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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량밍 Jun 22. 2023

미워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

나 사랑하기, 4


  결국 한참을 더 투닥거리고 나서야 그 아이가 갔다. 부모 입장에서 이미 없어진 아이를 불러다 뭐라고 하는 것도 좀 이상하니 그 아이를 부른듯한 자식을 혼내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나는 억울했지만, 가족들이 모여있는 곳에 그 아이가 온 것은 내 탓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렇다고 해서 16살의 아이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물론, 나도 착한 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억울함은 미움으로 표현되었다.


  다음 날, 지금으로서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사이의 일을 눈치챈 건지, 들은 건지 모를 친구들이 우리를 불렀다. 나는 점심시간만 되면 체육관에서 뛰어놀던 아이였기에 갑자기 불려 가면서도 더 놀지 못해 아쉬운 마음으로 따라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멀리 가지도 않고, 체육관과 지하로 연결되는 계단으로 갔더니 다른 친구들과 그 아이가 있었다. 여기서 얘기해. 그리 말하던 친구들을 지금 떠올리면 참 신기하다. 지금이라면 분명 알아서 풀게 두었을 텐데, 아이들이어서 그랬을까.


  그 아이도 나도 바로 입을 열지는 않았다. 나는 조심스러워서였고, 걔는... 모르겠다. 결국에는 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집 안에서 있었던 사정을 다 얘기할 수 있는 건 나였으니까.


  쟤가 다른 친구 집에 놀러 간다길래, 나도 가고 싶다고 그랬어. 하지만 못 간다고. 외할머니랑 이모랑... 하여튼 외가 식구들이 다 와있었는데, 쟤가 데리러 오겠다고 그래서 안된다고 했어. 그런데 와 가지고, 가라고 보내는데 집에 따라와서-


  친구들이 내 편을 들어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 거기는 했지만, 더 불쌍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내가 과장했거나 부풀렸다면, 걔가 끼어들어서 무어라 했었겠지만 벽에 가만히 기대고 있던 그 아이가 소리 없이 눈물을 터뜨렸다. 황당함과 억울함이 뒤섞여서 나도 같이 울었다. 지금 보면 유치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게 참 서럽고 어이없었다.

  혼난 건 난데 네가 왜 울어. 그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울음소리를 내느라 말도 제대로 못 했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사선으로 두고 바닥을 보며 양손은 뒤로 해서 잡고 벽에 기대어있던 그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6-7년은 더 된 기억이 아직도 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과를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던 것 같고. 그냥 그러다 점심시간이 끝나가서 각자의 반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내 눈물이 안 멈춰서 체육관에 있던 친구가 다음수업 선생님께 말을 전해주겠다 하여 위클래스로 향했던 걸로 기억한다.

  갑자기 울며 나타난 학생을 안으로 들여보내주신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지만 계속 울기만 했다. 결국 나를 따라온 친구가 다른 친구랑 싸운 것 같다는 대답을 대신해 주었다. 몸이 아무리 안 좋아도 웬만해서는 수업을 잘 빠지지 않는 나였지만, 그날은 5교시의 반 정도를-어쩌면 전부- 울면서 날렸던 것 같다.





  화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나는 그 아이와 화해할 마음이 없었고, 이전부터 의심하던 것들이 커지고 있었으니. 그 아이가 들러붙는 게 짜증 났고, 내 눈에 안 띄었으면 싶었다. 반도 달랐고 층도 다른 놈이 왜 자꾸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건지.

  우리 사이는 동아리 활동에 지장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짝과 움직였을 뿐이었는데, 답답함을 참지 못한 친구들이 활동도 미루어두고 우리 둘을 앉힌 것이다.

  너네 지금 얘기해.

  솔직히 할 말도 없고 쳐다도 보기 싫은 애랑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싶었다. 딱히 걔를 피했을 뿐이지 다른 애들한테 피해를 준 것 같지는 않았는데, 뭐... 피해를 느꼈나 보다.

  거기서 끝이면 좋았으련만. 기어코 우리의 사이는 선생님들 귀에 흘러들어 갔다. 교무실 옆 공간에 그 아이와 나, 둘을 불러 앉힌 나의 담임선생님. 수학은 싫어했지만 담임 선생님은 좋아했다.



" 네가 참자. 친구끼리 일 크게 안 만드는 게 좋잖니. 화해하자. "



  그때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하교했다. 속이 이상한 것 같았지만 선생님이 맞겠지, 생각했다. 잘했다며 손을 꼭 잡아주신 선생님이 나한테 나쁜 말을 해주진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하나는 얘기했다. 나는 시간이 필요하니 그전까지 너와 이전처럼 지낼 생각이 없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겠다. 내 말에 알겠다고, 기다리겠다고 말했던 사람은 누구였는지, 다음 날부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친한 척 붙어오는 그 아이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짜증 났다.

  그냥 걔가 싫어서 그런 거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의사를 받아준다고 해놓고 무시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 나 무시해? 내 말 들어준다며. 대놓고 화도 내보았다. 황당하게도 걔를 통해 알게 되었던 친구였던 이는 어떤 얘기를 들었던 건지, 나를 다그쳤다.


  "너네 화해하기로 했다며, 근데 왜 얘한테만 화내?"

  "내가 언제? 난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랬어."

  "얘는 너네 화해하기로 했다던데? 유치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너는 나한테 왜 그러는데."

  "그러지 마... 내가 그러겠다고 해놓고 신나서 말 건 거야..."


  정확한 대화를 기억하지는 못해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기억한다. 피해자 코스프레도 아니고, 나를 나쁜 사람처럼 만들면서 갑자기 자기 잘못이라고 하는 게 짜증 나기만 했다. 대놓고 짜증 난다는 말도 못 하고 억울한 마음에 그 자리를 피하기만 했다. 학교 애들이 다 알 정도로 싸울 생각은 없었는데. 무슨 소문이 그렇게 빨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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