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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Apr 19. 2024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올해 큰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작은 아이는 유치원에 입학했다. 작년에는 아이들을 집 근처에 있는 같은 어린이집에 보냈던 터라 등하원이 왕복 10분이면 충분했고, 하원 시간도 고정된 게 아니라 내 일정에 따라 데리러 가면 돼서 시간의 가용 범위가 무척 넓은 편이었다. 그렇게 편하게, 누릴 거 다 누리며 육아하다가 학부모가 되니 신생아 육아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조각조각 토막 난 내 시간,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메말라 가고 있었다.


  먼저, 아침잠이 많은 내게 등교 시간이 주는 압박감은 실로 상당했다. 긴장감으로 인해 매일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늦잠을 자고 싶어서 일주일 내내 주말만 기다렸는데, 주말에도 어김없이 여섯 시면 눈이 떠졌고 예민한 내 몸뚱이가 너무도 야속했다. 늦잠을 못 자는 것보다 더 속상했던 건, 아침이 길어진 만큼 밤이 짧아졌다는 거. 나의 소중한 밤 시간을 잠에게 양보해야 하는 날이 늘어났다. 부족한 체력을 채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 덕분에 몸은 그럭저럭 굴러갈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나를 지탱해 주는 내면의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정된 이사를 하지 못 한 탓에 두 아이를 등원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왕복 한 시간, 하원까지 하면 하루에 운전만 기본 두 시간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큰 아이의 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면 두 녀석을 한 번에 픽업하지 못 해서 차에서 세 시간을 보내야 했다. 크게 하는 게 없는 것 같은데도 나와 아이들의 스케줄로 일주일이 빠듯했고 쉴 새 없이 구르고 또 구르는 기분이었다.


  바뀐 생활 패턴에 적응하느라 피곤한 거라 생각했는데, 정도가 지나쳐서 걱정이 되던 차에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냈다. 재빠르게 의학의 도움을 받아 사태를 해결했지만, 이 와중에 내 지친 몸과 마음을 더 빠르게 회복시켜 준 건 남편의 말 한 마디였다.

  ”아니 진짜 뭐 하는 것도 없는데 너무 피곤하네“

  ”하는 게 뭐가 없어 맨날 애들 따라다니는데 당연히 힘들지. 좀 쉬어야 될 텐데, 어떻게 하는 게 좀 휴식이 되는 것 같아?“

  ”나? 집에 혼자 있는 거.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좀 충전이 되는데 계속 그걸 못 하니까 자꾸만 고갈되는 기분이 들어“

  ”그럼 내가 주말에 애들 데리고 한 번씩 나가고, 평일에는 저녁 먹이고 나가서 한 바퀴씩 돌고 올게 그때라도 좀 혼자 편하게 쉬어“

  집순이가 체질인 여자를 만나 여러모로 고생이 많은데, 이런 나를 충분히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는 그의 말이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다.


  아무튼, 이 정신없는 와중에 하반기에 예정(?)된 중국행을 앞두고 일주일에 삼일은 중국어 학원까지 다니느라 숨 쉴 틈이 없었다. 너무 지쳐서 수업을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언어 공부는 손을 놓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주 3회를 주 2회로, 수업 횟수를 줄였다. 오늘은 그렇게 해서 얻은 쉼표 같은 날. 학부모가 된 후 처음으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는 여유를 가져보았다. 어렵게 얻은 이 쉼표가 너무 소중해서 이걸 어떻게 써야 하나 잠시 고민했는데, 오늘은 혼자보다는 함께이고 싶은 날이었고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점심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났더니 갑자기 없던 힘이 생겨났다.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는데 하루에 두세 번씩 운전하던 길이 오늘따라 유독 싱그럽게 느껴져 마음이 자꾸만 둥실거렸다. 운전하는 내내 마음이 너무 행복해서 오늘 함께 시간을 보내 준 이들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하트를 가득 담은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는데,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큰 아이를 태우고 유치원으로, 학원으로, 정신없는 라이딩을 하느라 하트는 전하지 못하고 까맣게 잊은 채 밤이 깊어버렸다. 오늘 전하지 못 한 하트는 안타깝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 앞으로 매주 금요일은 나의 것. 다음 주에는 또 무얼 하며 나를 채워볼까 행복한 고민이 생겼다.


  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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