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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Jan 31. 2024

13mm의 거리

일상기록 단수필


안경을 착용한지 30년쯤 되면 제 몸의 일부처럼 느낀다는 말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물론 제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착용했으니 정말 긴 시간 동안 안경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10년쯤 지났을 때는 안경을 쓴지도 모른 채 세수를 하려고 얼굴에 물을 끼얹은 적이 있었고 20년 정도가 되니 안경을 쓰고 잠에 들어도 전혀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였죠. 거친 구기종목 운동을 하면서도 안경을 벗지 않아 때로 다치기도 하고 안경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심지어 미간에 난 상처는 흉터가 져 지금도 분명하게 눈에 띕니다. 마치 인상을 쓰고 있는 것처럼 흉터가 자리 잡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시력 교정 수술까지 진지하게 생각을 뻗어본 적은 없지만 렌즈 착용은 몇 번 시도해 본 적이 있더랬습니다. 하드 렌즈는 잠시 제외하고 소프트 렌즈만 생각해 보면 서너 번 정도 되는 듯하군요. 성격상 조심조심하면서 렌즈를 착용하고 집에 돌아오면 제거한 후 깨끗이 세척해서 보관통에 넣고 하는 행동과는 영 거리가 먼지라 참 렌즈에 정을 붙이는 게 힘들었습니다. 손 끝이 야물지 못해 눈에 자극이 가지 않게 빼는 것도 힘들고 렌즈에 상처가 입지 않도록 세척하는 것도 여간 귀찮고 어려운 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렌즈를 착용하면 아주 조금이라고 해도 눈 한가운데 머무르는 이물감과 건조함 또한 신경 일부를 강탈해 계속해서 저를 괴롭힙니다.


여기까지가 좀 더 기술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다른 면에서 렌즈 착용을 피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습니다. 보다 더 심리적인 문제라고 할까요. 원인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물리법칙에 해당하지만 결과에 작용하는 것은 철저히 제 기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풀어 설명하자면 그렇습니다. 안경을 평생 착용하고 살아온 사람에게는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원래의 세상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색부터 질감 그리고 크기까지 전부 안경이 빚어낸 모습이면서 동시에 내가 인식하는 세상이 됩니다. 다만 그 사이에는 약 13mm 혹은 1cm가 조금 넘는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안경을 벗는 것은 씻을 때와 잠을 잘 때 빼고는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죠. 안경을 쓰지 않고 맨눈으로 생활해도 사물을 인식하고 구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경우는 제외입니다(저는 교정 전 쌍안 시력이 0.1로써 안경을 벗으면 온 세상이 전부 뿌옇게 변해버립니다.)


이때 렌즈를 착용하면 발생하는 일은 사뭇 흥미롭습니다. 13mm의 짧은 거리가 사라지고 얇은 렌즈가 검은자위 위를 덮으면 순식간에 이 세상은 몸집을 키우게 됩니다. 사실 이편이 실제 크기에 해당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평생을 안경과 함께 살아온 사람에게 렌즈가 허락하는 풍경이란 상당히 어색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하죠. 안경과 동일한 도수로 맞춘 렌즈를 착용할 테고 그렇기 때문에 크기를 제외하고 바뀌는 점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참 낯선 모습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모든 사물의 크기가 원래 크기로 커져서 보이는 것에 별다른 감흥을 못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전적으로 제 개인의 심리적인 기제에서 비롯된 문제이니까요. 내 손이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문득 고개를 돌리니 매일 두들기는 컴퓨터 자판 위 개별 키조차 유별스럽게 커 보입니다. 솔직한 고백을 늘어놓자면 큰 머리와 얼굴이 렌즈를 착용한 채로 거울을 보면 저를 더 우울하게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참 우습습니다. 고작 1cm에 불과한 거리 때문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감정 변화를 느끼게 되는지, 고작 이 짧은 거리 때문에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자신감 혹은 더 나아가 힘들게 쌓아 올린 자존감이 흔들려야 하는지. 그동안 겪은 세월이 만만치는 않은 덕분에 곧잘 스스로를 다독이고 신발을 챙겨 신으면서도 렌즈를 착용한 날의 해 밝은 오전은 울퉁불퉁한 기분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겨울에 마스크를 착용해도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습니다. 마스크 끈이 걸린다던가 땀을 많이 흘릴 때 코를 따라 흘러내린다던가 하는 일도 없습니다. 게다가 원래 세상의 풍경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콧받침이 닫는 곳이나 안경다리가 지르밟는 구레나룻 부분에 자국이 남지도 않으니 이쯤 되면 안경을 능가하는 렌즈의 장점을 포기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죠. 멀리서 보면 희극이나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르리는 와중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안경과 렌즈를 꼭 눈에만 착용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시선을 내려 마음속 저 깊은 방 안에 웅크린 녀석에게도 둘 다 씌워봐야겠습니다. 방 안을 채운 그림과 사진과 영상과 향기와 감촉을 들여다보라고 해야겠습니다. 거기에는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태어난 이래로부터 1990년대와 2000년대와 2010년대와 2020년대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죠. 어떤 대답을 저에게 들려줄지 꽤나 큰 기대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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