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류의 책 중 하나는, 언제 어느 페이지를 열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 적혀있는 책이다. 마치 타로 카드처럼 내가 처한 상황에 맞춰 글을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이야말로 고민이 많고 한 가지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 가장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책을 읽으며 생각지도 못한 메세지에서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때도 있다.
<해법 철학>은 제목처럼 삶의 문제들에 대해 심플한 철학적 해법을 제시해준다. 목차는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예를 들자면 '판단', '욕망', '부와 쾌락', '역경' 등 우리가 자주 맞닥뜨리는 주제와 가치 판단을 바탕으로 한다.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판단과 역경이라는 주제였기에, 이 부분을 특히 집중해서 독파했다.
판단에 대한 파트에서 특히 음식에 빗대어 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내 관심을 끌었다. 정말 공감을 많이 하게 된 구절이 하나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내가 아는 한 신사가 집에 많은 사람을 초대해 대접하고 나서는, 며칠 뒤에 농담으로(실제 음식에는 그런 것이 없었는데도) 고양이 고기로 만든 파이를 대접했다고 떠들어댔다. 그 파티에 있었던 한 젊은 여성은 너무나 소름이 끼친 나머지 심한 위장병과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를 살릴 길이 없었다." -몽테뉴, 상상의 힘에 대하여
정신과 마음가짐이 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정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파인 다이닝처럼 적은 양의 음식을 고급스럽게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아직까지 먹어보지 않은 음식 중 순대가 있다. 생김새와 냄새 등 때문에 거부감이 있어 한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는데, 내 동생은 나를 보며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만약 미슐랭 식당에 가서 순대를 끝내주게 요리한 디쉬가 나오면, 언니는 진짜 맛있게 먹을꺼라고. 나도 인정한다. 생각이 내 몸을 지배하기 때문에 먹지 못하는 것이라는 걸.
키케로의 말이 이런 경향성을 잘 요약해주는데, 바로 정신적 동요를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은 우리 안에 있고, 그건 모두 판단의 문제이며, 의지에 달린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불운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견디는 것과 마찬가지로 즐겁다 여기는 대상도 더 차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일에 과도하게 흥분하고, 슬프거나 힘든 일은 세상이 꺼져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내 안의 평화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역경에 대한 파트에서도 재밌는 구절이 등장한다. "삶의 조건이란 목욕탕, 사람 많은 곳, 여행길의 조건과 같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역경을 무조건 피하거나 싫어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태도로 나아가야 한다.
고등학교 때 철학에 대해 배우며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스토아 학파는 곧 금욕주의,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라고 배웠기에 둘은 반대되는 개념이며, 나는 당연히 에피쿠로스 학파가 더 마음에 들었다. 나는 항상 즐거움만을 좇았다. 아프거나 힘든 것은 무조건 싫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삶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밝은 것만 찾는 것이 아니라, 일희일비의 감정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주로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을 공유하고 있는 이 책은 내면의 평온함에 집중하는 법을 알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더 아끼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지금,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던 이유다. 초콜렛 박스를 열어 하나씩 아껴먹듯, 이 책의 구절들은 오랫동안 아껴가며 찾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