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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eal Jul 22. 2024

신승민 선생님께

2022.08.14

”난 지금 행복해, 그래서 불안해. 폭풍 전 바다는 늘 고요하니까.“ - 혁오 밴드의 TOMBOY 중에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죠. 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늘 최소한의 것으로 마음을 비우며 만족했고, 그렇게 저는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지금 저는 행복해요. 어젯밤 눈을 감고 이 은은한 행복에 취해있던 중, 나도 모르게 말 한마디를 불쑥 내뱉고 말았어요. 내뱉지 말았어야 하는데, 너무 순식간에 튀어나온 말이라 말 끝을 흐리지도 못했고, 제 두 귀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그 말을 들어버린 나머지 주워 담을 수도 없었어요.

"이대로만 행복했으면 좋겠다."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던 저는 행복감에 취한 나머지 그 행복이 유지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빠져버린 것이죠. 맞아요. 저는 욕심에 빠졌습니다.


저는 꽤나 부유한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아버지는 유능한 사업가셨고, 엄마는 아버지 사업의 총무 역할과 아버지의 매니저 역할을 하셨죠. 두 사람은 마치 하나처럼 움직였어요. 고향을 떠나 외진 타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버텨낼 생각을 하다니,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 아닌가요? 그 시간 덕에 둘은 끈끈한 정을 쌓았나 봐요. 예전처럼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하는 아버지여도 엄마는 아버지만을 의지하며 살아요. 아버지 또한 집에서 쉬고 있는 엄마에 대해서 아무런 말 없이 같이 식사를 하고,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에 듭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엄마와 아버지는 어떤 욕심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다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두 아들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인 거 같아요. 혹은 기대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들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거든요.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하교 후에 집에서 형과 함께 책을 읽으며 놀았습니다. 우리는 다투기도, 웃기도 하면서 엄마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땐 형도 많이 어렸고, 그 어린아이의 기다림이 담긴 눈빛을 저는 기억해요. 제 눈빛도 그랬을 겁니다. 지금은 그 반대입니다. 요즘 저는 약속이 있어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거나, 일이 있어 밖에서 외박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 저에게는 짧은, 엄마와 아버지에게는 기나긴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 눈빛을 마주치게 됩니다. 기다림의 눈빛, 기대에 가득 찬 눈빛. 희생으로 아름답게 늙어버린 두 사람은 그때의 두 아이처럼 저를 기다려요. 그럴 때면 저는 마음 한켠이 뜨거워집니다. 가끔은 지나치게 달궈진 마음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눈물을 쏟아냅니다. 제 눈물은 뜨거움을 달래기에 충분히 차가워졌거든요.


인생이 여행이라면, 함께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떠나고 싶어요. 여행길에 휴게소가 보인다면 함께 기뻐하고, 갈림길이 보인다면 함께 고민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이가 넘어져서 고통을 호소한다면 그 고통을 나누고 싶어요. 제가 지쳐쓰러진다면 제게 손을 뻗어줄 사람도 필요하고요. 그런 여행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요.


그래서 그 여행을 위한 준비물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학점을 챙기고, 인턴직으로 경험을 쌓고, 대외활동으로 스펙을 마련하고, 자격증을 따고, 어학 성적을 받아내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고, 집을 마련하고, 제 가족을 만들고. 그래요, 행복한 삶이에요. 앞서 말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요. 그렇다면 제 욕심은 무엇일까요? 제 혀와 입이 움직이고, 폐가 공기를 뱉으며 만들어진 그것들은 제 본심을 반영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대로의 행복"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두 눈빛에 담긴 기대감에 온몸을 던져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행복할 거 같아요. 두 사람의 손에 박힌 굳은살을 감싸주고 싶거든요. 그리고 늘 제 곁에 머무르겠다는 사랑에게도 자랑이 되고 싶어요. 근데요, 모르겠어요. 정말로. 제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남의 욕심을 들여다보고 있네요.


영화 <죽은 시인들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요. Carpe diem. 현재를 즐기라고 하셨었죠. 그 교훈은 깊게 박혔었어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가슴 깊이 새겨졌었거든요. 상처가 깊어 진하게 남은 흉터도 시간이 흐르면서 흐려지듯, 이젠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 말을 듣고 가졌던 사고방식은 참 편했었어요. 지난날의 저는 '오늘'만을 바라보며 살았기에 어떤 내일이 찾아와도 즐길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일을 바라보며 살기에 오늘을 전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어가고 있나 봐요. 제자로서 드릴 말씀이 아닌데. 죄송하네요.


잡념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일시적으로 제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지나가는 폭풍일 거라고 생각하며 차라리 폭풍이 쏟아내는 비로 저를 잔뜩 적시고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시원하게 젖은 후에 뱉어내는 허탈한 웃음도 웃음임은 분명할 테니까요.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걸까요. 먼 땅으로 날아가 바라보던 드넓은 바다에 근심은 모두 던져놓고 왔다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것은 바다의 깊이가 아니라, 몸에 밴 바닷바람의 소금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네요. 오늘을 바라보는 법을 알고 그리 행하던 그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요. 가끔은 거울 속의 제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요. 선생님, 제 자신이 곧 오늘인 건가요?


선생님, 그립습니다. 이 그리움이 순수했던 소년을 향한 것인지, 선생님의 품을 향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네요. 2020년 새해의 광화문에 우리가 모이지 못한 것은 정말 바이러스 때문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저희가 그곳에 가는 법을 잊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선생님,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너무 어렵고 험난합니다. 선생님은 어떤 욕심을 가지고 계시나요? 선생님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누가 내려주나요? 선생님도, 그리우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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