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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문가를 믿지 않는다

실력 없는 전문가 vs 양심 없는 전문가 누가 더 나쁠까...

by 무어

전문가라는 이름 앞에서

우리나라는 호칭에 참 관대하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도, 편의점 점원도 ‘사장님’이라 부른다. 친근하면 ‘이모’ ‘고모’까지 소환된다.

어지간하면 다 선생님이고, 사장님이고, 박사님이다. 그냥 높여 부르는 게 몸에 밴 거다.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나도 언젠가 높임을 받을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이다.

그런 맥락에서 ‘전문가’라는 호칭에도 참 너그럽다. 기준이 명확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쉽게 전문가라고 부른다.


수박 전문가?

나는 수박을 좋아한다. 잘 익은 수박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아삭함, 두세 번 씹으면 입안에 퍼지는 달콤하고 시원한 향, 그리고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그 순간이 좋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수박을 고르는 게 쉽지 않다는 거다.

며칠 전 구리농수산물시장에서 큰맘 먹고 3만 원짜리 수박을 샀다. 올해 수박값이 비싸서 더 신중했는데, 집에서 갈라본 순간 실망이 확 밀려왔다. 바깥쪽은 덜 익어 흰 힘줄이 씹혔고,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건 가운데 2/3 정도였다.

그 수박을 골라준 과일가게 점원은 전문가였을까?

알고도 덜 익은 걸 줬다면 양심 없는 전문가, 모르고 줬다면 실력 없는 전문가다. 둘 다 신뢰는 깨진다.


“그건 안 됩니다” 전문가들

살다 보면 이런 ‘전문가’를 종종 만난다.

집을 지으면서 미장이나 타일 작업을 볼 때, ‘내가 하는 게 더 낫겠다’ 싶은 순간이 있다.

회사 일도 마찬가지다. 코딩, 네트워크, 시스템 관련 의뢰를 하면 첫마디는 늘 같다.

“그건 안 됩니다.”

답답해서 직접 며칠 동안 공부해 본 적이 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귀찮거나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전문가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 있다.


상사의 한마디

이런 경험을 당시 상사에게 얘기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전문가 의견은 신뢰해야지. 안 그러면 조직이 안 굴러가.”

변호사, 의사, 판사, 검사… 이런 사람들의 권위가 무너지면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는 얘기였다. 일리는 있다.

하지만 나는, 일의 키를 쥐고 있는 그들의 ‘선의’에만 기대서 움직이는 구조가 싫었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전문가들 때문에 일이 잘 안 풀렸다.


진짜 문제는

결국 문제는 두 부류다.

실력 없는 전문가

지위를 이용하는 전문가

전자는 발전을 막고, 후자는 조직을 무너뜨린다. 둘 다 사회에 해롭다.


그리고 나

이쯤에서 질문이 나한테 돌아왔다.

나는 영상 전문가라 불릴 자질과 능력, 경험이 있는가?

그리고 그 지위를 내 편안함을 위해 쓰고 있진 않은가?

이건 나뿐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유효한 질문이다.


당신은 당신 분야에서 진짜 전문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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