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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Apr 04. 2024

듄을 이을 차기 SF 영화는 바로 이 작품입니다

<라마와의 랑데부> - 아서 C. 클라크


 2017년 10월 19일 천문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발견이 있었다. 하와이 판스타스(Pan-STARRS)에서 관측한 작은 점 하나. 처음에는 혜성이나 소행성이라 생각했던 그것은 궤도를 추적한 결과 태양계 밖에서 들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변화하는 빛의 밝기를 관측한 결과 이 물체는 기다랗거나 넓은 형태로 회전을 하고 있으며, 금속만큼의 반사율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진다. 가장 놀라운 것은 궤도와 속도였다. 태양을 지나쳐 다시 태양계 밖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예측했던 궤도를 벗어났을 뿐 아니라 태양에서 멀어지는 과정에서 속도가 점점 빨라진 것이다. 기존에 관측되던 소행성이나 혜성의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이 희귀한 데이터에 천문학자들은 어떠한 해석도 내놓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다. 일각에서는 조심스레 외계 문명이 만든 인공 물체라는 의견도 제시되는데, 그중에는 20년간 하버드 천문학을 이끌었던 아비 로브 교수도 포함된다. 이 정체불명의 천체에 대해 천문학계는 오무아무아, 하와이어로 ‘탐색자, 정찰자’라는 의미의 이름을 붙인다. 외계에서 찾아온 탐색자라는 이 말에는 자연발생한 소행성이나 혜성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는 천문학자들의 은밀한 고민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 최종 이름이 결정되기 전에 오무아무아에게 붙여졌던 여러 이름 중에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라마’. 오늘 소개할 책의 주인공이다.      


 <라마와의 랑데부>는 SF소설계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아서 C. 클라크의 작품이다. (나머지 두 사람은 아이작 아시모프와 로버트 A. 하인라인이다.) 1917년생인 아서 클라크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학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는 NASA의 자문을 맡기도 했으며 통신위성과 인터넷, 우주 정거장 등 현대 과학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과 함께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경우 NASA가 영화를 참조해 실제 우주 생활에 적용한 것들이 있을 정도다. 

 그의 대표작인 <라마와의 랑데부>는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성운상을 포함해 SF 분야의 모든 상을 석권한 전무후무한 작품이다.      


책 표지에 라마의 형태가 묘사되어 있다

 소설은 213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의 인류는 목성과 화성, 수성 등에 진출할 만큼 활발한 우주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던 중 문제의 소행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소설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것은 머나먼 우주로부터 날아왔음을 암시하는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태양의 중력장에 절대 포섭되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태양계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있었다. 목성, 화성, 지구, 금성, 그리고 수성의 궤도를 순식간에 지나치면서 속도를 얻은 뒤,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알 수 없는 곳으로 방향을 바꾸게 될 것이었다. … 천문학자들이 즐겨 차용하던 고대 희랍과 로마신화의 신들 이름은 바닥난 지 오래였으므로 힌두의 신전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그리하여 31/439는 '라마'가 되었다.    

  2130년에 태양계를 방문한 미지의 물체에 대해 라마라고 이름 붙이는 이 대목을 보면 2017년 오무아무아를 발견했던 천문학자들이 왜 이전까지 ’라마‘라는 이름으로 불렀는지 이해가 된다. 한때 이 소설을 읽었던 이들로서는 소설의 내용이 그대로 재현된 듯한 놀라움을 겪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2130년이라는 미래에 태양계에 날아든 정체불명의 물체를 발견하고, 그 물체의 정체를 알기 위해 노턴 선장을 필두로 한 인데버 호의 선원들이 탐사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다만 우리가 맞이했던 현실과 다른 점은 시가 형태로 회전하고 있다고 보았던 오무아무아와 달리 라마의 경우 50킬로미터 높이의 원기둥 형태라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이에 대해 '흔히 볼 수 있는 보일러 통 같은 모습'이라고 묘사된다.)

 이 작품은 최근에 아이맥스 관람으로 유명세를 날린 영화 ' 듄 2'의 감독인 드니 빌뇌브의 차기 SF 영화로도 알려졌다.      


 나의 간략한 (그러면서도 불충분한) 소설 설정만 본다면 터무니없는 SF 작품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다 2130년에 화성과 수성, 목성을 오가는 시대라니 더더욱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인 아서 C. 클라크가 실제 자문을 할 정도로 현실적인 미래학자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라마와의 랑데부>의 매력은 태양계에 나타난 외계 물체라는 초기 설정에서부터 그럴싸한 설득력을 얻는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태양계에 날아든 외계 물체가 있다면 인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작가는 따로 자문 위원회가 생길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다. 그리하여 소설은 라마에 랑데부하여 실제 내부를 탐사하는 인데버 호 선원들의 시점과 외부에서 정보를 분석하고 다양한 의견을 교류하는 자문 위원회의 시점을 오가는 방식을 택한다. 짧은 챕터 구성으로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과 탐사대와 외부 자문위원회의 시점을 오가는 구성이 책의 가독성을 높인다. 게다가 과학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 할지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소설은 편하게 쓰였다. 개인적으로는 우주 엘리베이터를 다룬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낙원의 샘>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데 장황한 이야기와 곁가지 많다는 점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반면 <라마와의 랑데부>의 경우는 이야기의 초점이 명확하고 사건 전개도 확실하다. 그래서 SF와 과학에 정반대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쉽게 쓰였다고는 하지만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서 C. 클라크가 현실성을 반영하는 작가라는 점이 <라마와의 랑데부>에도 크게 작용한다. 실제로 태양계에 날아든 외계 물체가 있다면 인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작가는 현실적인 답을 내놓으려 한다. 앞서 언급한 외부 자문 위원회의 경우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그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실제 라마 안에 들어가서 벌어지는 탐사 초기의 과정이었다. 이 도입부가 굉장히 인상적인데, 거대한 어둠에 갇힌 공간, 라마의 회전에 의해 밑으로 내려갈수록 인공 중력이 생기는 공간에서 탐사대가 느낄 수 있는 공포와 경이, 그리고 많은 생각들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작가는 이 과정을 이집트의 거대 피라미드를 처음 발견하고 탐사했던 상황에 빗댄다. 과연 이런 경이로운 것을 누가 만들 수 있느냐는 감탄, 그러면서도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두려움, 생존의 가능성과 탐사의 경계에서 갈등하게 되는 모습 등에서 피라미드 탐사가 소설에 많은 영감을 준 것 같다. 그 생생한 묘사 덕에 소설 초반부에는 나도 노턴 선장처럼 두려움과 긴장감을 한껏 만끽했으며 한편으로는 소설에 묘사된 현실적인 탐사 방법에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라마에 대한 묘사에서는 이 거대한 원통형 물체가 회전하면서 생기는 인공 중력이 다뤄진다. 우주 공간에서 물체가 회전을 하면서 생기는 원심력으로 인공적으로 중력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는 설정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도 등장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원통형 라마가 회전하면서 발생한 인공중력 덕에 기이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예를 들면 거대한 물이 옆면과 천장까지 원형으로 이어져 흐르는 모습 같은 것이 그러하다. 이러한 장면 설정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에 등장한 쿠퍼 스테이션에도 영감을 줬다. 그 외에도 당신이 OTT를 통해 보는 SF물에서 우주 물체의 원형이 회전하고 있으면 아서 C. 클라크가 고안한 인공 중력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결과라고 봐도 무관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이러한 원형 물체의 회전으로 인공 중력을 만든다는 설정이 있다

 마치 미래를 내다본 듯한 소설의 설정과 현실적인 탐사 방법, 라마에 대응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면 아서 C. 클라크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하나의 큰 줄기가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 작품은 그래서 라마란 무엇이고, 이것은 누가 만들었으며,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최종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소설은 말미에 이 질문들에 대해 답을 내놓는다. 비겁하게 피해 가기보다는 의외로 정면 승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각자 의견이 다를 것이다.) 


 그 정면승부의 대답이 나를 만족시켰느냐고 하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소설의 배경부터 도입까지 작가 보여준 현실적인 장면 묘사는 후반부에 좀 더 그럴싸한 것을 기대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면승부를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교묘하게 피해 간 면도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이렇게밖에 쓰지 못하는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물체 내부를 탐사하는 과정은 아주 인상적이었으며,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았다는 점에서 SF 소설로서의 쾌감은 컸다. 그런데 이 작품을 드니 빌뇌브가 만든다니. <듄>과 <컨택트>에서도 보았지만 그는 아주 현실적인 SF를 만드는 감독이 아닌가. 현실성을 담은 SF 소설계의 대작이 현실성을 잘 반영하는 명감독과 만난다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듄>의 비주얼이 여러 모로 화자가 된 것 같은데, 새로 만들어질 <라마와의 랑데부>는 어떻게 다뤄질지 궁금하다. 


 영화의 개봉 소식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SF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듄>을 통해 드니 빌뇌브라는 감독에게 호감이 생겼다면 그의 차기작이 개봉하기 전에 원작 소설을 읽어보길 바란다. 1972년에 쓰인 이 작품은 2024년인 현재에 읽어도 아주 흥미롭다. 소설에 등장한 장면을 미리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고 나중에 영화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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