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컬렉터' 리뷰
컬렉팅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작품이 늘어나면 그 많은 예술품을 어떻게 관리하고 보관하지? 공간이 충분하지 않으면서 계속 그림을 모으는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디어 컬렉터'는 많은 작품들과 함께가며 나름대로 공생 관계를 정립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액자집을 운영하는 아버지 덕에 그림에 대한 안목을 키운 컬렉터, 예술가들의 법률 문제를 해결하는 변호사, 큐레이터 등등 정말 다양한 이들이 책에 등장하며, 자신의 집 문을 거리낌없이 열어주었다.
작가는 뉴욕 크리스티 대학원에서 미술 분야에 대한 폭넓은 공부를 마치고, 그것을 발판으로 만난 친구들을 편안하게 소개한다. 이 책의 멋진 구석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아는 유명한 컬렉터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고 평범한(그러나 너무나 특별한!) 삶을 사는 개개인을 사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있다보면 작가와 함께 누군가의 집에 방문해,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 마음이 끌렸던 컬렉터는 Gale Elston이라는 예술 변호사다. 그녀의 집에 자리한 작품들은 고유의 히스토리가 있으며, 그것은 그녀의 일과도 깊이 연결된다. 윌렘 드 쿠닝과 필립 파비아의 대규모 소송을 상기시키는 파비아의 조각들, 바스키아와 끈끈한 우정을 나눈 우에타라 와츠의 작품. 게일의 집에 있는 작품들은 게일의 정체성 그 자체를 반영한다. 그래서 더더욱 빠져든다. 알려진 예술가의 작품 뿐 아니라 본인이 찍은 사진이나 아이들의 그림도 벽에 많이 걸어둔 점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일상을 즐기는 자들 사이에 있기에.
컬렉터라 하면 왠지 먼지 한톨 없이 깔끔한 집에 미술관처럼 작품을 걸어놓고, 사적인 손길은 닿지 않아야만 세련되어 보일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많다. 특히 인스타그램 등에서 '컬렉터의 집'으로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어마어마하게 큰 벽에 멋진 작품이 걸려있는 사진이 대다수다. 하지만 게일은 아이들의 낙서나 내 취미의 결과물도 그에 못지 않게 끝내주는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책의 중간 쯤 가서는 Cecile Chong이라는 컬렉터가 등장한다. 그녀가 한 말 중 유독 이 대목이 내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자연스럽게 물리적 공간인 집과 나, 특히 '물건'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어. (중략) 물건은 '축적'이 아니라 '관계'에 있더라. 물건과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지가 우리집에 있어야 할 이유가 되는 것 같아. (중략) 결국 내 소속은 장소가 아니라 '지금'이라는 시간이더라. 집을 정리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정리되어 있더라."
세실은 오랜 시간 꽁꽁 묵혀둔 물건들을 버리고 점차 집을 비워내면서 자신이 컬렉팅한 작품들을 진정 감사히 여기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즉, 단순히 무엇인가를 사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물건과 교류를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단순한 물건이나 짐이 아닌 것이다.
자타공인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을 싫어한다. 집 안에 쓸데 없는 물건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최대한 막고 있다. 언제부터인가는 작품도 사지 말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디어 컬렉터'를 읽고 난 지금, 내가 매일 바라보며 사랑해 줄 수 있는 작품들이라면, 그것들로 집안이 가득 차도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