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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포티 Mar 15. 2023

꼭 한쪽의 편에 서야만 하는가?

이재명 대표, 윤석열 대통령, 민주당, 국민의 힘, 진보, 보수

1991년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해에 명지대의 강경대 군이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시위현장에서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사망하였고, 그의 운구 행렬이 경찰의 저지에 막혀 우리 학교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사실 나는 학생운동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동경이 있었다. 갓 대학교에 입학한 처지라 아는 게 없었기에 그냥 막연한 동경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91년 8월에 입대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91년 봄은 그냥 주변인으로 학생운동을 하는 그들을 지켜만 봤다. 군대 가는 마당에 괜히 설치다가 무슨 일 당할까 봐 겁이 났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느 날, 학생회관의 식당에서 800원짜리 저녁을 먹고 나오던 길이었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여기저기 둥글게 모여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나도 저들과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심란했고, 한참 동안 그들의 주변을 서성였다.


그때.. 갑자기 큰 목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김일성 원수님 만세"

"주체사상 만세"


누군가가 선창을 했고, 주변에 둘러앉아있던 나머지 학생들이 술잔을 높이 쳐들며 복창을 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것도 못 들은 냥 슬금슬금 도서관 쪽으로 몸을 옮겼다. 서슬 퍼렀던 1991년, 이제 막 대학교 1학년, 무섭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대한민국 편인데, 학생운동도 그 반대쪽도 내 편은 아닌 것 같았다.


그 후로 학생운동하는 친구들을 통해 모두가 주체만세를 외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게 되면 자의로 또는 타의로 주체만세에 동조하거나 묵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오른쪽이 학생회관, 왼쪽이 도서관.. 많이도 변했네




그로부터 며칠 후, 교양필수 과목이었던 사회학 수업에서 양비론(兩非論)양시론(兩是論)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전날 모 신문 사설에 양비론과 양시론을 까는 내용이 나왔었고, 강사는 사설과 같은 논조로 사설의 내용을 수업에서 다루었다.


양비론, 양시론을 펼치는 사람은 박쥐 같은 회색분자라는 이야기, 학생운동이 시대의 선이고 현 정권은 시대의 악이라는 이야기, 중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있는 것은 죄악이라는 이야기.. 등등 강사는 열변을 쏟아내었다.


그냥 듣고만 있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질문을 하고 말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둘 다 옳을 수도 있고 둘 다 틀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 무조건 하나는 옳고 하나는 그르다고 판단해서 한쪽 편에 붙어야만 하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학생운동과 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일반적인 상황에서 양비와 양시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수업시간 내내, 나는 그 강사에게 말로써 개 맞듯이 맞았다. 젊은 놈, 신념, 비겁, 도망.. 이런 말들로 열라 두들겨 맞았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인터넷으로 양비론 양시론을 검색해 봤다.


1. 모 신문사의 사설이 양비론 양시론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들이 있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신문사는 1991년 양비론과 양시론을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던 그 신문사였다.


2. 글쟁이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양비론 양시론이라고, 글쟁이로서의 책임감이 없다는 욕설 섞인 비판의 글도 있었다.


3. 논술에서 양비론 양시론은 안 되나요?라는 고등학생인 듯한 이의 질문이 있었고, 논술에서 그런 태도는 안된다는 누군가의 단호한 답변이 있었다.


양비론과 양시론은 아직도 하나의 의견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나 보다.




나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꼭 하나를 택해서 그 편에 서야만 하는 건가?


둘 중 하나만 옳을 수도, 둘 다 옳을 수도, 둘 다 틀릴 수도, 그냥 서로 다를 뿐일 수도, 제3의 제4의 옳음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재명 대표 윤석열 대통령 / 민주당 국민의힘 / 진보 보수...


어느 한쪽의 편도 들어주고 싶지 않은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목소리 내며 살기 힘든 것 같아 안타깝다.





여하튼, 내가 참 예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는 걸 그때도 알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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