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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Mar 24. 2024

캔디맨을 찾아라!

행복이란...

주말에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갔더니 농산물 코너 옆쪽으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온갖 초콜릿이나 사탕등을 진열해 놓은 진열대가 보인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곧 화이트 데이이고 그 장식은 그날의  이벤트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와 관련된 기념일 등에도 딱히 의미를 두지 않는 나와 남편은 이렇게나 초콜릿 종류가 많았다니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십 대 시절 많은 친구들이 밸런타인데이 나 화이트 데이를 위해 내가 생각하기에는 꽤 거금인 돈을 투자하는 것을 보면 내 돈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아깝던지!

직접 구매한 초콜릿을 이쁜 포장지에 아기자기 담고 그것도 모자라 큰 바구니에 넣고 손글씨로 쓴 카드까지 동봉하면 비로소 작업이 끝나는 것이다.

요즘은 그런 수고를 덜 수 있는 완제품을 어디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연인이나 가족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는 무의미하게 지나가던 작년 화이트 데이 날이었다.




출근을 하고 커피머신 옆 테이블을 지나는데 작은 나무상자에 사탕이며 초콜릿이 종류도 다양하게 가득 들어있었다.

누군가가 화이트데이를 맞아 여직원들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펼친 게 확실해 보였다.

'우리 회사에 이런 센스쟁이 가 있었나?'

평소에 별 관심 없이 바라봤던 남자 직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봤다.

3층의 박사원인가? 가끔 뜬금없이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우리에게 나눠주고 갔었던걸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여자친구도 없고 대화도 잘 통하지 않아 가끔 '나 벽 보고 얘기하고 있니?' 하는 기분이 들게 했던 박 이 그럴 리가!

그렇다면 2층의 홍대리?

아니다. 나는 더 심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회사 로비에서 우연히 만나 스치기라도 할라치면 몸부터 사리면서 한쪽으로 비켜서며 눈도 마주치지 않는 홍 이? 절대로 아냐!

옷 입는 센스가 엉망인 주 팀장도 아니고, 본인 먹는 것만 엄청 밝히는 이 사원도 아니고, 같은 과에 있는 모든 남자들을 끼워 맞추어도 퍼즐이 맞지를 않았다.

그날 하루종일 여직원들의 입에서는 남편도 베풀지 않았던 선행을 베푼 이름 모를 홍길동이가 누구인지를 궁금해하는 남자직원들의 이름이 죄다 불려 나왔다.

단지 초콜릿 하나로 세상 좋은 사람이 되어버린 그 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2번째로 채워진 상자의 바닥이 보였을 때 누군가가 써놓은 짧은 메모지가 발견되었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테이블에 놓여있던 상자도 자취를 감추면서 자연스럽게 그 일은 잊혔고 한 해가 지나 올해 다시 화이트 데이가 다가왔다.

작년의 기억을 더듬은 여직원들은 '올해도 과연 캔디맨이 찾아올까?'를 나름 기대했고 우리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음을 알았는지 역시나 캔디맨은 자신의 본업에 충실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더 많은 사탕과 초콜릿을 가져다 놓았다.

투명인간 옷이라도 걸쳤는지 아니면 서프라이즈를 위해 첫새벽에 출근이라도 했는지 감쪽같이 완전범죄를 저질러놓고 사라졌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해 더 궁금해하기도 하련만 이름을 밝히지 않은 기부자를 보호라도 하듯 암묵적인 모르쇠로 다들 한마음이 되었다.

사탕과 초콜릿을 먹어서 그런지 제목도 알 수 없는 노랫말을 하루종일 입안에서 흥얼거리며 기분이 들떴다.

삼삼오오 모여 웃음을 띠는 모양새가 다들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았다.

그렇게 캔디맨 덕분에 우리는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이번일을 계기로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시해서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티 나지 않는 것 들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티가 나지 않지만 그러기에 더 소중하고 진심으로 다가오는 것 들 말이다.

티가 난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나 태도가 어떤 형태로든 뚜렷이 나타나는 기색이란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서면 어떤 식으로든 티가 난다.

매 순간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분명히 어느 순간 보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나는 어떤 남학생을 좋아했는데 그 당사자보다 그 아이 친구들이 눈치 빠르게 캐치하고 나만 보면 놀려댔었던 기억이 난다.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감추려 해도 나도 모르게 티를 내고 마는 것.

나는 그런 식으로 티를 낸 홍길동이가 참 고맙다.

눈인사 한번 건네기 힘든 바쁜 일상에서 그 사람이 보인 마음속의 티는 우리들의 마음 안에 제대로 콱 박혔기 때문이다.

나도 오늘만큼은 적어도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티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연락하지 않았던 학창 시절 친구에게 는 안부전화로.

강한 햇빛에 벌겋게 타오른 얼굴을 하고 귀가한 남편에게는 마스크팩 한 개를 붙여주는 것으로.

사춘기 딸과 아옹다옹 다투느라 힘든 친구에게 는 따듯한 커피 한잔을.

꼬마 김밥집을 하는 언니 가게 바로 옆에 똑같은 메뉴로 입성한 가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언니에게는 상대방 욕을 같이 해주는 것으로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티를 말이다.



실제 있었던 일화지만 조금 각색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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