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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 벗 Dec 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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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달렸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본질이 아니라 목표가 나를 정의했다. 다시 말해 내가 누군지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중요했다.


누군가 나에게 이름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자아는 가볍고 이름은 무겁다. 그 무게감이 나쁘지 않아서 이름들이 자아보다 좋아졌다. 그것들은 삶의 작은 기준이 되었다.


나를 깊이 알아가고자 하는 동기는 외부로부터 왔다.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야 할 때, 이전부터 준비된 굳어진 설명은 싫었다. 내 안의 우주를 유영해서 아직 활활 타고 있는 별을 건네고 싶었다. 아직 별의 부스러기 정도만 흩뿌리지 않았나 싶어도 나를 구성하는 부스러기면 된 것이다.

 

어린 왕자의 여우는 의미가 관계 맺음에서 온다고 말했다. 나는 누군가의 머리칼이 금빛인 이유로 밀밭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의미의 놀라운 점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물리적인 세상에 관계의 주체들만 알아볼 수 있는 색이 입혀진다는 것이다. 그 색은 나에게서 나오지 않았지만 결국 나를 물들게 했다.


노를 잠시 옆에 치워두었다. 잔잔한 물결에, 가끔은 거센 파도에 휩쓸리는 것도 좋다. 노를 젓는 법을 잊어버릴 때쯤에는 수영하면 되겠지. 느리겠지만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끝이 없으니.



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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