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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연 Sep 12. 2024

02. 다음 중 그의 '의도'로 옳은 것은?

추측보다 확실한 답을 찾아보자.


사소하지만 확실한 서운함


 지금의 신랑과 연애를 시작하고 난 뒤, 처음 한 달은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간지럽고 행복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자, 다른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갈등을 직면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지나고 나면 뭐 때문에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는데, 그 순간에는 어찌나 크고 결정적인 문제로 느껴지던지. '이 사람이 날 사랑하긴 하는 걸까?' '벌써 이렇게 긴장이 풀린다고?' 하는 오만가지 걱정과 근심이 조금씩 커지며 마음이 요동치기도 했다.


 한 번은 퇴근 후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는 길에 갑자기 '찌르르'하며 복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방 가라앉겠지.'싶었다. 그런데 곧 만날 시간이 다가오자, 복통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내 몸의 본능이 이건 아니라며 몸부림치는 것이 느껴졌다. 더 이상 서 있기도 힘들겠다 싶어,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자기야, 만나자마자 너무 미안한데... 나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잠깐 쉬다가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어쩌지..." 너무 미안했다.


 지금까지 데이트 약속을 미루거나 무른 적이 없었는데, 만나자마자 집에 가야겠다니. 남자친구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어서 집으로 가자며 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하지만, 입이 방정이라는 말은 이런 데서 써야 하는 걸까? 남자친구는 집으로 가는 내내, 농담과 말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애정표현까지 곁들이는데, '대체 나한테 왜 이래...' 하는 생각과 '집이 이렇게 멀었나.. 이대로 그냥 길에 누우면 안 되겠지?' 하는 갈등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배도 아픈데 마음까지 심란했다. 10분이 10시간처럼 느껴졌던 그 순간들. 남자친구를 돌려보낸 뒤 진통제를 먹고 쉬어주자, 조금씩 복통이 가라앉았다. 조금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아뿔싸... 조금씩 이성을 되찾자, 서러움이 마음속 방문을 빼꼼 열고 찾아들어왔다.


'아니, 여자친구가 아프다는데 걱정 한 마디 없이 농담을 해? 참나!'


그렇게 나는 화가 나 버렸고, 남자친구는 이런 여자친구의 심정도 모른 채 [많이 아파 보이더라.. 푹 쉬고 연락해!]라는 톡을 남겼다.





 사실은 말이야,


 정신을 차리고 나니, 머릿속에는 온통 의문이 가득했습니다.


'대체 왜 아프다는 여자친구를 두고 그렇게 말을 한 거지?'

'보통은 걱정돼서 괜찮냐고 먼저 묻지 않던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대하는 게 맞나?'

'나는 왜 지금 화가 나 있지?'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이제는 복통이 아닌 두통이 생겼다.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했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자, 차라리 속 시원하게 그의 의도를 들어보자고 결심했다. 애매하게 추측하며 그의 의도를 짐작하자니, 시간 낭비인 것 같았다.


"자기야, 여자친구가 아프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웃긴 농담을 하고 장난을 쳤던 거야?"


 과연 어떤 대답을 듣게 될까,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두려움에 침을 꼴깍 삼켰다.


"아니야.. 나는 장난치려는 게 아니었어. 사실은...

집까지 배웅해 주는데, 자기 얼굴이 너무 힘들어 보이더라고. 그래서 최대한 아픈 걸 잊게 해주고 싶어서 웃긴 얘기로 신경을 돌려주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오히려 자기한테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해."



 눈치 없이 장난쳤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아픔을 잠시나마 잊고 여자친구를 웃게 해 주기 위한 방법을 쥐어 짜내고 있었던 거였다니...

신기하게도, 이렇게 그의 의도를 직접 본인에게 듣고 나니, 마음속에 복잡하게 얽혀있던 의문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의 의도와 진심이 뭘까 고민하고 끙끙 앓았던 시간이 무색해질 정도로 저에게 문제를 주었던 사람에 대한 답도, 결국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이 일을 통해, 남자친구와 저는 누군가의 아픔을 직면했을 때 반응하는 방식이 매우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이후로 무조건 남자친구의 방식을 존중하게 됐냐? 그렇진 않았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이럴 땐 나에게 걱정된다는 마음을 충분히, 직접적으로 표현해 줬으면 좋겠어.'하고 제가 기대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물론 결혼한 지금도 가끔 잘 지켜지진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남편이 이와 비슷한 행동을 했을 때, '아~ 지금 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하는 거구나.'하고 한 번 이해하게 되니, 화가 금방 식어지곤 한다. 남편도 '아! 맞다,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하지!'하고 제게 필요한 말들과 행동을 예전보다 더 빠르게 보여주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서로 가르쳐주고 있다.





추측보다 확실한 답을 찾는 법


 두루뭉술한 감정을 끌어안은 채 상대의 의도를 추측하다 보면 엉뚱한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저 사람이 날 사랑하는 게 아닐까?'

'분명 마음이 식었다는 신호 같은데.. 어떻게 확인하지?' 하는 의문은 상대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뿐이다. 이는 상대방을 오해하게 만들뿐더러, 오해받은 상대는 설명이 아닌 변명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재빨리 서로의 의도를 확인해 보는 방법을 택했다.

상대의 방식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 매우 달라서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진심을 확인하는 과정을 겪다 보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뢰가 두터워진다는 것을 체감했다.


 첫 번째로,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상대가 나를 향해 진심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 진심이 마음 깊이 남게 된다. 마치 반전영화를 본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로, 상대로 하여금 '내 진심을 이렇게 들어주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여, 훨씬 더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사람의 마음을 감히 추측해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특히 사랑이라는 관계 속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미세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추측보다는 확인이 서로의 사랑을 지켜주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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