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는 파랑' 리뷰
음악을 단순히 혼자 듣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는 시도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각 예술의 경우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가 있기에 설명이 어렵지 않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소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저 느낌만으로 그 감각을 전달해야 한다. 전달을 잘 해야할 뿐만 아니라 그 설명을 듣는 사람도 집중력을 다해 몰입해야 한다. 그러고보면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것 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다행히 음악은 세계 공통어라고 할 정도로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도 감정을 잘 전달하는 매체이다. 가사의 정확한 의미는 몰라도 해외 음악을 들으며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울고 웃기도 하고, 클래식 음악의 경우 어떠한 강렬한 감정이 내 안에서 피어오르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특정 곡을 듣고 내 속에 떠오른 느낌이나 감정을 다른 이들에게 말하면, 그들도 비슷한 걸 느꼈다고 할 때가 많은 것이다.
'G는 파랑'의 재미난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음악과 관련된 역사나 뒷배경이 아니라, 그걸 감상하면서 드는 감각 그 자체를 공유해주는 책이다. 음악이라는 게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 작곡가의 성향,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서 들을 때 더욱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곡을 들을 때마다 그런 히스토리를 공부해야 한다면 어렵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김지희 피아니스트는 그런 부담감은 내려놓고, 친한 친구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하게 각 곡들에 대한 스토리를 풀어낸다.
게다가 저자가 소개해주는 곡이 클래식에 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령 나에게는 조금 난해하게 느껴졌던 진은숙 작곡가의 작품도 언급한다. 즉, 이 책에서 작가는 옛날 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를 고루 제안함으로서 독자가 입맛대로 음악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소믈리에를 자처한다.
책에서는 이사크 알베니스의 스페인 모음곡 1번을 ’후추와 상그리아‘로 표현한다. 나에게 친숙한 식재료로 음악을 표현해주니 새로운 곡에 대한 생경함이 확 낮아졌다. 과연 음악을 들어보니 달콤하고 짭짤한, 또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기분이 몰려온다. 눈을 감고 여름의 스페인을 상상하니 이번주의 추위에 조금은 너그러워진다.
'여름의 빌라'라는 소제목이 붙은 가브리엘 포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나타는 책의 내용을 읽기 전에 음악부터 먼저 들어보았다. 그녀가 이 곡을 왜 여름의 빌라에 빗대었을지, 나도 과연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의 푸릇하고 후덥지근한 여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설렘과 애처로움,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여름들에 대한 기다림이 느껴졌다. 작가의 제목에 이끌려 구체적인 장면을 상상하며 들을 수 있었다.
현재 같이 살고있는 연인과 자주 음악의 밀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장르의 음악을 편식 없이 듣고, 큰 볼륨으로 듣는 그와 달리 내가 듣는 음악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재즈, 보사노바, 클래식이 전부다. 또한 나는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것을 싫어해 들릴 듯 말듯 한 음량을 선호한다. 우리의 이런 성향이 부딪힐 때는 다름 아닌 식사 시간인데, 음악이 아예 없거나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공기와 같은 존재감을 가지는 걸 좋아하는 나는 밥 먹을 때 음악 소리가 들리면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는 음악 없는 식사는 맨밥만 꾸역꾸역 먹는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음악이 없을 때 체기를 느끼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의견차를 조율하며 내가 꺼내든 개념은 음악의 밀도인데, 밥처럼 내 안에 무언가를 꼭꼭 집어넣을 때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음악을 듣는 것이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춰주고, 술을 마시며 몸이 풀어질 때는 음악을 크게 들어도 별로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내 말에 감탄과 수긍을 해주었다. 이후 집에서 음악 때문에 다툴 일은 없어졌다.
'G는 파랑'은 우리집의 부엌에 꽂아두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자리에 앉은 후 마치 와인 리스트를 받아들듯 이 책을 꺼내 그날의 기분과 밀도에 맞춘 음악을 추천받으려고 한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