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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Jul 28. 2024

칭찬에 맺힌 두 얼굴

글모임_쓰기의 날들

7월 25일의 글모임


[글감]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은?





목적 없는 글자의 발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언어의 존재 의미이기 때문일 테다. 전기신호와 화학작용으로 말미암은 언어의 탄생은 대화 당사자를 둘러싼 매질을 관통하여 목적지에 다다라 본래의 목적을 수행할 때까지 유지되어야만 한다. 언어의 생존 여부는, 따라서 순간에 탄생한 언어에게 부여된 과제를 끝없이 탐구하고 왜곡과 변질 없이 이해하려는 노력에 달려있다.


언어와 문자의 발달로 인해 현재의 거대 문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반대급부로써 되려 벗어던질 수 없는 영속의 짐을 짊어져야 할 운명을 개척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사회와 문명의 발달과 궤를 같이하여 수준 높아진 복잡성과 함축성을 획득한 언어로 인해 대화 당사자의 역할과 의무 또한 생존과 연관된 목적만을 수행하는 여타 동물의 그것과는 상당히 구별되는 수준의 복합성과 정교함이 요구된다. 예컨대, 문맥과 상황, 말의 어조와 뉘앙스, 미묘한 느낌 따위의 말이 전달하는 내용을 형용하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점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발달이 가져온 필연의 운명은 또한 담긴 뜻(connotation)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의 개발과 해당 능력의 부재가 가져오는 불쾌한 고립의 감내를 수반한다. 가벼운 일상의 수준에서 개별 존재가 겪는 최고 격식의 수준까지 전 영역에 운명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기 때문에 매 순간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호모 커뮤니칸스(Homo Communicans)로서 담긴 뜻을 낚아채어 음미하고 나아가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해내려는 선택과, 이전 세대의 지혜처럼 모르면 약이고 알면 병이니 포기하면 편하다는 선택 중 어느 버튼을 누를지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다.


일생을 돌이켜보면, 적어도 삼십 대에 접어든 이후부터는 전자의 선택 버튼이 항상 눌려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고맥락 언어(high-context language)로 분류되는 한국어 사용자로서 대화 당사자 간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문맥의 향연은 정신 차리지 않으면 길을 잃고 휩쓸려 버릴 만큼 거대하고 화려하고 유혹적이다. 십수 년째 가르치고 학습하고 있는 영어의 상황 또한 매우 흥미롭다. 영어 사용자만큼 칭찬에 관대하고 너그러운 집단이 또 있을까. 이들의 앞에 서 사소한 영역에서조차 끊이지 않는 칭찬 세례를 듣고 있노라면 칭찬 한 마디에 한꺼풀씩 옷이 벗겨져 곧 맨몸으로 마주하게 되는 기분마저 들게 만든다.


경쟁이 심하다는 말조차 너무도 흔해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게 된 사회는, 개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그만큼 더 큰 무기를 온몸에 두를 것을 요구한다. 즉, 살아온 과거와 살고 있는 현재를 토대로 앞으로 살아내야 할 미래에서도 진정 살아낼 수 있을지를 나타내는 지표를 개인의 생각과 무관하게 타인의 확인과 인정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적절한 가치 판단은 개별의 영역에서 필요한 수준만큼 이루어져야겠지만 차치하고서 보면 타인의 인정은 곧 칭찬의 말로 정리되어 전달된다.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함은 2000년 초반에 이미 증명이 되었고, 그보다도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실험의 결과로써 로젠탈 효과로 정리되었다. 진심을 담은 칭찬에 얼굴 붉히며 역정을 내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기억이 없으니, 칭찬하는 말이 도달하는 순간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전기신호부터 미소를 띠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칭찬을 여기저기 뜯어보며 모난 부분을 찾아내려고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직업수행능력을 칭찬해 주는 여러 말과 성격과 행동을 칭찬해 주는 공통된 말들을 들을 때면 깜짝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고 감사를 표하면 될 일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사피엔스(sapiens)는 지혜를 나타낸다고 했나. 현생 인류의 지혜가 자기의심과 사서 하는 걱정까지 불가피하게 생각의 영역을 넓히게 만들었음을 인정해야 하겠다. ‘설명을 자세하게 잘 해준다’는 칭찬 이면에 ‘쓸데없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불편함의 표현이 함축하고 있는지, ‘잘 들어주고 공감 잘 해준다’는 말은 ‘퍼 주기만 할 줄 알아 상대가 쉽게 본다’고 돌려 말하는 조소가 아닐지, ‘영어를 잘하시네요’의 꼬리에 ‘마지못해 잘한다고 해준다’가 달려 있는지, 어둠과 달빛이 어우러진 침대에 누워 마음 놓지 못하고 끝없이 생각에 잠기는 얼굴 위로 칭찬에 춤추는 고래와 채찍질하는 원숭이가 나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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