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멋진 아침'
'어느 멋진 아침'은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신작이다. 레아 세이두가 연기한 주인공 '산드라'는 남편과 사별 후 홀로 딸을 키우며 아픈 아버지를 돌본다. 그러다 죽은 남편의 친구이자 유부남인 클레르망과 사랑에 빠지고, 고민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와의 만남을 지속한다. 단편적인 사실들만 나열했을 때는 고되고 이해하기 힘든 삶처럼 보일 수 있으나 영화의 분위기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여성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들과 내 머릿속에 남은 잔상들은 대부분 남이 보는 나와 내가 인식하는 내 모습 사이의 괴리에 관한 것이다. 산드라가 딸을 데리고 본인의 할머니 집에 간 장면에서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휠체어를 타면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봐. 어딘가 아프거나 엄청 늙었다고 생각하지." 실제 본인의 정신은 온전하고,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남들이 자신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 색안경이 한 꺼풀 씌워지는 것이다.
몇 년 전, 발가락을 다쳐서 다리에 깁스를 하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다행히 2주 정도 지나 깁스를 풀었지만 아직 한쪽 발에 체중을 온전히 실으면 안 돼서 회복 기간 동안은 약간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다. 그런데 젊은 사람이 절뚝거리는게 이상해 보였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난 내가 '다치고 회복하느라 깁스를 풀고 다시 정상적으로 걸으려고 노력 중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나를 다르게 보고 있던 것이다. 나만 아닌 걸 알면 됐지,라고 생각하기엔 사람들의 시선이 꽤 따가웠다.
영화로 다시 되돌아가 보면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가고 파리의 아파트를 정리하면서 산드라는 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병원의 할아버지보다 이 책들에서 할아버지가 더 잘 느껴져"라고. 시력도 잃고 정신의 온전함도 조금씩 흐려져가는 아버지가 산드라는 낯설다. 그래서 그가 손수 고르고, 오랫동안 읽고 보관해온 철학책들이 본인이 평생 알아왔던 아버지의 모습을 훨씬 더 잘 보여준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산드라는 덧붙여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사람의 다양한 면들이 모여 초상화가 완성되듯, 할아버지의 일부가 된 이 책들을 통해서 할아버지의 모습이 더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초등학생인 여자아이가 이해하기엔 조금 추상적일 수 있으나 굉장히 다정한 말이라고 느꼈다. 한 사람의 취향은 그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추구하는 나의 모습이 내가 모으는 물건을 통해 표출되기 때문이다. 산드라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아버지의 성격, 습관, 현재의 모습까지도.
클레망과 산드라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별한 남편의 친구, 그것도 가정이 있는 남자와의 사랑 이야기는 소위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이러한 커플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며 우리는 말한다. '나쁜 놈이야', '여자를 가지고 노는 거야', '당장 끊어내고 도망쳐야 돼'! 하지만 산드라와 클레르망은 각자 현재 서로가 놓여있는 상황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부정하려고 하거나 애써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우리 또한 그들을 쉽게 판단해버리지 못하게 막는다. 누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그것에 대한 섣부른 판단과 정의를 유보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면 각자의 삶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보인다.
산드라의 아버지는 지금은 늙고 아파서 요양원에 입원해있지만, 여전히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교수이다. 아파트를 정리하면서 처분해야 할 수많은 책들을 기꺼이 가져가겠다는 학생들이 여럿 찾아올 정도로.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산드라는,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삶의 순간순간에 존재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매일 아침이 얼마나 찬란한지 말이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