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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Jul 20. 2024

덴젤 워싱턴과 조던 피터슨

글모임_쓰기의 날들

7월 18일의 글모임


[글감] 25살 이후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은?




시계태엽을 천천히 돌려 2003년을 가리키는 지점에 시곗바늘을 멈춘다. 깔끔하고 차가운 전자시계보다는 직접 손으로 돌려야 하는 벽시계가 좋겠다. 180,000번이 넘는 회전이 요구되는 것은 그만큼 진지한 마음이 담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난 후의 고등학교 삼학년 교실의 분위기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고, 풀려버린 고삐를 죌 수 없는 학교의 마지막 수단은 이 어린 망아지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잠깐이나마 돌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끌려 간 강당에는 강원도에 위치한 어느 대학 총장이 기다리고 있었고 미래를 선도하는 인재가 돼 달라는 호소에 당시의 어리석은 열 아홉 살은 ‘강원도에 있는 대학이 무슨 인재를 만들어.’라고 중얼거리며 말끔하게 무시했다.(이 아이의 치기 어림은 학업 서열의 계급화가 치열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없는 지역에서 학업을 한 이유라고 애써 변명하겠다)


집에서 입는 반팔 티셔츠의 한껏 늘어나버린 목 부분 같은 과거용 시계를 애써 현재를 향해 되감기 시작한다. 군 복무와 미국 생활을 거쳐 여전히 불안하기만 한 미래의 꼬리를 붙잡고 겨우 사회를 달려가고 있던, 삼십에 몇 년을 더한 어느 해. 그의 눈을 처음 보게 된 곳은 재미 삼아 선택한 영화에서였다. 큰 덩치에 거칠고 영혼을 잃은 눈빛을 표현하는 그의 연기에 매료되어 그의 이름을 이곳저곳에 검색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보게 되었다.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성분표가 있다면 가장 위에 자리해야 할 두 단어를 외치는 그의 모습. 꾸준함(Consistency)과 겸손함(Modesty). 


넘어지되 앞으로 넘어지고 일곱 번 넘어졌다면 여덟 번째는 당당하게 일어서는 굳건한 마음으로, 매일 밤 신발은 침대 밑 깊은 곳에 넣어두어 다음 날 잠에서 깨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바닥에 무릎 꿇고 감사하며 신발을 꺼내라는 그의 신념 어린 연설은, 모든 귀를 내 안으로만 향하게 했던, 모든 소리는 밖으로만 울리게 했던 서른 초반의 여전히 어리석었던 나를 지금까지 버티게 한 감사의 십자가임이 틀림없다.


삼십 대를 절반으로 관통하는 지점에 올라서니 눈앞에 가파르고 거친 절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사회를 벗어나지 않는 한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절벽을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은 곧 냉소와 허무의 바위로 탈바꿈해 끝없이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낙석에 깨진 머리를 부여잡고 막연한 심장을 움켜쥐고 절박한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 한 남자가 나와 똑같이 피를 흘리며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그는 클리셰(Cliché)에 매몰되어 흘러내리는 허무함을 더 차갑게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따뜻하지만 올곧게 차가운 눈으로 끊임없이 내게 물었다. 


잠깐의 편안함과 쾌락을 위해 본질을 회피하고 있지 않는가.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을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환상 속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직시하라 그리고 바라보라. 문제를 느꼈다면 행동으로 옮겨라. 거짓을 말하지 말고 핑계를 대지 말고 남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를 책임져라. 스스로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라. 내 얼굴을 붙잡고 뜨겁게 외친 그는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 서 똑같이 떨어지는 내 짐을 말없이 감내하고 있다.


덕분에 서른아홉의 여름을 지나고 있는 나는 꾸준함에 끈질기게 매달리고 있고 내게 찾아온 모든 행운에 감사함을 듬뿍 덜어 담아두는 사람이 되어 있다. 현실의 좌절이 날카롭게 벼른 칼날을 앞세워 온몸을 찌르고 베어도, 적어도 고통에 굴복해 눈을 피하려고 하지는 않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거짓과 핑계를 멀리하고 선택과 행동의 결과에 책임을 지려는 사람임을 자부하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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