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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 Apr 20. 2024

1999년 4월 (1)

시카고의 봄

그녀의 가족은 1998년에 시카고 근교로 이사를 왔다. 눈을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남쪽 텍사스와  애리조나에서 지냈던 그녀의 가족들이 5월에도 눈이 내리기도 한다는 시카고에 익숙해질 무렵, 그녀가 다니던 한인 성당에 공고가 떴다. 시카고 대교구(Archdiocese of Chicago)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하고 9 to 5로 일할 수 직원을 찾고 있다고, 원하는 사람은 신청하라고 하였다.


둘째가 이제 네 살, 어린이 집 갈 나이가 되었다. 첫째를 한 살부터 어린이 집 보낸 것이 괜히 미안해 둘째는 어릴 때 그녀가 직접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슬슬 그녀도 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했다.  업무의 내용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그녀는 영어가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신청을 하였다.  


시카고 대교구청은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었다. 시카고 다운타운은 호수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안 가는 미시간 호수 (Lake Michigan)  주변으로 늘어서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미국의 영화에 많이 나오는 장소 중에 하나이다. 인터뷰하러 가는 그녀는 약간 들떴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는 그녀가 시카고 다운타운에 나올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욱 그녀를 설레게 했다.


 그녀가 인터뷰하러 가는 4월 초순을 넘어 중순으로 넘어가는 날, 그날은 화창한 날이었다. 봄기운이 완연하였다. 시카고의 봄은 귀하고 귀하다. 시카고의 겨울이 워낙  길다 보니 사람들은 봄을 갈망한다. 3월이 되면 마음은 봄인데 실제 날씨는 그렇지 않다 보니 바비큐 도구를 닦으며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러다 어쩌다 햇살 좋은 날이 되면, 남자들은 거의 웃통을 벗어젖히고, 바비큐를 구우며, 가족들과 봄을 즐긴다.  '오늘 오후에는 동네에 고기 굽는 냄새가 가득하겠군'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의 사는 동네에서 기차를 타고 시카고 다운타운에 도착했다.



시카고 건물 양식은 쭉쭉 뻗은 고딕양식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배를 타고 이 건축물들을 투어 하는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이다. 높고 날씬하면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쭉쭉 늘어선 사이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하며 그녀는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흥이 났다. '점심시간에 미시간 호수에 나가서 산책을 할 수도 있겠네' 여러 가지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가고 있는데, 가까운 데서 ' 조심해 (watch out)' 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놀라서 말 그대로 '끽'하고 멈추었다. 둘러보니 열 발짝 정도 거리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높은 빌딩 위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이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눈을 들어 빌딩 위를 보니, 처마 밑으로 고드름의 물결이 꽤 길게 옆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고드름의 끝은 마치 송곳처럼 날카로워 보였다. 길건너 양지쪽 건물들은 고드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따뜻해진 날씨에 녹으면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기도 하였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절대 놓치지 않는 미국사람들 특유의 모습으로 고드름으로 인해 생긴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의 귀에 들려오는 이야기 중에는  떨어지는 고드름 맞아서 죽는 사건까지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깨진 고드름과 함께 그녀의 낭만적인 아름다운 빌딩 숲 사이의 산책에 대한  기대도 부서져 버렸다.  이제는 물로 그 형체가 바뀌고 있는 고드름에게 애도의 인사를 하고 그녀는 계속 걸어갔다.


좀 더 호수 쪽으로 걸어가니 미시간 아베뉴(MIchigan Avneu)에 봄이 이미 아름답게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튤립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그 튤립은 그녀가 한국에서 보았던 튤립보다 1.5배는 커 보였다.  다른 주에 살 때도 그런 크기의 튤립을 보지는 못했다. 색상도 참으로 다양했다. 빨강, 노랑, 흰색, 핑크 보라색은 물론이고 짙은 핑크 옅은 핑크 중간 핑크와 같이 각각의 색은 그레이드가 다 달랐다. 두 가지 이상 색이 섞여 있기도 하였다.  그녀는 황홀하였다. 바삭한 봄 햇살에 간간히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살랑거리며 튤립들은 그녀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고드름으로 사람 혼을 빼더니 이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카고 다운타운은 그녀를 맞이하였다.



드디어 그녀가 찾는 건물이 나왔다. The Archidioces of Chicago (시카고 대교구청). 그 건물은 다운타운에서 볼 수 있는 건물로는 좀 작은 편에 속했다. 7층짜리 건물에 폭이 넓지는 않았다. 일하게 된 곳은 가톨릭 법원(Tribunal of Cathoic Churchil)이었다. 그 건물의 5층에 있었다. 7층에는 프랜시스 조지 추기경 (Cardinal Francis George)의 사무실이 있다고 한다. 시카고교구에 속한 교회나 교인의 문제들을 가톡릭 법률에 따라 해석하여 판결을 내리는 곳이라 되어 있다. 시카고 교구의 법원에는 교회법을 전공하신 판사들이 여러 명 계시는데 주로 신부님들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평신도 판사님이 오셨는데 이분이 한국 출신이셨다. 이 분을 보좌하기 위해 한국인 비서가 필요한 것이었다.


카밀라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국인 판사는  4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그녀가 미혼이란 것은 첫눈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가톨릭 법률을 공부한 박사학위 소지자이며, 소정의 절차를 걸쳐 판사 자격을 얻었다고 한다. 영어 발음으로 보아서 그녀는 성인이 되어 미국으로 온 것 같았다.  이렇게 외국인이며 평신도인 여성이 판사가 되는 일은 드문일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가톨릭 법정하면 역사 속 갈릴레오을 사형에 처하고, 마녀들 불태우라고 명한 곳으로 기억되는 곳이 아니가? 그녀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여기서 진짜 재판도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카밀라는 입속이 보일 정도로 깔깔깔 웃어댔다.  지금은 중세시대가 아니라며, 그냥 서류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기본적으로 서류를 정리하고, 관련자 인터뷰하고, 공증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보통 남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 공증인 (Notary)라고 하였다. 카밀라는 그녀가 좋지만 좀 과분하다고(Overqulified) 안타까워하였다. 고졸이면 가능한 자리에 석사가 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카밀라에게 미소로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자리를 일어났다. 오랜만에 나와 본 화창한 봄날의 시카고 다운타운. 그것으로도 나름 탈락의 비운을 스스로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날 연락이 왔다. 잠시 후 그녀는 Hooray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그녀는 일주일 후부터 출근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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