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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대출 규제, 서민에게는 기회일까? 절망일까?

집값은 떨어지고, 대출은 막히는 세상. 그래도 괜찮을까?

by 무어

내가 아파트와 담을 쌓고 지낸 지 10년이 됐다.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돈 없는 사람이 경제적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아파트였다.

특정 시기에는 폭등하기도 했지만, 내 기억에 아파트가 폭락한 적은 없다.

경기가 안 좋을 때조차도 보합을 나타내며, 안정적인 재산 형성과 심리적 부유함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 아파트를 우리는 10년 전에 포기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서 콘크리트 아파트 대신 반신반의하며 목조주택을 짓기로 한 것이 가장 큰 결정요인이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아토피는 이사한 다음 해에 말끔하게 나았다.

환절기마다 눈두덩이가 붉어지고, 각질이 생기고 피가 나던 증상들이 사라졌다.

목과 팔다리의 접히는 부위도 두드러기처럼 가렵고 진물이 날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 모든 증상이 거의 없다.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을 때마다 몇 시간 안에 가라앉던 그 무서운 증상들이,

집을 바꾸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피부염과 함께 아파트 가격을 보는 버릇도 사라졌다.

주택에서 살면서 간혹 땅값을 확인한 적은 있지만, 근처 아파트 시세를 챙겨본 적은 없다.

예전엔 네이버부동산과 호갱노노를 들락날락하며, 주변 아파트 값은 물론 분양 뉴스까지 꼼꼼히 체크했다.

팔 것도 아니면서, 주식 차트 보듯이 수시로 들여다봤다.


아파트는 많은 사람에게 그런 존재다. 생활공간이자, 자산 형성의 가장 큰 수단.

그래서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은, 살고 있는 사람에게 아파트 값이 오르든 내리든 현실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

진짜 영향을 받는 건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특히 강남의 아파트 값이 몇 달 만에 1~2억씩 오른다는 소식을 들으면,

남의 나라 이야기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난다.

30억짜리 아파트의 가격은 억 단위로 요동치는데,

나는 전세보증금 2억을 올려주는 것도 빠듯한 형편이라니.

상대적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인간의 욕망과 신분상승의 꿈, 현실적인 주거 공간 확보, 재산 증식 수단으로써의 아파트.

이 복잡한 퍼즐 속에서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크게 보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본다.

1.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도록 두고,

대출을 더 많이 해주는 방식

2. 아파트 가격을 떨어뜨리고, 대출을 제한하는 방식


돈 없는 서민과 돈 많은 자산가의 입장은 당연히 다르다.

만약 내가 집도 있고 통장에 20~30억이 있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1번이 유리하다. 대출 이자 부담은 없고,

남는 돈으로 고가 아파트를 사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그 수요는 강남부터 시작해 서울 전역, 수도권까지 집값을 밀어 올린다.

그 사이 운 좋게 청약에 당첨되거나 영끌로 진입한 사람은 어마어마한 차익을 본다.

결국 부자들과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만 웃을 수 있는 구조다.


반면에 집도 없고, 전세보증금 2억과 월급 300만 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1번은 상관없는 세상 이야기일 뿐이고, 오히려 절망감을 키우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2번은 어떨까?


대출을 제한하되,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을 10억 이내로 안정시키고,

6억 정도의 대출이 가능하다면? 전세보증금 2억에 은행 대출 3~4억을 더해,

5억 전후의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회가 생긴다.

물론 지금도 서울에서 5억으로 집을 사는 건 어렵다.

경기도도 쉽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방향성이 중요하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일단 아파트 가격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이미 집을 산 사람에겐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특히 폭등기에 영끌해 집을 산 사람은, 집값 하락이 곧 인생의 리스크가 된다.


여기서부터 정부 정책 담당자들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어떤 정책이든 혜택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 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건 정책 결정자의 철학이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지만,

누군가는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6.27 부동산 대책에서 정부는 살짝 방향을 드러냈다.

그 방향은 최소한, 부자가 아닌 서민 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지 한 채의 집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선택과 기회의 사다리다.

그 사다리는, 어쩌면 집값이 떨어지는 불편함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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