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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Jan 01. 2024

찬 겨울의 추운 시상식

일상기록 단수필



십수 년째 영어강사를 업으로 살고 있습니다. 본업과 부업의 경계에 대해 힘든 고민을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영어강사입니다. 동시에 영어 학습자이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르치는 일도 하기 힘든 법이죠. 어떻게든 끈을 놓지 않고 얇더라도 길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잠깐의 시간이라도 책상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합니다.


언어를 학습하다 보니 많은 자료 중에서도 영상 자료를 많이 찾아봅니다. 소리가 있고 눈으로도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할까요.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인터뷰, 강연, 토크쇼, 스탠드 업 코미디 그리고 영화제의 수상소감 영상을 주로 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별도의 전문가가 작성한 대본을 말로 옮기는 것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느낌을 그 자리에서 표현하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영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영상의 서로 구분되는 개별 장점 또한 뚜렷합니다.


그중 수상소감 영상을 꼽아보자면, 길지 않은 수상소감 영상은 길이에 반비례하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상소감에는 일반적으로 일정 수준의 격식이 담겨있는 언어가 포함되는 동시에 긴장되고 벅찬 감정 때문인지 그 사람이 평상시에 주로 쓰는 말 또한 사용됩니다. 더해서 누군가에게 감사와 경의를 전하는 표현과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소신과 믿음을 전달하는 말도 들어있죠.


여기까지는 주로 미국과 영국의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의 수상소감 영상을 자주 보다 보니 한국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분들의 수상소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어릴 때는 사실 축하공연 보려고 영화제를 보곤 했습니다만 지금은 영화제 본연의 역할에 신경 써서 봅니다. 일 년 동안 어떤 영화가 주목을 받았고 어떤 배우의 연기가 사랑을 받았는지 최종적으로 누가 상을 타고 어떤 소감을 발표하는지까지 보고 나면 일 년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한국 영화제에서 접하게 되는 수강 소감은 미국과 영국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겸손과 감사가 주를 이룬다고 봅니다. 보기 좋은 장면이긴 합니다만 한편으론 아쉽기도 합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듣고 싶은 것은 조금 다르기 때문이죠. 수상하게 된 작품에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 촬영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지, 앞으로는 어떤 역할을 맡고 싶은지 혹은 영화인으로서의 생각과 포부는 어떻게 되는지 등 영화인 본연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영화배우 최민식 님께서 영화 『명량』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했던 수상 소감이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제의 수상 소감으로 영화와 관련 없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2023년 연말 연예계를 뒤흔든 안타까운 소식은 또다시 마음을 착잡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의 소망과는 다르게 그다지 따뜻하지 않은 연말을 더욱 춥게 만드는 소식입니다. 영화제는 아니었지만 TV 드라마 시상식 수상소감에서도 여러 번 추모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같이 추모했고 눈물을 흘렸고 반대로 누군가는 공감하면서도 수상소감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TV 드라마를 보지 않기 때문에 시상식도 보지 않았고 추모의 수상소감은 기사 위에 놓인 활자로 접했습니다.


드라마 시상식의 수상 소감으로 드라마와 관련 없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잠시 예외가 생긴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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