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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벤선생 Oct 17. 2023

왜 남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ys)의 작품이 던지는 질문

좋아하는 작가 중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영상 작업을 주로 하는 벨기에 출신 작가이다. 서른이 되었을 무렵부터 멕시코에 정착한 그는 이후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의 다양한 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시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초기에는 작가가 직접 퍼포먼스를 하고 영상으로 기록할 때도 많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Paradox of Praxis는 작가가 소포 박스 정도 되는 커다란 얼음 조각을 밀며 멕시코 시티를 하루종일 걸어다니는 모습을 찍은 비디오다. 더운 날씨 속에서 얼음이 녹으며 그 흔적이 길 위를 적신다. 총 9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린 그날의 노동을 증명해주는 것은 마지막 순간 길바닥에 손바닥만큼 생긴 물 자국 뿐이다. 그마저도 금방 증발되어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멕시코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반복적이며, 허탈한지 보여주는 작업이다. 

 

When Faith Moves Mountains는 페루 리마에서 만들어진 작업이다. 당시 페루는 정치적 부패가 만연하고 사회가 안정되어 있지 못한 상태였다. 평범한 시민들은 변화가 필요함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그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했고, 나서더라도 의미 있는 개혁이 일어나지 못하던 때 알리스는 이 작업을 고안해냈다. 

 

그는 500여명의 자원을 받아 이들을 모두 리마에 있는 한 산으로 데려갔다. 반나절동안 이 인원은 각자 가져온 삽 등의 도구로 모래산의 한쪽에 있는 흙을 퍼서 반대편으로 날랐다.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모여 산이 (비록 1cm 가량이긴 해도) 옆으로 옮겨졌다. 제 3자의 눈에는 티도 나지 않는 변화이지만 산을 움직이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 모여 만들어낸 큰 움직임이다. 이날 참여한 이들에게는 공동의 역사와 길이 회자될 이야깃거리가 남은 셈이다.


친구 H는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와 올해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된 알리스의 작업 시리즈 'Children's games around the world'를 언급하며 말한다. 영상 속에서 끙끙대며 타이어를 굴려 높은 언덕 끝까지 올라가는 아이를 보았을 때 자신이 느꼈던 불안과 걱정. 그런데 아이는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꼭대기에 도달하자마자 타이어를 타고 모래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놀이터도, 제대로 된 사회 인프라도 없어 폐타이어로 놀이를 만들어낸 아이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함부로 그 아이를 불쌍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누가 이들이 우리보다 덜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내가 알리스의 작업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제3국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낼 때 그 안에 섣부른 슬픔이나 동정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다. 위험과 불평등과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알리스는 그들의 삶 저변에 깔린 어두움과 어려움을 시적인 방식으로 보여줄 뿐이다.


이 시점에서 다른 친구 Y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남의 고통을 알아야 할까? 더 나아가, 애초에 '내가 다른 사람(특히 지구 반대편에 이름 모를 나라에 있는 이들)의 고통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답을 해야하는지 묻는다.


나는 머릿 속에서 올해 여름 인상깊게 읽은 책 '다크 투어리즘'을 책장에서 빼오는 상상을 한다. 친구들에게 이 책의 중요한 대목이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라며 말했다. 우리도 언제든 이러한 끔찍한 역사나 환경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고, 내가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아픔에 공감하며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즉 다른 인간에 대한 연민은 인간 본연의 온기이기도 하지만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그러한 노력 자체를 거대한 예술 세계로 엮어낸 도리스 살세도를 생각한다. 애도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의 주제가 되는 살세도. 그녀는 예술의 존재 이유가 아픔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다같이 슬퍼하며, 그러는 가운데 집단적으로 치유를 추구하고 티끌만큼 존재하는 희망을 바라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녀가 한 이 아름다운 말은 예술 산업과 시장에 가려져 우리 모두가 잠시 잊고 있었던, 마음을 위로하고 사회를 정화해주는 예술의 역할을 다시금 우리에게 상기시켰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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