현재. 진정한 나의 모습을 알게 되었기에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과거는 과거로 두고 현재의 삶에 집중하려 한다.


아주 쇼킹했던 ADHD와의 만남이 있었지만, 이제는 받아들인다. 나의 일부라는 것을. 그리고 담담히 글을 쓴다. 이 세상의 또 다른 트루먼들을 위해. 충격을 받아 쓰러지기 직전인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괜찮다고, 세트장의 문을 박차고 나오라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말이다.







이글은 묶어서 브런치 북으로 발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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