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퍼스널 브랜딩
자영이 너는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
6년 전쯤, 처음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퍼스널 브랜딩?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내가 무슨 퍼스널 브랜딩을 했나? 퍼스널 브랜딩은 나를 사물화 하고 포장하고 나를 잘 팔기위한 기술 아닌가?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분명 6년 전만 해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때엔 브랜딩에 대한 이해나 관점이 부족한 때이기도 했고 실제로 나는 '스토리젠터 storysenter'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한 번도 내가 '퍼스널 브랜딩을 잘했다' 아니 '퍼스널 브랜딩을 했다'라고 생각한 적 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다 담고 있지 못하는 '전문 프리젠터'라는 조직에서 주어진 이름이 갑갑했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담아 '스토리젠터 storysenter'라는 이름을 만들고 그 이름을 기반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차곡차곡 쌓아왔을 뿐이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언어의 진정한 의미 혹은 무한한 가능성을 떠나 그저 사회적으로 고착화된 언어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깨달았다. 그 당시 퍼스널 브랜딩이 쓰였던 맥락을 비판 없이 수용한 것이다. '브랜딩 Branding'에 대한 이해와 나만의 관점이 어느 정도 정립된 후에야 비로소 '퍼스널 브랜딩 Personal Branding'에 대한 의미도 재해석할 수 있었다. 브랜딩이 결국 '자기다움'에 대한 이야기라면, 퍼스널 브랜딩은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퍼스널 브랜딩은 Branding이라는 단어 앞에 'Personal'이라는 단어만 붙였을 뿐이니까. 개인의 자기다움은 곧 나다움이니까.
'나다움'이라면 할 이야기가 많다. 대학교 시절부터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혹은 해야 하는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방황했고, 나다움을 찾아 나선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엔 '나다움'이라는 단어 보다 '꿈'이라는 단어로 이 과정을 설명했다. 내 안의 오리지널리티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과정을 브랜딩 씬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지난 10여 년 간 누구보다 치열한 경쟁 현장에서 일을 했다. 한 회사를 대표하여 경쟁 프레젠테이션의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문서로 만들고, 직접 발표하는 역할을 했다. 말 그대로 '경쟁' 프레젠테이션. 늘 5개 이상의 주요 경쟁사와 함께 대기실에서부터 기세 싸움을 벌인다. 우리가 한 프레젠테이션은 누군가에게 냉철한 시선으로 평가를 받고 그 결과는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뒤 바로 공표된다. 성공과 실패가 내가 한 행동의 결과로 눈앞에 바로 떨어지는 잔혹함. 나를 갈아내며 치열하게 임할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내 안의 전투사 기질이 날개를 활짝 펴고 훨훨 날아다녔다. 그때는 그저 '이기는 싸움'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투지와 열정 같은 단어가 내 안에서 나를 만들어 갔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을 꿈꾸었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내 안에서 다른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이 지긋지긋한 경쟁과 단 한 명의 승자만 인정해 주는 세계에서 발을 떼고 싶었다. 그때 우연하게 나에게 다가온 세계가 바로 브랜딩의 세계이다.
경쟁하지 않는다.
브랜딩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고유성'을 꼽겠다. Originality오리지널리티. 늘 치열한 경쟁 현장에서 일을 하던 나에게 브랜딩의 세계는 총천연색의 다채로운 세계였다. '와! 세상에!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처음 퇴사를 하고 만난 바깥세상은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내가 있던 세계가 세상을 움직이는 커다란 세계라고 믿었는데 잠시 잠깐 발을 떼어 다른 곳으로 가보니 그곳에도 엄청나게 커다란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처음, 내가 느낀 브랜딩 세계의 인상은 '다양성' 그리고 그로 인한 '자유로움'이었다. 경쟁하지 않는다. 그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간다. 마음, 의미, 속도 모든 것이 다 제 멋대로였다. 그리고 그 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이 세계에도 경쟁은 있겠지만 고유함을 기반으로 타인과의 진정한 차별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존에 내가 알던 경쟁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었다. 그렇게 나는 브랜딩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위로와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는 경쟁이 지긋지긋해진 그 시절의 나에게, 이곳은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이 세계에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내 삶을 포개어 놓기 시작했고 내 삶의 새로운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브랜딩 씬으로 나의 업을 전환한 이유는 결국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좋았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세계의 기준과는 다른, 자신만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국내 최대 브랜드 커뮤니티 Be my B의 파운더 멤버로 초기 3년 동안 기획과 운영을 함께 하게 되는 운 좋은 기회를 만나며, 일이 아닌 삶으로서 브랜딩을 접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브랜드 컨설팅'이라는 업으로 이 세계에 다가왔다면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일을 지속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론이나 업이 아닌, 사람과 삶으로 브랜딩의 세계를 조금씩 경험했다. 지식으로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감각. 2주에 한 번 다양한 브랜드의 카테고리와 주제로 사람들과 모여 대화를 나눴다. 그 당시 나는 브랜딩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늘 아웃사이더처럼 주변부를 맴돌았고, 나의 역할은 '환대' 그 이상 그 이하의 역할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 자리가 늘 설레고 좋았다. '저게 뭐라고' 저렇게 눈을 반짝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야기하는 어른들이 귀엽고 좋았다. 이곳에서는 그저 '좋아하는 마음'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다. 회사의 타이틀, 직책, 유명세 등 기존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던 기준과는 완전히 다른 기준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기꺼이 타인 앞에서 드러내는 사람들은 대체로 엉뚱하고 어린아이 같았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브랜드를 사랑하는 자기만의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3년 간 들으니 내 안에도 무언가 축적되어 가는 걸 느꼈다. 어렴풋하게 브랜딩이 이런 건가? 했던 마음에서 아, 브랜딩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확신을 가지며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브랜딩 세계에서 내가 강렬하게 느낀 점 한 가지는 이곳에는 명확하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다. 세계나 사회가 옳다고 하는 기준을 맹목적으로 좇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편적 진리나 합리적 계산 같은 것을 좇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난 무언가를 따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역시나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사회적 합의를 추종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굳이 따지자면 나도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다. 자신의 개성이 무엇인지 알고 고유성을 존중하기에 대부분 활기가 넘치고 눈빛이 반짝인다.
다시 퍼스널 브랜딩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해보자면, 퍼스널 브랜딩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생각과 감각들을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는 과정이다. 나의 표면을 지나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사회적 타이틀의 나를 벗어던지고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과정이다. 아주 어린 시절의 나로 회귀하는 과정이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가치나 기준이 아닌, 진정으로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을 존중해 줄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퍼스널 브랜딩은 '진짜 내가 되는 시간'이고, 오래도록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을 스스로에게 찾아주는 선물 같은 여정이다.
내 안의 가능성은 그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다.
나 스스로 해내야만 한다.
언제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사람이 나에게 나타나, 내 안의 모든 가능성을 말해주고 이런 이런 일을 하라고 알려주면, 그대로 잘 따라갈 자신이 있다고. 왜 그런 사람은 나에게 나타나지 않는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깨달았다. 내 안의 가능성은 그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 해내야만 한다는 것을.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이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스스로에게 달린 문제이다. 나의 의지, 마음, 욕망에 달린 문제이다. 내 스스로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행동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이 행동의 방점은 '스스로'에 있다. 이것이 바로 주체성이다. 내가 내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감각. '독립된 주체'로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은 인문학적 삶의 과정과 동일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삶은 곧 내 안의 욕망을 바라보는 삶이고, 이것이 가장 나다운 인문학적 삶이기 때문이다. '나다움'을 찾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시대의 트렌드나 유행하는 언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나를 만들어 가는 근원적인 힘. 바로 '욕망'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한 사람의 고유한 욕망이야말로 그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고유함을 만들어 내는 힘이다. 앞으로의 글 속에서 이 욕망을 여러 번 다루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퍼스널 브랜딩은 내가 어떤 환경에 떨어지든 삶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삶의 기준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기 때문에 타인의 평가나 판단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또한 자신만의 명확한 삶의 우선순위로 타인에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뾰족한 언어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나는 어떤 경험을 해왔고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오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세상에 말할 수 있게 된다. 주어진 환경과는 별개로 독립된 주체로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퍼스널 브랜딩은 나를 사물화 하고, 포장하고 잘 팔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퍼스널 브랜딩의 의미는 안타깝지만 이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퍼스널 브랜딩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퍼스널 브랜딩이야말로 '나다움'을 세상에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기반이며, 내가 진정한 나로 사회 속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나의 성장이 일터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이며, 일과 삶의 경계를 허물어 더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여정이다.
앞으로 '퍼스널 브랜딩'에 관한 나의 관점과 방법론을 이곳에서 풀어내려고 한다.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과 좋아요(?)를 부탁드립니다.
The artiestic power of bisuness storytelling
Story Scociety.
글 | 스토리 소사이어티 대표 채자영
발행일 | 2024년 1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