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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Apr 11. 2024

글쓰기의 즐거움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 사이에서 얻게 된 깨달음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게는 늘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나의 학창 시절, 그 당시에 글을 잘 쓴다는 건 모범생의 영역이었고 애석하게도 나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기 때문에 글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다. 아마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나는 왜 갑자기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별한 계기 같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미니홈피’부터 ‘인스타그램’에 이르기까지, 나는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심플하고 담백한 포스팅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 나는 항상 구구절절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보니 그걸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글을 ‘잘’ 써야만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십 년 넘게, 어쩌면 이십 년 가까이 잘 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살아왔는데 최근 몇 달은 그 마음이 힘을 잃었다. 지난겨울은 여러 가지 일로 속이 시끄러워서 책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던 시기였던 터라 정말 가열차게 읽었는데, 그러다 보니 기가 죽은 것도 같다. 매일 책을 읽으며 잘 쓴 문장들을 보니까 내가 쓴 문장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쏟아도 초라했다. 쓰는 시간은 괴로웠지만 읽는 시간은 즐거웠고, 내가 쓴 문장은 형편없었지만 책에서 만나는 문장은 황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쓰는 사람’보다는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을 택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일 것 같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붙잡고 앉아 한숨 쉴 시간에 남이 잘 써놓은 글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누리며 살려고 했는데, 한번 쓰기에 대한 열망이 싹텄던 사람에게는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읽는 행위는 그 순간만큼은 충만한 즐거움이 따르지만 남는 게 없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다는 사실이 어쩐지 좀 헛헛했다. 정성껏 쓰인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사이 내 이야기는 점점 빛을 잃고 사라지는 기분이라 왠지 모를 공허한 마음마저 들었다. 글로써 내 삶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겸손한 척, 작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라고 쓰고 싶지만 그 말은 명백한 거짓말이라 차마 뱉을 수 없다. 작가가 되는 건 글을 쓰는 행위의 종착점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은 쓰는 사람에게 있어 궁극의 목표와도 같은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쓰는 사람, 정확히 말해 나처럼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쓰고 싶은 사람’에게는 궁극의 목표를 넘어서는 본질이 있다는 것을 새로 깨닫게 됐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의 즐거움’. 내게 있어 쓰는 행위는 분명 괴롭지만 확실히 즐거운 일이다. 비록 좋은 결과물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글을 쓰면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엉켜있는 생각들을 풀어나가는 과정 속에 얻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맛을 끊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욕심부리지 말고 묵묵히 즐거움을 누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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