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여행기(1)

쓸쓸하지만 값진, 값지지만 쓸쓸한.

by ideal

잠깐이지만, 소박함은 작은 그릇에 담기는 행복이라 여기던 시절이 있다. 많은 것을 잃은 계절이기에 그때의 나를 원망한다. 지금에야 비로소 보이는 그 그릇의 깊이.


회고의 시간을 핑계 삼아 이곳으로 도망쳐왔다. 쓸쓸함을 각오했던 출발이지만, 너무나도 예쁜 시간을 간직하게 되었다.


이 시간을 너와 나누고 싶다. 혹은 어디론가 떠날 불씨를 지폈으면 한다. 이에 여느 블로그의 여행기처럼 써보려 한다. 지금껏 끄적인 글과는 달리 누군가의 마음에 닿길 바라며.


8시 55분 출발.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택했다. 여행 첫날이 길었으면 했다. 시큰한 갈비뼈를 움켜쥐고 밤잠을 설쳤다. 설렘과 통증의 오묘한 조화. 여담이지만, 보름 전에 축구를 하다가 갈비뼈에 금이 갔다. 못하는 사람이 다치고 잘하는 사람은 다치지 않는다던데, 이번엔 후자에 속하지 못한 듯싶다. 약 4시간을 잤다. 그 상태로 인천대교를 건넜으니, 운전대를 쥔 손에 고였던 땀이 아직도 축축하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간사이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구름에 비춰진 비행기 그림자와 드리운 무지개. 여전히 나를 맴도는 무지개.

간사이 공항에서 난바로 가기 위해 기차를 알아보던 중, 미리 발급한 트래블 월렛의 카드가 말썽이었다. 결제도 안될뿐더러 ATM에서 출금도 안 됐다. 기차표를 사기 위해 섰던 기나긴 줄에서 아무런 성과 없이 쫓겨났다. 약 20분을 다시 기다린 후, 예비용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물론 트래블 카드는 나중에 해결했다. 내가 사용한 방법을 추천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따라 해보길 바란다. 나는 카드에 따뜻한 입김을 서너 번 불어넣었다. 꼭 진심을 담기를.


기차에서 바라본 밖.

세 번째로 방문한 일본이지만, 매번 평화롭다는 생각이 든다. 간사이 공항을 벗어나며 바라보는 이즈미사노시는 참으로 평화롭다. 건물들은 높이를 경쟁하지 않고, 눈높이를 맞추며 조화를 이룬다. 평온하고 아름답다. ’소박하다‘는 말이 조각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이럴 때 마다 떠오르는 그리움이 있다. 꾹 견뎌내며 난바역에서 내렸다.


신사이바시는 여전했다.

항상 그랬듯 이곳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분위기를 훑으며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쇼핑이 목적이 아닌 여행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다. 나는 조그만 캐리어를 끌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신사이바시에서 두 블록 떨어진 호텔로 향했다.


예쁜 맨홀 뚜껑

“중앙구”라고 쓰여있고, 오사카성을 담고 있다. 체크인 외에 당장의 계획이 없던 내게 이정표가 되어준 맨홀이다.


참 똑똑한 친구.

GPT 덕분에 짐을 호텔에 두고 점심을 먹으러 떠났다. 무작정 걷던 끝에 카드 사용이 불가한 라멘집을 찾았고, 들뜬 마음에 ATM으로 달려가 현금을 뽑았다.


과연, 맛집이었다.

난 오감으로 이곳이 맛집이라는 것을 느꼈다. 대표 메뉴를 주문하곤 정신없이 K-면치기를 선보였다. 면이 사라지니 녹진한 국물은 나를 도발했다. “이걸 참아?”


못 참았다.

이 라멘집은 진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봤으면 한다. 자세한 맛을 묘사하기보단 직접 경험하길 바라며 안 하던 짓을 하겠다.

https://maps.app.goo.gl/cQQxVp5sQh3z1SsbA?g_st=ii

밥을 먹고선 맨홀 뚜껑이 안내한 오사카성을 향해 걸었다. 약 한 시간의 도보는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거리.
구석진 선술집, 지도에 나오지 않는 이자카야다.
오후

누군가에겐 쉬어가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 누군가에겐 잠시 산책을 즐기는 시간. 누군가에겐 책임과 함께 일하는 시간. 참으로 알찬 오후였다.


자전거

일본은 자전거가 참 많다. 특이하게도 아이를 태울 수 있는 시트가 달린 자전거가 정말 많았다. 아이를 태운 어머니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진로가 겹친 두 자전거는 습관처럼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스미마센.


구석진 골목의 미용실.

좁은 사유지를 최대한 활용한 이유일까? 일본은 가냘픈 집이 많았다. 이 집에서 사는 가족은 서로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서 들을 수 있겠다. 빼곡하기보단 돈독한 집이다.


교량 밑에서 발견한 리락쿠마.

타코야끼 탈을 쓴 리락쿠마다. 어릴 적 리락쿠마를 정말 좋아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설렘이 되살아났다. 그 시절 나의 인형, 손난로, 필통은 모두 너였다.


낙엽?

이 낙엽은 가을이 얼마나 아쉬웠길래 이토록 진하게 남았을까. 겨울은 그 아쉬움 결코 헤아리지 못하고 찬바람 잔뜩 불어대겠지.

오사카성

드디어 도착한 오사카성. 2019년에 친구와 함께 왔었던 기억이 풍겼다. 덕분에 성을 오르며 눈앞에 펼쳐질 광경에 대한 설렘은 배가 됐다.


오사카의 동쪽
오사카의 남쪽
오사카의 서쪽

서쪽은 끝없이 펼쳐진 작은 건물이었다. 빌딩보다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더 갔다. 저 수많은 보금자리에 머무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보내고 있을까.


오사카의 북쪽
오사카성의 밤

풍경에 한껏 취해 머무르다 내려오니 해가 져물었다. 오사카성에 붉은 조명을 비추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감상하라는 어떤 할아버지의 말씀이 있었다. 용케도 알아듣고 한동안 올려다보며 고개를 숙이지 못했다.


오사카성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가던 중,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6년 전에 이곳에서 만난 친구. 정말 많이 보고 싶었던 사람이다. 나는 고민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