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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Nov 30. 2024

큰언니는 왜 이럴까?

그래도 우리 언니니까...

저녁을 먹고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는데 셋째 언니가 전화를 했다.

"너도 큰언니한테 전화했다며?" 

다짜고짜 볼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 안 한다고 했잖아"

언니는 숨을 한번 들이켜더니  목소리 톤 을 약간 낮추어 하지만 며칠 전 나눴던 나와의 대화를 상기시키듯 말을 이었다.

"언니, 안 하려고 했는데... 옆에 사는 내가 가만있기가 뭐해서...."

언니의 잔소리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다들 그렇게 하니 큰언니가 항상 저러는 거다.. 다 우리들이 언니버릇을 잘못 들인 거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냐'

그 말에, 

"언니 앞으로 계속 그러고 싶어도 큰언니 나이가 낼모레 75세인데 앞으로 그러면 얼마나 그러겠어...." 나는 말끝을 흐렸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가족들의 연말모임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7남매의 단톡방에 넷째 언니가 글을 올렸을 때다.

다들 '좋아요' '그때 만나요' 등등 기분 좋은 멘트들을 날리고 있는데 큰언니가 답변을 달았다.

'나는 밖에 나가면 잠도 잘못 자고 그러니 이번모임은 불참하겠다'

다른 때 같았으면 다들 한두 마디씩 큰언니의 참석을 종용하는 말들을 했을 텐데 이번에는 다들 조용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큰언니의 말에 댓글을 달지 않았고 그 밑으로 다른 톡 내용들만 우후죽순 쌓여갔다.


자매들만의 모임이나 형제들이 전체 다 모일 때도  큰언니는 일단 불참선언을 하고 본다.

대부분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다른 약속과 겹쳐서 등 등 다양한 이유들이 등장한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가만있지 못하고 누구든지 나서서 언니를 어르고 달래서 모임에 참석시킨다.

큰언니가 진짜로 갈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단 빼고 보는 성격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고 한 번도 '그래 좋다' 쿨하게 언니가 먼저 나서는 법은 없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마음이 변해 참석여부를 넌지시 알려오기도 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도돌이표처럼 항상 반복되었다.

일찌감치 혼자가 된 큰언니가 안쓰럽고 짠해서 우리들은 딱히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언니에게 사정하듯 매달린 적도 많았었다.

그러기를 여러 해... 정이 많은 둘째 언니, 무던하고 마음 따듯한 넷째 언니, 쓸데없이 마음 착한 나, 다혈질이고 할 말 다하는 셋째 언니까지,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다들 작정을 했는지 '그냥 언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어라'로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자매들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왜 항상 이런 걸로 언니한테 사정을 해야 하냐, 또 모임 후에는 얼마나 말이 많으냐, 모이기도 전에 짜증부터 난다' 다들 한마음으로 대동단결되어 한 마디씩 토해냈다.


그 말들을 지켜내기라도 하듯 모두들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며칠 전 다시 한번 단톡방에서 이러저러 말들이 오고 가고 있는 중에 가만히 있던 큰언니가 단톡방을 나가버렸다.

그러자 바로 올케언니가 큰 언니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옆에 살고 있어 가뜩이나 큰언니 눈치를 보고 있던 나는 참으로 난감했다.

무언가 마음이 상한 것 같은 큰언니를 무시해 버려도 되는지 그래서 또 언젠가처럼 '너는 참 정이 없다' 란 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고민을 조금 하다가 전화를 했다.

큰언니는 아마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누가 전화를 해오는지.

그런 것으로 동생들의 언니에 대한 사랑을 판단하고 있을 언니가 눈에 그려져서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고 불편한 마음을 견디느니 보이콧하듯 정해졌던 우리들의 약속을 깨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한 것이다.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으니 생각해 보겠다는 큰언니의 말을 들은 후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 넷째 언니가 그보다 전에 둘째 언니가 어떤 의무감인지 측은지심인지 모를 마음을 끌어안고 큰언니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을 우리보다 조금 멘털이 강한 셋째 언니가 알게 된 것이다.


"언니, 큰언니 저러는 거 잘잘못 따지지 말고, 그냥 조금이라도 젊은 우리가 이해하고 그러려니 하자"

내 말에, 셋째 언니도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지만 "그래도 나는 전화 안 할 거다" 하며 언니의 마지막 신념을 지켜냈다.

"응, 언니까지 전화할 필요는 없어, 이 정도 했으니 됐어"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 대상이 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가족에게 우선시 됨은 당연한 것이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아이넷을 키워낸 언니에게 이제야 누군가의 사랑이 절실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때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니의 삶을 곁에서 지켜봤던 동생들이야말로 언니가 진정으로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언니가 혼자 버텨냈을 수많은 시간들을 제대로 알고나 있었을까?

그저 수많은 사람들에게 닥친 그 일이 큰언니에게도 온 것뿐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을까?

그것이 다른 누구누구가 아니라 나이차이 많이 나는 막내인 나를 엄마와 함께 키워낸 내 큰언니라고 연민의 눈길로 바라본 적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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