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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량밍 Jun 06. 2023

하필이면 그게 왜 나였을까

나 사랑하기, 3


  그 아이들이 이야기한 소속사는 남자 아이돌만 배출하던 곳이었다. 그 소속사에서 정말 여자 연습생을 키우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루머로도 여자 연습생은 언급된 적이 없었다. 그때보다도 전부터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같은 지역에, 심지어 같은 동네에 있다는데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얼굴을 궁금해하니 사진을 보내준 적이 있는데,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한 얼굴-당시 인터넷 얼짱 같은-이었어서 진짜 본인일까, 의심스럽게 생각만 하고 넘겼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카카오스토리 쪽지로 일호에게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어떻게 하나 둘 나타나는 건지. 솔직히 귀찮았다. 같잖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에게 그들의 연락을 받았느냐 물어보니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왜 나한테 그랬을까. 내가 만만 했던 건가.

  카카오스토리는 메일만 있으면 계정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고, 본인 카톡도 아니고 카카오스토리 언급이나 쪽지로만 연락이 오는 게 이상했다. 그렇지만 그것만 가지고 이상하다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어서 그렇게 또 몇 주를 지냈다.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그래도 친구였으니까 같이 또 얼렁뚱땅 화해한 듯 아닌 듯 지냈다. 그게 원래의 관계로 돌아갔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하나의 관계를 끝내는 과정은 참으로 질척이고 길었다. 살면서 만난 수백 명의 사람 중 한 명 끊어내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웠는지... 한 명을 끊어내기 위해 내가 놓아야 했던 인연은 다섯이 넘었다.


  역시나 평범한 날이었다. 온전한 화해를 한 것이 아니라서 알게 모르게 그 아이와의 관계는 불안정적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지내고 있었다. 우리는 친해질 때부터 A라는 친구와 셋이 잘 붙어 다녔는데, 그날 A는 부모님이 집에 안 계셔서 그 아이를 불렀다. 나는 그날 집에 할머니와 이모등의 외가친척들이 오기로 했어서 A도 굳이 나에게 오라고 권유하지는 않았다. 사람의 집은 그렇게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집에서 A의 집까지 가는 사이에 우리 집이 있었다 보니 그 아이는 내가 생각났던 것 같다. 지금 A의 집에 가는 중이라며 전화를 걸어온 그 아이는 같이 가지 않겠느냐 권유했다. 가능했다면 갔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A도 아니고 왜 본인이 멋대로 권유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같이 놀고 싶었... 아무리 그렇더라도 거절하는 친구네 집까지 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가고 싶긴 한데... 나 집에 외할머니랑 이모랑 와계셔서 안 돼...~"

  "가고 싶어? 그럼 가자."

  "응? 아니, 못 간다니까?"

  "나 곧 너네 집 앞 버정이야. 내릴게."

  "뭐? 아니, 왜? 오지 마!"



  어쩌면 내 대답이 그 아이에겐 데리고 가 달라는 말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올 필요는 없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은연중에 내 말속에 놀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게 묻어났을 수도 있다. 혹시 몰라 부모님께 여쭈어보고 들은 안된다는 대답까지 전화기 너머로 들렸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아이에겐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고 싶다고 투덜대는 내 말만 듣고 와준걸 수도 있지만...


  끊겨버린 전화를 허망하게 보며 무슨 일이냐 묻는 할머니께 상황설명을 하는 사이, 그 아이는 정말 우리 집으로 왔다. 밑에 있으니 내려오라는 문자를 받고 보내고 오겠다 말했을 때, 당신은 괜찮으니 놀고 오라는 할머니께 얼마나 죄송했는지...

  급하게 뛰어내려 간 곳에서 그 애는 그저 웃으며 어서 가자고 말했다. 혼자 웃는 게 얼마나 얄미웠는지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얼른 돌아가라는 말에도 왜 안되냐는 말만 반복하던 그 아이는 결국 저를 두고 가려고 하는 나를 쫓아와 집까지 고개를 넣었다. 다급하게 밀어내도 기어코 집 안에 있는 가족들에게 말을 걸기까지 했다. 깜짝 놀란 동생에게 여유롭게 인사말을 건네고 우리 부모님께 가장 먼저 한 한 마디.


" ― 왜 안 돼요? "


  요즘 유명한 비비지의 응원법-뻔뻔해 당당해 기막혀-이 그때도 있었으면 분명 머리에 맴돌았을 것이다.

  부모님도 비슷한 생각이셨는지 어색하게 웃으시며 안된다고 말리셨는데 그게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지 않았을까. 부모님 입장에서는 무작정 찾아온 아이가 허락도 받지 않고 침범해 온 거나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참 우스운 건, 그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얘는 이런 애지 싶었다는 거다. 거기서 끝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시 이끌고 밖으로 나와 왜 그러냐고, 제발 그냥 가라고 말하는 나의 팔을 붙잡고 같이 가자고 당기는 게 -이런 비유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요즘 이래저래 많이 보이는 전남친 같았다.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주고 보낼 생각으로 그 아이를 데리고 가는데, 살 게 있어서 나온 이모와 마주쳤다. 이모 입장에서는 여전히 실랑이를 벌이고 있으니 적당히 끊어줘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지나가면서 '-이 안된다.'라고 말하셨지만 그 아이는 다시 한번 왜 안되냐고 물을 뿐이었다.


  읽는 입장에서도 지겨울 걸 안다. 왜 그걸 그렇게까지 끌었나, 그냥 화 한번 내지. 애초에 가고 싶다고 하지를 말지.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걸 쓰면서 나도 왜 그러지 못했나,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거듭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16살이었다. 아직은 친구가 소중했고 온전히 끊어내는 방법을 몰랐으며, 내가 본 그 아이는 위태로웠다. 그때의 나는 혹여 내 말 한마디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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