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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Feb 22. 2024

열쇠

소설

내가 시민 학교에 발을 들여 놓은 건 명백한 실수였다.      


그럴 거면 거기까지 뭣하러 갔냐?”     


 이곳으로 도망치듯 떠나온 뒤 몇 달만에 연락 온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그가 내게 한 말이다.      


아무도 안 만날거면 지리산 가서 땅굴 파고 살았지난 뭐 맨날 은둔만 하냐?”     


라고 돌려줬지만 누가 봐도 초라한 변명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이미 내가 속한 이 동아리를 의심했었던 것 같다. 인간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저지르는 추잡한 짓들에 신물이 나서 새로운 세계로 떠나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외로움과 싸운다는 빌어먹을 알고리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나를 보며 절망했지만 사실 친구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단지 내가 없어 심심할 뿐이었다.      

내가 거기에 발을 들인 것에 대해서는.. 소도시의 낯선 공기에 홀렸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서울의 구청이나 백화점에서 진행하는 문화센터와는 완연히 달랐다. 외국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알콜중독 치료모임같은 둥그런 세팅에 한 사람씩 돌아가며 고백을 하는 구조인데, 그렇다고 과거의 아픔을 고백하는 건 아니고 각자 시나 산문을 써서 낭독 형식으로 발표하고는 사람들에게 박수와 찬사를 받는 그런 형식이었다. 

거의 개근하는 멤버가 10여 명, 제법 많은 숫자였고 다들 서로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성별도 직업도 나이도 다양했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다들 자존감이 깊었다. 자기객관화가 안되는 지적 허영덩어리들이라고 나쁘게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사람들이 너무 따뜻했다. 초창기엔 말이다. 

초창기가 지났다고 해서 사람들이 차가워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온도가 데일 정도로 올라갔다.      

내 입으로 얘기하기 민망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난 내가 자기 소개를 할 때의 그 폭풍같던 공기를 잊을 수 없다. 평균 연령이 50대 중반, 그리고 40대 중반이 귀염둥이 역할을 맡고 있던 동아리에서, 더구나 5년 넘게 같은 멤버 그대로 유지되어온 집단에 서울에서 내려온 서른 살 먹은 미혼 여자가 나타났다는 건 일종의 기상이변이었다.  

모두들 나를 도구로 일상의 균열을 노리고 있는 듯 했고, 심하게 말해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듯 했다. 

.. 이상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멤버 중 하나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문제의 멤버는 지방대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백선생(50세, 여). 그녀는 이 조직의 얼굴이자 머리이자 몸통이었다. 

이혼한 지 10년이 됐다는 그녀는 모임의 주제 선정과 모임의 진행과 모임 후의 뒷풀이 메뉴에 대한 결정권이 있었고 모임의 모든 사람의 신상을 가족처럼 파악하고 있었고 그들로부터 경외와 존경을 받고 있었다. 

백선생은 모임의 그 어떤 아저씨보다도 나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어쩌면 모임의 아저씨들로부터 날 지키려는 듯도 보였다.      

이쯤에서 항변하자. 거기에서 내가 받았던 관심과 사랑을 방치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걸 난 인정할 수가 없다. 짧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성추행을 당했다는 논리와 흡사하다. 그런 종류의 분석이 사후가 아닌 사전에 이루어진다면, 난 평생 누구를 만나거나 어디에 속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솔직히 달콤했다. 단정적으로 말하긴 힘들지만 그렇게 맹목적인 관심과 직렬조명을 받은 기억이 이전까진 없었다.      

나는 백선생이 주도하는 시민학교의 토론회에 참석해서 토론을 했고, 창작 발표회에 참석해서 발표를 했다 (전날 밤을 새워가며 숙제도 했다).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고 뒤풀이에 가서는 사람들이 주는 술을 힘겹게 다 받아마셨고 누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 최선을 다해 웃었다.      

그런 나의 말과 표정과 행동들이 수십 대의 카메라에 의해 생중계되는 느낌이었다. 모두들 내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했다. 게다가 그 카메라들은 주시를 넘어 내게 말을 걸었고 질문을 했고 내 재능과 외모와 성격과 말투를 칭찬했다. 

칭찬 이후에는 참견이 뒤따랐다.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 진정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다가 진정 내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알 수 없는 비율로 섞여 있었다.      


그냥 자기랑 얘기하고 싶어서들 그러는 거야.”     


 백선생은 수위가 지나치다 싶을 때마다 카메라들을 제지해줬고 어떤 모임이든 최후에는 나와 단둘이 남아 그날을 정리하고 해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흡사 시끌벅적했던 MT에서 하나 둘 술에 쓰러지고 난 뒤 맘에 맞는 친구와 강가에 나가 새벽의 물안개를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형국이었다. 신입생을 이끌어주는 자상한 선배 언니 같았던 백선생은 다른 남자들보다 더 나에게 관심이 많았고. 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만큼이나 내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모임에는 백선생 말고도 여자가 두 명 더 있었지만 그들은 낯을 가리는 캐릭터였고 나를 받아들이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 시간을 단축시키는 일은 백선생의 몫이었다.      

나는 백선생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 내가 여기로 이사온 이유에 대해서 찔끔찔끔 털어놓았고 그때마다 백선생은 환호하는 눈빛으로 나에게 이입을 했다. 

자랑스럽지도 않고 소모적인 감정으로 점철됐던 내 과거에 대해 이토록 관심있었던 타인이 있었던가?      


-  -  -  -  -  -  -  -  -  -  -  -  -  -  -  -  -  -  -  -  -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에게 이별을 당하는 건 꽃시장의 꽃 한송이 만큼이나 흔한 일이지만 그건 구경꾼으로서의 얘기고, 막상 주인공으로 당해보면 천지가 개벽을 한다. 비유하여 꽃시장의 잘려나간 꽃 한송이 되겠다. 

모가지가 잘려 나간 꽃. 6개월 전의 내 처지가 정확히 그랬다. 뿌리채 뽑히지 않아 목숨은 붙어있지만 줄기만 대롱대롱 아무 의미없는 생명체. 언젠가 다시 꽃이 필거란 덕담은 차라리 고문이었고 다행히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 기간동안 내가 얼마나 울었고 얼마나 바닥이었는지, 세상의 여타 비참함들이 얼마나 아랫것들로 보였는지는 얘기할 것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송충이가 허리를 곧추세웠다가 내리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지저분한 감정들이 천정과 바닥을 오가며 매일같이 진자운동을 했고 시간은 송충이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하지만 그래봐야 육개월이었다. 내 생애 가장 긴 육개월을 살고 나서야 비로소 공간 지각이 되었고, 공간 지각이 됐으니 이제 이사를 가는 게 순서였다.      

책꽂이에서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사회과부도를 꺼내 펼치며 나락으로 떨어진 뒤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부동산 사이트를 검색하는 것보다 훨씬 근사해 보였다. 어쩌면 이제부터는 꽤 멋진 인생을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분도 조금 들었다. 내가 살 집을 고르기 위해 지도책을 넘기면서 말이다. 

서울에서 200km 가량 떨어진, 면적이 서울의 3분의 1, 인구는 서울의 20분의 1쯤 되는 지방 도시를 골랐다. 적당해 보였다. 여기보다 더 좋은 곳? 그런 식의 기회비용 정신은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이들의 몫이다.      

하루 이틀 정도 부동산을 알아보고 적당한 원룸을 하나 골랐다. 그리고 지체없이 이사를 했다. 짐은 식기와 이불과 옷과 책이 전부였다. 서울에서 쓰던 가구들은 고스란히 버렸다. 정나미도 떨어졌지만 마침 다들 낡아서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조립식 가구 몇 개와 블라인드와 싸구려 그림 두어 개를 샀다. 

가구를 설치하고 블라인드를 달고 그림도 걸고 화분도 하나 갖다 놓으니 제법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며칠동안 쓸고 닦고 하며 청소를 마친 후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서 밥도 해 먹는 것을 기점으로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낯선 도시는 날 적대시하지 않고 온전히 품어줬다. 내게 한결 맑은 공기와 한결 한산한 거리를 선사했고 덤으로 따뜻한 무관심도 제공했다. 난 동네를 산책하며 목적어 없이 ‘더할 나위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 한동안은 말이다.      

사자, 침팬지, 하이에나, 버팔로, 고등어, 꽁치, 개미는 무리 생활을 한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건 사실상 죽음을 의미한다. 

호랑이, 표범, 곰, 코뿔소, 대형고래, 거미는 단독 생활을 한다. 협력이라는 개념이 없고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한다.      

사람은 무리 생활의 인프라 위에서 단독생활의 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스스로 일처리를 신봉하면서 궁극엔 협력을 한다. 고독하고 멋진 삶을 살고 싶지만 외로움은 죽음만큼 싫어한다. 

좋은 건 다 가지려고 하는 인류는 일단 무리 생활을 선택했고 이후로 어떻게든 기회를 엿보는 신세가 됐다.       

내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시민학교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위에 열거한 동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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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근과거를 알게 된 후의 백선생은 좀더 주인의식이 생긴 듯 했다. 이전보다 내 걱정을 더 많이 했고 조언의 양도 많아졌다. 나도 받아들였다. 그 정도 자격이 되는 관계라고 생각했고, 다시 말하지만 이 소도시에서 내가 받고 있는 관심과 사랑이 분에 넘친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권선생이라 불리는 60대 홀아비 시인이 자정을 넘긴 시각에 내 집 벨을 누른 사건이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별 일 아니었다. 술에 취한 권선생이 과일을 잔뜩 사서 내게 갖다주려 했고 난 과일만 받으려다가 그것도 아닌 것 같아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는 인터폰으로 나와 10여 분간 실랑이를 하고는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 모임에서 권선생은 나에게 사과를 했고 난 웃으며 받아들였는데, 그 모습을 본 백선생이 나를 추궁했고 얘기를 듣고는 해프닝을 굳이 사건으로 만들어 권선생에게 사법처리 수준의 분노와 질책를 쏟아내고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거라는 다짐을 받았다.      

이 일을 두고 멤버들의 의견이 둘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였다. 어디서 굴러온 기지배 하나가 물을 흐린다는 쪽과 저 서울 처자가 없었으면 이런 신선함이 가능했겠느냐는, 발상의 전환 부류였다. 

물론 격렬하진 않았다. 백선생의 입장이 워낙 확고했으니까. 하지만 난 이전보다 강한 카메라들의 주시를 받았다. 나에게 뭔가 해명을 요구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백선생은 이마저도 정리했다. 철저히 내 대변인이 되어 모임을 끌고 나갔고 반대 기류들은 가차없이 응징하거나 무시했다. 결국 나는 침묵했고 이로 인해 좀더 구체화된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게 됐고 두 명의 남녀 회원이 백선생에 반발하여 모임을 탈퇴했다. 

모임은 상처를 입었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활기에 넘쳤고 백선생의 주도 아래 각종 스케줄이 축소없이 계속 진행되는 것을 보며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냥 난민 캠프에 봉사왔다고 생각해좋은 경험이잖아.”     


 어느날 둘만의 뒤풀이에서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난 나쁜짓하다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슨 뜻인지도 알면서 굳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백선생은 알면서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계속 답을 했다.      


어차피 오래 머무를 집단도 아니잖아사람들의 시선 신경쓰지 말고 그냥 거리 두고 즐겨그냥 특징없이 살아온 사람들이 소설 쓰고 시 쓰고 그림 그리면서 말년에 자존감 가지려는 거 귀엽지 않아?”     


억울했다. 나름 이 집단에 동화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백선생은 날 여지없이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가 사용한 단어들이 못내 거슬렸다. 난민캠프, 특징없는 삶, 말년에 자존감이라니. 그런 내 마음도 재차 간파한 듯 백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자기가 들어오기 전까진 질식할 것 같았어하하이 공기좋은 곳에서 말야.”     


 할 말이 없었다. 아마 이때부터 뭔가 께림직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서울 친구에게 전화가 왔던 게 이 무렵이었고 친구는 전화한 김에 여기에 놀러와 하룻밤을 자고 갔다. 

친구와 한 이불을 덮고 도란도란 밀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너무 즐거웠다. 난 소도시의 인구 부족과 인프라 부족을 예찬했고 내가 속한 모임, 시민학교를 희화화했고 새로 만나 알게 된 사람들을 희극적으로 소개했다. 

친구는 시종일관 낄낄거리며 내 얘기를 들었고 권선생 부분에서는 배꼽을 잡고 방안을 굴렀다. 백선생에 대해서는 가볍게 넘어갔다. 그 여자 레즈비언이냐?”     

즐겁기만 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엉망이 된 건 새벽녘이었다. 

알고 보니 친구 년은 서울에서 엄청 지저분한 소식을 들고 왔던 것이다.      

.. 날 버린 그 자식이 결혼한댄다.      

이미 끝난 관계니 내가 알 바 아니다. 그런데 이런 뉴스에는 매우 고약한 본질이 숨어 있다.      

.. 그 관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냐는 자기파괴적 물음이다.      

친구 년은 그것마저도 거침없이 친절하게 답해줬다.      


둘이 만난지 1년 넘었대너랑 겹친거야나쁜 새끼.”      


다행히 더러운 기분이 일상을 다시 파괴할 수준까진 가지 않았다.  

이후로도 난 모임에 계속 나갔다. 조금 어두워진 내 얼굴을 두고 다시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백선생이 대표로 추궁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원래 그런 거다. 남자든 여자든 상대방과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실제로 헤어지는 것 사이에는 뉴페이스의 존재 유무라는 변수가 있다. 이사 갈 집을 봐두지 않고 어떻게 지금 사는 집을 떠나겠어. 치사해 보이지만 그게 인지상정인거지. 다만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이야기였다면 더 좋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분노를 조금씩 가라앉히던 차에 황당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곧 결혼하는 그 자식이었다. 

어색한 인사와 어색한 침묵 다 건너뛰고 용건만 옮겨 적는다.      


나 결혼해 / 들었어. 그거 얘기하려고 전화한거야? / 짐정리하다가 니 물건들이 나왔어 / 그래서? / 돌려주고 싶어 / 그냥 버려 / 니가 아끼는 옷도 있어 / 괜찮아 그냥 버려 / 저기너 드라이기 있어? / 갑자기 웬 드라이? / 내가 예전에 니 드라이기 망가뜨렸잖아그때 새 거 사주기로 했는데 그 이후로 니네 집 안 가서.. / 새로 산지가 언젠데 / 어쨌든 샀어이왕 산 거 선물로 주고 싶어.     


 황당했다. 무슨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건가? 생뚱맞게 드라이기가 왜 튀어나오는 거지?

무슨 속셈인지 알려고 머리를 굴리는 내 모습이 무지하게 싫었다. 

그리고 통화를 하면 할수록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래서 거절했다. 

그랬더니 내가 사는 곳으로 온댄다. 얼마 전에 자고 간 친구를 만나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고 한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도 알고 있었다. 

순간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아.. 그년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간신히 붙여놨던 쪽박이 다시 깨지는 기분이었다. 인사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고 불과 며칠 동안이었지만 두문불출했다. 다 꼴보기 싫었다. 모임도 나가지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모임을 빠진 다음날 초인종이 울렸다.      

오선생이었다. 대학시절 문학을 전공한 가정주부. 백선생을 제외하고 모임에 남은 유일한 여자. 모임에서 나랑 나이 차이가 가장 적었고 모임에서 가장 말이 없었다. 난 그녀와 친하지 않았지만 호감을 갖고 있었고 몇차례 소극적으로 다가갔지만 오히려 거리를 두는 건 그녀 쪽이었다. 

그런 그녀가 혼자서 날 찾아왔다는 게 놀라웠다. 그래서 무슨 일 있냐는 그녀의 물음에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버렸고 눈물도 보여줬다. 결혼할 뻔 했던 남자와 죽마고우에게 동시에 정 떨어진 후 낯선 사람앞에서 무장을 해제하는 건 당연한 걸까 아이러니일까. 아무튼,      

오선생은 내 손을 꼭 잡고서 힘내라고 말해줬고 난 눈물을 닦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훈훈했고 난 힐링을 했다. 뭐야, 별일 아니었잖아.

      

 그 다음 모임에 나갔을 때 백선생은 날 보자마자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다. 

난 별일 아니라고 웃어넘겼다. 오선생을 시작이자 끝으로 더 이상 개인사를 떠들고 다니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백선생의 대꾸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자기랑 마지막으로 섹스하고 싶어서 그러는거야.”     


도대체 몇 단계를 건너 뛰었는지 모를 이 말에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그녀가 계속 이어갔다.      


그 남자 말야자기 전 남친결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겠지남자는 원래 다 그래.”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선생은 백선생의 보좌관이었던 것이다. 

또 다시 배신감과 마주하자마자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 이게 무슨 배신이냐, 쪼르르 달려가서 보고할 수도 있지. 어차피 나랑 백선생이랑 친한 거 다 아는데 뭘.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난 그렇잖아도 조언을 구하려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백선생의 추가 질문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답변을 했다. 백선생은 마지막 섹스에 임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나의 말에, 정 그렇다면 자기가 대신 만나 물건도 받고 타일러 돌려보내겠다는 놀라운 제안을 했다.      

며칠 후에 그 자식이 진짜로 찾아왔다. 정확한 우리집을 모르는 그는 지금 터미널 앞 무슨 카페에 있고 밤까지 기다리겠다는 문자를 오전 무렵에 보내왔다. 

나는 서둘러 씻고 옷 입고 화장하고 외출, 터미널로 가서 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버스가 막 출발할 때 백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부탁에 백선생은 기꺼이 승낙을 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했지만 사실 죄송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백선생이 신이 난 목소리가 전화기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서울에 도착한 나는 흡사 외국인 관광객처럼 경복궁과 인사동과 북촌과 서촌 일대를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고 몸이 한계에 다다를 무렵 교보에서 책을 한권 사서 카페에 들어가 절반 이상을 읽었다. 그리고 막차를 타고 소도시로 돌아왔다.      

                           

 

                         2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그 자식에게도 백선생에게도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백선생 말대로 타일러서 돌려보냈는지, 그 자식이 순순히 가긴 했는지, 둘은 도대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뭐가 어쨌건 왜 연락이 없는지 궁금했지만, 계속 궁금해 하다간 왠지 그들에게 들킬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이런 상황에선 쉽게 잠들지 못해야 정상이지만 하루종일 몸을 혹사시킨 게 도움이 되어 금방 의식을 잃었다.      

어젠 잘 타일러 돌려보냈어근데 자긴 안 궁금했어어떻게 전화 한 통화 없냐..”     

제가 먼저 전화하는 게 이치에 맞나요?”     

이치 따지긴.. 궁금하면 전화하는 거지별로 안 궁금했나보네?”     

그랬나봐요그리고 선생님이 알아서 전화하실 줄 알았죠.”     

그래서 지금 전화 했잖아.”     


 다음날 오전의 전화 통화는 이렇듯 이상하게 전개됐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호한 백선생의 태도가 거슬렸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고 백선생은 그것을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따라서 더 이상 나와는 관계가 없다. 관계가 있어도 없는 것이다.      


아 참그 사람이 자기 선물 맡겨놓고 갔어드라이긴데디자인이 이쁘네?”     

저 드라이기 있어요그냥 선생님 쓰세요.”     

에이.. 자기 껄 왜 내가 써?”     

어차피 받으면 누구 주려고 했어요그냥 가지세요.”     

정말?”     


 이렇게 나는 갖고 싶지 않은 물건을 안 갖게 됐다. 

드라이기라니. 다시 생각해도 생뚱맞다. 정말 선물 핑계로 마지막 섹스를 원했나? 그가 뭘 원하든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이제 그만 생각하자. 물론 백선생이 원했던 일상의 균열이지만 어쨌든 그녀 덕분에 별다른 감정소모 없이 일을 넘길 수 있었으니까, 이런 걸 윈윈게임이라고 하나? 

그 일 이후 처음 나간 모임에서 백선생은 날 은근히 피하는 눈치였다. 오선생 역시 백선생과 내 눈치를 동시에 봤다. 남자들은 그런 백선생과 오선생과 내 눈치를 봤다. 

덕분에 나도 불편하고 성가셨지만 그러면서도 왠지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뒤풀이 없이 파한 그날 밤 백선생이 집에 찾아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다짜고짜 사과까지 할 줄은 몰랐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렇다. 백선생은 잘 타일러 돌려보내려 했으나 그 자식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이 뭔데 이렇게 나서냐고 따지더랜다. 고성이 오갔고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그 자식이 내게 전화하려 하자 백선생이 이를 제지하며 거짓말을 했단다.      


자기가 시민학교에서 두 남자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했어.”     


 기가 막혔다. 말 그대로 기가 막혀 지금 내가 기분이 나쁜 건지 그저 황당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 말은 과연 효과를 발휘해 그 자식이 멈칫 했고 백선생의 지저분한 표현을 곁들인 부연설명에 (구체적 디테일은 묻지도 않았다) 가져온 물건(드라이기)을 놓고 조용히 일어나 나갔다고 한다. 

이야기를 끝낸 백선생은 나의 처분을 기다리듯 눈을 내리깔았다.      


아이디어 괜찮았네요잘하셨어요.”     


 아마도 그 자식은 내가 자기한테 버림받고 인생을 자포자기로 살고 있다고 마음 아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헤어지자마자 남자들을 찾아다녔다는 것에 배신감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를 바로잡겠답시고 연락해서, ‘남자 두 명 생겼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너도 싫으니까 다신 연락하지마’라고 하는 상상을 해 보니 오해받는 게 훨씬 우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어쨌든 난 그 자식을 추호도 만날 생각이 없었고 백선생이 아니었다면 그게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므로 이쯤에서 사리분별을 덮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런 지저분한 감정놀이를 끝내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저 때문에 욕보셨어요그나저나 아까 다음 모임 공지를 안 하셨는데한주 쉬는 건가요?”     

.. 맞다자기 내일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오후에 시간 괜찮지?”     

어디요?”     


 나의 분위기 전환이 반가웠는지 백선생은 다시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잘 하는 화가 선생님이 있는데내가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존경하는 분이야뵌 지가 좀 돼서내일 찾아가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     

제가 왜 굳이..?”     

얘기해놨어같이 간다고사실은 접때 갔을 때도 자기 얘기 많이 했는데 그분이 다음엔 꼭 같이 오라고..”     


 다음날 우리가 찾아간 집은 소도시 외곽의 푸른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전원주택이었다. 

‘저 푸른 언덕 위의 전원주택’이란 명칭은 단어 자체로 깨끗하고 상큼한 느낌을 주지만 그게 바로 언어의 한계라는 듯, 거기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차를 세워놓고 현관에 이르기까지의 불과 10여m 오르막에 잡초가 원시림처럼 자라 손으로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적으로부터 은폐를 하려했는지 정말 현관 바로 앞에 서기 전까진 거기가 집인지도 몰랐다. 하얀 판넬로 지어진 그 집은 때와 이끼와 변색으로 인해 무슨 국립공원 임시대피소같은 느낌이었고, 집주인은 아마도 저기서 가족과 함께 살지는 않는 듯 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60이 되었다지만 50도 안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백선생으로부터 장화백 또는 장선생이라 불리는 그는 숱이 빽빽한 검은 머리에 청바지에 하얀 면티를 입고 있었고 흰색이 섞인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집은 서울이고 여기는 작업실로 이용한다는데, 실내는 실외에 결코 뒤지지 않겠다는 듯 조악하고 지저분했다. 부엌 옆에는 커다란 아일랜드 식탁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각종 식기와 음식물, 커피가 담긴 커피잔과 와인이 담긴 와인잔과 재떨이와 물감과 캔버스와 노트북 컴퓨터와 책 몇 권이 빼곡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그 집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이 거기 있는 듯 했다.      

백선생은 아들의 자취방을 방문한 엄마 마냥 즐거운 한숨을 지으며 식탁 위를 치우기 시작했다. 장화백은 그런 백선생을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백선생을 만류하고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고 보고 싶었다,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분인지는 몰랐다. 등등의 찬사가 이어졌고 백선생은 내게 장화백이 얼마나 훌륭한 화가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에서 수묵화, 동양화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분이지만 속세가 싫어 은거하는 중이고 조만간 유럽을 돌며 개인전을 열 계획이랜다. 

장화백이 내 칭찬을 하고 백선생이 장화백 칭찬을 했으니 내가 백선생 칭찬을 해야 균형이 맞겠지만 난 이미 남발되는 칭찬들에 비틀거리고 있었다. 원래 칭찬은 당사자가 없을 때 하는 게 맞지 않나? 

숨돌릴 새도 없이 난 백선생에게 이끌려 장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서재로 안내됐다. 

거기엔 산, 나무, 해와 달, 풀 등을 그린 흑백 그림과 가훈이나 현판에 쓰일 것 같은 글씨(물론 한자로 된)들이 액자에 끼워져 벽에 걸려 있었다. 그 그림들이 어떤 기법으로 그려졌고 어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을뿐만 아니라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장화백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정말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백선생은 그림들마다 걸음을 멈추며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언제 쌓았는지 모를 해박한 관련 지식과 넘치는 의욕이 놀라웠다. 

그렇게 백선생을 따라 한걸음 걷다가 멈춰 고개 끄덕이고, 다시 한걸음 걷고 멈추고 끄덕이고를 반복하는 동안 장화백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우리들을 묵묵히 따라 걸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일렬 종대로 모든 역에 정차하는 완행열차처럼 가다 서다 하며 서재를 천천히 한바퀴 돌았다. 제 3자적 시선으로 봤을 때 꽤 기묘한 광경이었다.       

그 세 명중 두 사람의 강력한 권유로 인해 나는 일주일에 한번 백선생과 함께 그림 수업을 받기로 했다. 딱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 권유를 거부하려면 내가 그림 수업에 대한 비할 수 없이 어마어마한 혐오를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내 취향과는 무관하게 내 일상이 정해지는 것이 여기에서의 컨셉인가보다 하며 또다시 생각을 중지했다. 미술치료 자격증까지 있다는 백선생은 나의 근원적 어둠을 떨쳐내기 위해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까지 첨언을 했다. 기껏 내 과거를 근원적 어둠이라 한다면,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말도 그냥 꿀꺽 삼켜버렸다.      

숙제가 있었다. 다음 시간까지 열쇠를 그려오란다. 장화백은 그림 실력보다는 ‘열림’을 상징하는 열쇠라는 오브제를 관찰하며 무엇을 강조하는지 내면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우리집 열쇠를 식탁에 올려 놓고 A4지에다가 연필로 베껴나갔다. 한 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어릴 때 이후로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인정받은 적도 없었지만 열쇠와 A4지를 오가며 눈을 부릅뜨고 정밀묘사를 하는 시간은 제법 즐거웠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장화백이 색다른 기회를 제공했군.      

 그리고 다음주가 왔다. 

백선생과 나는 다시 그 집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블랙진에 빨간 티를 입은 장화백이 우리를 맞았다. 동양화가라고 해서 꼭 한복을 입을 필요는 없지..라는 생각을 하며 그가 내놓은 더치커피를 마셨다. 

백선생은 굵은 붓으로 단숨에 그린 듯한 열쇠 그림을 장화백에게 제출했다. 내가 보기엔 정물화라기보단 추상화에 가까웠다. 좀더 솔직히 말해 열쇠라기보단 한 마리 올챙이 같았다. 

장화백은 백선생의 그림을 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이번엔 내 그림을 골똘히 들여다봤다. 

잠시 후 그는 시선을 그림에서 내 얼굴로 옮긴 후 또 한참을 골똘히 응시했다. 저명하다는 노화가의 골똘한 시선은 받아내기가 정말 힘들었다.      

속에 엄청난 지도를 가지고 있어!”     


무슨 말인지 몰라 나도 장화백을 골똘히 쳐다봤다.     


지금까지 그림을 몇 점이나 그렸어요?”     

몇 점이라뇨.. 고등학교 졸업한 다음에 제대로 그려본 건 두세 번..”     

쯧쯧이 훌륭한 지도를 그냥 접어놓고 살았네.”     

지도..라뇨?”     

들어봐요누구에게나 인생은 처음 보는 동네를 걸어가는 것과 같아길을 모르니까 당연히 헤매게 되지하지만 지도가 있다면 어떻겠어?”     

길을.. 찾겠죠.”     

그렇지그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지도를 가지고도 펼쳐볼 생각도 안 하고.. 가만 몇 살이라 그랬죠?”     

서른..이요.”     

그렇게 30년을 산 거야!!!”     


 이해도 안되고 공감도 안되는 말이었다. 내가 그린 열쇠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지도라고?

하지만 장화백은 거침없었다.      


그 맑은 눈망울을 접때 처음 봤을 때 뭔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지도를 펼치려면 제가 뭘 해야 되죠?”     

그림을 그려야지!”     


 그날 그 집에서 두 시간 가량 머물렀는데, 그림수업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교육행위는 없었다. 그저 나의 과거를 도화지 한 장에 요약하라는 창조적이고 황당한 지시를 받고 암담해하다가, 

나무 한 그루를 4B연필로 그린 후 내 나이 만큼의 이파리를 그려넣었다. 

백선생은 제공된 이젤 앞에 앉아 로뎅의 조각상처럼 고뇌를 하다가 장화백과 한참을 의논 형식의 담소를 나누더니 이윽고 커다란 원을 두 개 그렸다. 양쪽 끝이 겹쳐지는 관계로 두 개의 원은 무슨 부분집합과 교집합을 나타내는 도형 같았다. 

장화백은 백선생의 그림을 보고 다시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내 그림을 또 한참 골똘히 감상했다.      


놀라운 subconscuousness...”     


 그 뜻이 잠재의식이란 건 집에 와서 사전 찾아보고 알았다. 

내가 먼저 그 집을 나오고 백선생은 남았는데 인사할 때의 백선생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백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치 장화백의 집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는 걸 강조하는 듯, 잠깐 들르겠다고 했다. 

피곤하다고 대답했다. 백선생의 제안을 거절한 건 처음이었다.

그러나 백선생은 물러서지 않았다. 

.  

과일을 좀 샀는데 그럼 이것만 주고 갈게.”     

괜찮아요나중에 선생님 댁에 가서 얻어먹을께요오늘은 그냥 잘께요.”     

사실은 할 얘기가 있어.”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저도 할 얘기가 있어요. 선생님은 제가 그렇게 만만한가요? 라고 속으로 말하며 문을 열었다. 

막상 초췌한 몰골의 백선생을 보자 화가 가라앉았다. 장화백과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자초지종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여기 온 뒤 내가 반복적으로 겪었던 많은 것들이 지겨워지고 있었다. 더불어 단 한 번뿐이었지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어보이는 그림수업도 자체 종강하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말할게난 자기 처음 봤을 때 모종의 책임감을 느꼈었어.”     

?”     

뭐랄까항상 검은색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 같았어예쁜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지게말야그래서 결심했지내가 우산을 걷어줘야겠다머리 위에 있는 맑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게.”     

갑자기 왜...”     

그런데 자기는 도망치는데 너무 익숙한 것 같아.”      


사실이지만 그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 자신의 약점을 당당하게 극복하며 산단 말인가. 도망치는 게 삶의 방식이라는데 뭐가 문제야. 하지만 대답은 반대로 나왔다. 빨리 이 자리를 마감하고 싶어서였다.      


인정해요제가 어떡하면 될까요?”     

갑자기 밤에 들이닥친 건 미안한데오늘 자기 그림을 보고 자꾸 미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어.”     


예상은 빗나갔다. 내 그림 운운은 또 무슨 소린가. 오늘밤 엄청나게 피곤하겠다 싶었다.      


내가 트라우마라고 하면 자기는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얘기하겠지만그래서 그게 극복이 안되는거야난 오늘 자기 그림에서 일촉즉발의 어떤 것을 느꼈어장선생님 의견하고도 같은 맥락이야.”     

하지만 장선생님은..“     

사실은 장선생님하고 그 얘기를 하느라고 늦은거야그리고 결론을 냈지내가 당장 자기를 만나는 걸로.”     

저기.. 결론이 그렇게 나는 건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제가 그린 그림이 무슨..”     

그린 사람 본인은 모르지그걸 보는 사람이 알지내가 미술치료사잖아.”     


갑자기 자격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오늘 저 만나서 뭐 하시려고..?”     

그럼 시작할게눈을 감고 가장 최근에 헤어졌던 남자친구를 떠올려봐.”     

?”     

먼저 주관적 감정을 다 지우고 그 사람 자체를 이미지화 하는거야그 다음엔 거기에 자기를 집어넣는거자,”     


주관적 감정을 이런 방식으로 지울 수 있다면 세상에 오해나 갈등이나 부조리가 진작에 사라졌겠지. 다시금 백선생의 미술치료 자격증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자기가 그 사람에게 한때 얼마나 사랑 받았는지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떠올려봐.”     


점입가경이었다.      


너무 막연하면 세세한 디테일들을 다시 기억하는거야둘이 좋았던 기억즐거웠던 추억처음 키스나 섹스를 했을 때둘이 갔던 여행들..”     


너무 오랫동안 내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게 딱 맞는 옷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문제의 옷의 첫단추를 푸는 시점에 다가올수록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떠올렸어요그 다음은요?”     

지금 어떤 기분이야?”     

.. 달콤하네요.”     

거짓말 하지마.”     

?”     

지금 거짓말하고 있잖아.”     

달콤하다는 거요?”     

그 사람 떠올리지 않았잖아.”     


내가 백선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정한 부분이었다. 이 아줌마 날카롭다. 그러나, 

백선생에게 감탄함과 동시에 그 순간 난 백선생을 버렸다. 

버렸다고 해서 갑자기 버럭 소리를 내며 쫓아낸 건 아니었다. 그날의 퍼포먼스의 끝이 궁금한 마음에 오히려 사과를 했고 나머지 과정을 충실히 이행했다. 

정말 가관이었다. 백선생이 내게 시킨 가상 시간여행의 내용은 19금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그 자식과의 마지막 섹스를 상세히 묘사하라길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가 또다시 거짓말 한다고 된통 혼이 났다. (하지만 기억이 안나는 건 사실이었다) 그날밤의 백선생은 단단히 작심을 한 듯 보였다.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에서 아직 어린 아이의 엄마를 보았지만, 악의가 보인다는 점에서는 영락없는 계모였다. 

도대체 왜 이러나.. 하는 궁금증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안 맞는 옷을 벗겠다는 욕망이 더 컸다. 

새벽 4시쯤에 나는 끝내 첫 단추를 풀렀다.      


선생님이제 그만 할께요.”     

알았어잠깐 쉬자.”     

아니요그만 나가 주세요.”     


순간 백선생은 멈칫 했고 잠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많이 피곤해?”     

트라우마든 뭐든 이젠 아무 상관없다 싶을 만큼요.”     


 백선생은 다시 나를 한동안 쳐다봤다. 내가 썼던 표현들이 지금까지 없던 종류라는 걸 새삼 깨달은 듯 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이 말은 내게 지금 뭔소리하는 거냐고 묻는 게 아니었다. 

백선생의 시선은 내 왼손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왼손에는 TV 리모콘이 쥐어져 있었고, 언제부턴지 엄지로 음소거 버튼을 꾹꾹 누르고 있었고 그 의미를 백선생이 이해해버린 것이다. 

그녀는 또다시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숨쉬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눈초리가 1분 이상 지속됐다. 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버렸다. 

시선이 부딪힌 상태에서 다시 1년같은 1분이 흘렀다. 

이후로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어느 순간 백선생은 귀신처럼 스르르 일어나 내 집을 나갔고 난 배웅을 하지 않고 곧바로 누워 잠이 들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찝찝하고도 개운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날 밤과 그 다음날 밤은 폭풍의 전야였다.       


    

                 3          


 다음날은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굳이 빠지려던 건 아니었다. 어차피 모임도 그만두기로 작정했지만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기회 봐서 최소 몇몇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하겠지만 그게 그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바탕 쉬고 나서 청소를 했다. 간단하게 청소기 한번 돌리려고 시작한 거였는데 구석구석을 쓸고 닦게 됐고 다용도실에 먼지 쌓여 쳐박혀 있던 스팀청소기까지 꺼내 집안에 광을 내기에 이르렀다. 다 끝나니까 밤이 되어 있었고 땀을 닦고 집안을 둘러보면서, 하루 종일 내가 한 짓에 대한 감동이 몰려왔다. 집이란 게 이렇게 산뜻할 수도 있었구나...     

밤이 되자 일말의 불안감이 찾아왔다. 서울에선 느끼지 않았던 종류의 불안, 여기 온 후로 난 심심치 않게 기습적인 호출과 방문을 받아온 터라 한때는 즐겁게 받아들였던 조건 반사같은 긴장이었다. 무시무시한 여운을 내뿜으며 퇴장한 백선생의 역습이 신경쓰였다. 배은망덕한 계집애라고 생각하겠지. 지금쯤 나에게 할 해코지를 궁리하고 있을까? 아니면 설마, 며칠 뒤에 나타나 웃는 얼굴로 내게 사과하며 다시 잘 지내보자는 제안을 할까?

엄밀하게 말해 난 보복을 당할 만큼 잘못하지도 않았고 사과받을 만큼 무고하지도 않다. 

그냥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을 더 이상 안 보고 싶은, 매우 일상적인 결정을 한 것일뿐. 

여기까지 생각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에 초인종이 울렸다. 

백선생일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오선생이었다. 백선생은 아니지만 사실상 백선생으로 인식되는. 웃으며 맞아들이긴 했지만 그건 경계의 웃음이었다. 알아차리든가 말든가. 

하지만 오선생의 표정은 아예 대놓고 어두웠다. 이건 또 뭔가. 네년이 어떻게 감히 백선생님께... / 당장 가서 사과드려요. 이건 아니잖아요.. 뭐 이런 종류의 내용인가?     

오선생은 내가 대접한 커피를 굳은 얼굴로 홀짝홀짝 마시며 뜸을 들였다. 

나로서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큰 잘못도 없으니까. 백선생에게 들은 자초지종 혹은 지시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계속 망설인다면 아예 내가 먼저 얘기를 할 의향도 있었다. 

따라서 조급함이 없는 나는 좀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선생님 시민학교... 그만두실거죠?”     


난 오선생을 빤히 쳐다봤다. 

내 의중을 읽었다고 놀라기엔 뭔가 다른 불편함이 있었다. 

‘너 이제 우리 모임 나오지마’ 이런 의미로 들렸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아뇨피곤해서 어제만 쉰 건데요..”     

그럼.. 다음 주엔 나오실 건가요?”     

왜요나가면 안되나요?”     

그럴 리가 있나요.. 다만,”     


다만이라니..?     


제 생각에는.. 안 나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오선생의 제안은 한겨울의 물벼락처럼 신선했다. 하도 신선해서 추울 정도였다. 

동시에 네 글자가 떠올랐다. 

적.반.하.장. 누가 누구보고 나오라 마라야?

순간적으로 애꿎은 오선생에게 그동안 쌓인 것을 풀어버릴 뻔 했다. 

하지만 불과 몇 초만에 평정을 되찾았다. 내가 쌓인 게 뭐가 있다고.. 그동안 분에 넘치는 관심받은 게 죄지. 난 늘 이런 식이다.      


그만두더라도 선생님들 뵙고 인사는 드려야죠.”     


내가 봐도 짓궂은 표현이었다. 

백선생에 비해 만만한 오선생을 좀더 난처하게 만들고 싶었다.      


아니그게 아니라안 그러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오선생님.”     

?”     

그만두는 사람은 저잖아요왜 그러시는지 말씀을 안하시고 계속..”     

말씀드릴께요전부 다.”     


 그 말에 몸이 조금 스산해졌다. 도대체 어떤 비밀을 털어 놓으려는건가.

오선생은 먼저 내가 한 얘기를 백선생에게 보고했던 지난번 일을 사과했다. 나 혼자 열받은 건 줄 알았는데 생각은 하고 있었구나. 

마음이 얼마간 누그러지며 비로소 경청하는 자세가 됐다. 

그런데 이후 그녀가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 오선생의 남편과 백선생이 단둘이 술을 마셨고 그날 오선생의 남편은 백선생을 강간했다. 왜 둘이서 술을 마셨는지, 무슨 얘기들이 오갔으며 사건 전후 맥락은 무엇인지 오선생이 물어볼만한 여유가 당시에 전혀 없었다. 그저 확실한 사실들 몇 개만 괴물처럼 남아 있었다. 손찌검을 포함한 성폭행이 있었고 가해자 피해자가 모두 인정했다는 것. 오선생 부부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 그럼에도 오선생과 남편과 두 명의 아이가 모두 이혼을 원치 않았다는 것. 백선생이 합의금없이 합의를 해줬다는 것. 모임의 멤버들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      


조건없이 합의를 해줬다구요?”     

조건이 있었어요.”     


 백선생이 내건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남편은 오선생과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백선생에게 무릎 꿇고 사죄를 할 것. 이후로 다시는 백선생 눈에 띄지 말 것. 백선생이 어딜 가든 (하다 못해 오선생 집에 놀러가도) 알아서 피할 것. 도무지 이해가 안 가지만 백선생이라면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법처리를 피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고 오선생 남편은 그대로 따랐단다. 

이제 오선생이 백선생의 수족이 된 이유가 설명됐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른 시대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인간의 감정적 상식에 대입했을 때 삐걱거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은 이런 얘기들이 어떤 방식으로 결국 나를 향하게 될 것인가였다.      


그때 선생님 전남친이 선생님한테 준 선물 있잖아요..”     

그게 왜요?”     

백선생님한테 드렸죠?”     

드라이기 아닌가요?”     

맞아요근데 그게 그냥 드라이기가 아니에요,”     


드라이기가 그냥 드라이기가 아니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일단 국내에서 살 수가 없는 거구요물건을 가격 가지고 얘기하기가 좀 그렇지만..”     


오선생 말에 따르면 문제의 물건은 영국에서 개발한 명품으로 성능이나 디자인에서 꿈의 드라이기라 할만한 야심작이며 가격은 5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세상에, 50만원짜리 드라이기도 있었나?     


백선생님 드리기 전에 확인을 하셨어야 했어요.”     


 잠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봤다. 명품 드라이기에 대한 호기심과 그것을 감히 내가 소유한다는 이질감과 누군가에게  빼앗겼다는 억울함과 그게 다 내 탓이라는 자괴감 중에 유달리 나를 사로잡는 감정이 없었고, 와중에 찰나적 흐뭇함을 느끼며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그 물건의 가치를 확인했다 하더라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변수는 아니었다. 

다만, 백선생에게 괘씸한 감정이 드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자식은 왜 내게 이런 어이없는 선물을 했을까?

그리고 오선생의 다음 얘기는 또 무엇일까?     


상관없어요어차피 버리든지 누구 주던지 하려고 했으니까오선생님 드릴걸 그랬네요.”     

그런 뜻으로 한 얘긴 아니구요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서.. 그만 갈께요.”     


황당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자기 가정사를 고백하고는 명품 드라이기 정보를 제공하더니 이제 가겠다고?     


제가 모임에 가면 안되는 이유가 드라이기였나요?”     

그건 아니고..”     

전부 다 얘기해 주신다면서요.”     

죄송해요갑자기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비참해져서 안되겠어요.”     


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난 두 번째로 황당했다. 세상에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화가 났지만 혼자 원맨쇼하고 퇴장하려는 그녀를 다그치려니 나도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 제가 모임에 나가 보면 이유를 알 수 있겠네요.”     


별 기대도 안했는데 내 말에 오선생이 멈칫 했다. 그리고는 나를 한번 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제 모임 끝나고 뒷풀이를 빠지고 시내에 있는 카페에 들렀는데거기서 마침 백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을 모아놓고 한참 열을 올리고 계셨어요거기는 자리마다 칸막이가 있어 옆 테이블에 누가 앉았는지 몰라요그래서 본의 아니게 엿들었어요잘 들리진 않았지만 선생님 얘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누구는 비웃고 누구는 화를 내고 누구는 황당해하면서 그런 사람인줄은 정말 몰랐는데 정말 역겹다고 했고백선생님은 자기도 황당하고 괴로웠지만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고 했어요전 선생님이 그분들을 만나게 되면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까 싶어서.. 생각해보니 제가 좀 오버한 것 같아요모임에 나가서 직접 물어보시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내가 한가하게 청소를 하는 동안 세계는 변화하고 있었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었는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백선생은 도대체 뭐라 했길래 역겹다는 반응까지 끌어낼 수 있었을까? 자, 이제 상대가 도발을 했다. 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되도록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몰랐던 얘기들 많이 해주셔서 감사해요그런데 저한테 왜 이런 친절을 베푸시는 거죠?”     


오선생은 아까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지 않고 대답했다.      


쓸데없이 왜 남의 지저분한 가정사까지 들어야 하나 싶으셨겠죠백선생님이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제 남편과 정기적으로 만났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만나서 뭘 했는지는 짐작하시겠죠. 전 그동안 백선생의 비서로 살았지만 더 이상은 안 하려구요. 그래서 누구에게든 폭로하고 싶었어요) 라는 말은 굳이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건 뉴스로 나와도 손색 없을만큼 충격적이었다. 세상에나, 오선생이 현재 지니고 있는 삶의 무게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결혼을 안한 나로서는 감조차 잡을 수 없다. 

그녀는 내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을 하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글쎄요.. 그들은 아직 몰라요어쩌면 이대로 계속 얌전히 살 수도 있겠죠병신같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난 이제 어떡해야 하나?

오선생은 정말 힘든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그렇지만 이걸 계기로 나와 영혼을 나누는 사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오선생에게 그닥 연민이 가지도 않았다. 좀더 솔직히 말해 지금 내가 누굴 동정할 처지도 아니었다. 

자, 오선생의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굳이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 난 이제 백선생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그녀는 괴물이다. 그리고 나에게 상당한 악의를 품고 있다. 거기에 맞춰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무렵에 불현 듯 실소가 터졌다. 대책이라니.. 내가 무슨 전략가라도 되나? 그냥 경우가 심하게 없는 사람이고 날 무지 기분 나쁘게 했다. 그녀를 찾아가 대판 싸우고 관계를 끊든지 그냥 조용히 관계를 끊든지만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난 경우의 수를 떠올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여기 와서 내가 행한 최고의 주체적 능동적 행위는 그날 밤 백선생을 쫓아낸 것이었다. 더 이상 주체적인 건 무리다. 게다가 그날 밤 백선생의 ‘멘토링’ 덕분에 ‘당당함’이란 것에 대한 거부감까지 생겼다. 난 주체적으로 회피하기로 마음 먹었다. 더 이상 여기 소도시에서 부동산 업자와 이삿짐 센터 직원을 제외하고 그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으리라.      

오선생이 방문한 다음날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업자 말로는 이 동네가 한참 뜨는 곳이고 월세가 워낙 싸서 금방 나간댄다. 심지어 내일이나 모레 덜컥 계약될 수도 있으니 빨리 준비하란다. 근래 들은 가장 달콤한 말이었다. 

집에 가서 다시 사회과부도를 펼쳤다. 패잔병처럼 뒷머리를 긁으며 서울로 복귀하긴 싫었다. 이번엔 어디가 좋을까, 바닷가에서 한번 살아볼까? 아니면 산속에서 조그맣게 텃밭 농사를 지어볼까? 그것도 아니면 또다른 대도시에서 직업을 찾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동안 낯익은 감정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기구해 보일수도 있지만 사실은 즐거운. 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날 밤 초인종이 울렸다. 난 화들짝 놀랐다.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날 찾아올 사람 중 호의를 가진 이는 없다.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내가 죄 졌어? 문을 열었다. 

권선생이었다. 지난번처럼 술에 취해 있었고 지난번과 다른 건 과일 없이 빈손이라는 점이었다. 

백선생이 언니처럼 느껴지던 시절에도 문을 열어주지 않던 내가 지금 그를 안으로 들였다.

솔직히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뭔 얘기를 할지가 궁금했다. 

안으로 들어선 그는 비록 취했지만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예의바르게 말을 꺼냈다.      


백선생이 완전히 이성을 잃었던데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모처럼 정상적인 질문을 받았지만 그걸 반가워할 처지는 아니었다.      


백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백선생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옛날부터 그랬어뭐 하나에 꽂히면 물불을 안 가리지난 그건 아니라고 봐.”     


 그리고는 말을 멈췄다.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앉은뱅이 테이블 사이로 마주앉은 채 한참을 둘 다 말이 없었다. 난 다음 말을 기다린 것이고 권선생은 할 말은 다 했다는 얼굴이었다.     

 

절대로 흔들리면 안돼요나를 봐서라도 딴맘 먹지 말고..”     


 쓸데없는 비장미가 황당한 게 아니었다. 권선생은 그 말을 하면서 내 손을 꼬옥 잡은 것이다.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막상 닥치고 나니 되게 황당했다. 

‘너 지금 뭐하는거니?’ 하는 눈초리로 그를 빤히 보자, 내가 단지 손을 화들짝 빼지 않았다는 사실로 용기를 얻었는지 남은 손으로 내 머리칼을 곱게 넘겨주기까지 했다. 

나는 그가 넘겨준 머리를 내손으로 다시 넘기며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그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말하기도 귀찮았다. 

그는 내 행동에 충격을 받은 듯 빤히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너 왜 그래?’ 하듯이 한쪽 손으로 내 팔을, 다른 손으로 내 허리를 감으려 했다. 

난 완력을 사용했다. 팔을 뿌리친 게 아니라 권선생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어버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이라 힘조절을 못했고 취한 권선생은 테이블 위로 내팽개쳐졌다. 

나무로 만든 앉은뱅이 테이블은 성인 남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두 동강이 났고 그 위에 있던 머그컵들도 박살이 났다. 

.. 이제 수습할 시간이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잠깐 생각하다가 포기해버렸다. 그냥 멍하니 서서 자빠진 권선생을 내려다봤다. 의도한 건 무표정이었는데 어떻게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권선생은 주저앉은 채로 한참동안 나를 노려보더니 이윽고 털고 일어났다.

      

역시 백선생 말이 맞아정말 가증스럽네..”      


 이어 마무리 이벤트로 쪼개져 널브러진 테이블을 발로 걷어차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그가 간 뒤 난 깨진 조각들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백선생의 아파트 앞에 내려 아래부터 층수를 셌다. 문제의 창문에 불이 꺼져 있었다. 상관하지 않고 쳐들어 올라가 벨을 눌렀다. 대답이 없었다. 다시 벨을 누르며 주먹으로 현관을 쾅쾅 두들겼다. 별다른 계획도 전략도 없었다. 일단 사람들에게 뭐라고 떠들고 다녔는지 물어보려 했다. 진실을 들으려면 권선생을 살살 구슬리는 게 답이었겠지만 난 진실에 관심이 없었다. 다 떠나서 백선생의 낯짝 좀 보고 싶었다. 다짜고짜 보고 싶었기에 일부러 전화도 하지 않았다. 

초인종과 주먹, 초인종과 손바닥, 초인종과 발, 주먹과 손바닥과 발에도 일체 반응이 없었다. 

그녀가 집에 없다면 밤새 기다릴까도 생각했지만 어느새 발작적 분노가 식었다. 

아파트를 나오면서 문득 가슴이 서늘해졌다. 내가 미친 사람처럼 그집 문을 두들긴 게 거의 30분. 이쪽 저쪽 옆집에서 어느 누구도 반응을 하지 않았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도 없었다. 

옹기종기 모여서 각자도생하는 도시인들. 참 아이러니다. 새삼 살의 없이 심통만 부리고 갔던 권선생이 고마워졌다. 


다음날 아침 휴대폰에 <부재중 통화 4건>이 찍혀 있는 걸 확인했다. 

백선생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이건 또 뭔가. 누가 됐건 내 편은 아닐테니 무시하고 회피하자. 어젯밤 기분 같아서는 세상에 거칠 것이 없었지만 어느새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백선생을 찾아가는 것도 포기했다.      

컴퓨터를 켜고 전국의 부동산 사이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교통 하나만 포기해도 느낌있는 집들이 사정권 안에 즐비했다. 다시 내 인생을 살게 된 나는 이내 누그러졌다. 

그때 문자가 왔다.    

  

<저 000랑 결혼식을 앞둔 XXX라고 합니다실례인줄은 알지만 뵙고 싶습니다저 지금 근처에 와 있습니다밤까지 기다리겠습니다무례를 용서하세요죄송합니다.>      


처음에는 헛웃음이 나왔다. 날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날 괴롭히려고 합심이라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독백을 했다. 나 원 참 내 정말..”

하지만 잠시 후 내 마음을 직시해보니, 난 화가 난 게 아니라 화를 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든 거였다. 사실 화낼만한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예의를 갖춘 절실함이 신선하기까지 했다. 


 약속 장소에 나갔다. 초췌한 얼굴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현재 나와 그녀는 연적 관계도 아니지만 어쩄든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상황이 불쾌했고 들러리 인생이 된 기분이었다. 나오긴 나왔지만 나도 한심하고 너도 한심하다는 생각에 인사 외에 통성명도 예의상의 웃음도 없이 바로 용건을 물었다.      


얼마 전에 그 사람이 여기 온 적 있었죠?”     

그런데요?”     

어차피 실례하는 거 이런 질문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이제 어떡하실 건가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전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해요두 분도 한때 연인사이였으니까.”     

그럴 수 있다는 게 뭐죠?”     

그 사람이 여기 왔다가 온 이후로.. 좀 달라졌어요.”     


여기 오면서 화나 짜증이 나더라도 꾹 참고 얘기를 끝까지 들으리라 다짐했었다.      


저기말씀을 좀 쉽고 구체적으로 해주셨음 좋겠어요전 아직 제가 여기 왜 앉아있는지 모르겠네요.”     

알겠습니다구체적으로 딱 두 가지만 여쭤볼께요둘 중에 누가 먼저 섹스를 하자고 했는지그리고 그 이후에 지금 심정이 어떠신지.”     


 최근 들어 도대체 몇 번째 어이가 없는지 세어보기도 지쳤다. 

방금 내가 들은 이야기의 핵심과 문제의 원인과 맥락에 대한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그래서 대답없이 휴대폰을 꺼내 그 자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만에 받은 그는 상황을 다 알고 있는 듯 숨소리에도 난감함이 묻어났다.      


지금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있는데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으음.. 그게..”     

곤란한 모양인데그만 끊을테니까 나중에 직접 신부한테 설명해줘.”     


그러는 동안 그녀는 동그래진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난 전화를 끊고 일어나 마지막 멘트를 날리고 카페를 나왔다.      


뭐가 어쨌건결혼 축하드려요.”     


깔끔하고 우아한 마무리를 위해 지적 호기심을 희생했다. 도대체 저 여자의 입에서 왜 저런 말들이 나왔는지에 대해, 이제는 유추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문제는 유추 과정이 전혀 즐겁지 않을거라는 것. 그냥 물어볼 걸 그랬나? 하지만 나에겐 최근 들어 익힌 비장의 기술, ‘뭔 상관이야’ 정신이 있다. 내가 가상으로 얽혀 있지만 이건 남 얘기다. 남 얘기다. 남 얘기다...

어쨌든 여기에서의 일을 또 하나 처리했고 이제 다시 이사 준비를 하자.                

                              


                                  4     


다음 거주지를 정했다. 면밀한 검토 따윈 없었다. 그냥 서울의 동쪽, 북한강 상류의 읍 규모의 마을을 선택했는데, 오래전부터 막연히 동경하던 곳이라는 게 이유였다. 인터넷으로 사전 정보를 얻은 뒤 직접 가서 몇 군데 부동산을 들러 딱 하루 만큼만 고민하고 1년 계약을 했다. 좌우 숲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아파트였다. 

지금 사는 집도 부동산 업자 말대로 바로 나갔다. 다음 세입자는 한달 후에 들어온다고 했지만 난 이사 날짜를 1주일 후로 잡았다. 보증금을 돌려받기 전에 짐을 빼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들었지만 상관 없었다. 이삿짐센터를 선정해서 견적을 뽑고 계약금도 지불했다. 짐은 여기 올 때보다도 적어졌다. 대충 싸는데 이틀도 안 걸렸다. 

이제 남은 5일동안 내가 할 일은 그동안 나름 정들었던 소도시 구석구석과 눈으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낮에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다행히 시민학교 쪽 사람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밤에는 긴장을 했다. 이사 전까지 누군가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깡그리 무시를 할까 문전박대를 할까 아니면 문을 열어 또다시 뭔가에 휘말릴까.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 백선생에게서 연락은 물론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불현 듯 몇 년 후의 미래를 떠올려 봤다. 내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지 악화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지금보다 관대해질 것이다. 최소한 여기서의 일들은 매우 하찮아 보일 것이다. 그때 나는 백선생을 어떻게 회상하게 될까. 혹시 -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나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았던 모습을 추억하지는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뭐가 어쨌건 절대로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은 사람.      

누군가가 날 찾아왔을 때의 대처를 결정하지 못한 채 이사 전날이 되었다. 짐을 다 쌌고 이삿짐 센터로부터 확인 전화도 받았다. 걱정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아무도 날 찾지 않았고 전화도 없었다. 

혼자 자주 가던 가정식 백반 집에서 마지막 점심을 먹었다. 이제 여기도 올 일이 없겠구나 싶어 반찬 하나 하나를 정성들여 씹고 있는데, 저쪽 테이블에 혼자 밥을 먹고 일어나 계산하던 사람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게 측면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최후의 오찬이 망가지는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장화백이었다. 


그는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조심스러운 미소로 인사를 건넸고, 젓가락을 놓는 나를 만류하며 마저 먹으라고 했고 시간 괜찮으면 식사 후에 차나 한잔 하자고 했고 내가 승낙을 하자 자기가 요앞 커피숍에 가 있을 테니 천천히 먹고 나오라고 했다.      

커피숍에서 마주 앉은 그는 이전의 허세가 지워진 인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간 사이에 엄청난 피로가 새겨져 있었다. 내가 내일 이사간다고 -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 하자 조금 놀라며,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마주친 게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나를 만나고 싶었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오선생처럼 또 엄청난 정보를 털어놓거나, 아니면 권선생과 비슷한 이유이거나.      


지난번 그림의 모델이군요.”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내 휴대폰 옆에 있는 열쇠고리에 달린 열쇠를 보고 있었다. 

대답을 하며 나도 열쇠를 봤다. 이사를 가게 되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이걸 그린 댓가로 받았던 칭찬에 어지러웠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계속 그림은 그리고 있나요?”     


난 고개를 저었고 그런 날 보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가 했던 말들이 그닥 와닿지 않았나보네?”     


또 다시 인생의 지도 운운할 생각인가 싶어 화제를 돌렸다.      


백선생님은 잘 계시죠?”     


내 질문에 그는 눈이 조금 커졌다.      


.. 백선생 본 지가 조금 되었나봐요?”     

.”     

잘 있겠죠.”     


 그 말에 나도 눈이 조금 커졌고 이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둘 다 하려는 말들을 알아서 삼키는 느낌이었다. 

커피만 홀짝홀짝 마시다 헤어지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말을 꺼내버렸다.    

 

백선생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는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팔자를 개탄하듯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보며 흥미가 생겼다. 어쩌면 이 사람이 그동안의 지저분한 궁금증들에 대한 모든 답을 줄지도 모른다. 내일 이사가고 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에 아쉬워졌는지 난 좀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어요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죠.”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릴 듣자고 한 물음이 아니었다.      


선생님 댁에 갔다온 날부터였어요그날 제가 간 다음에 두분 선생님께서 제 얘기를 나누셨다고 들었는데무슨 얘길 나누신 건가요?”     


 순간 미간 사이의 피로가 더욱 짙어졌다. 그는 다시 한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짓고는 내가 내일 떠난다니까 얘기한다며, 대충 예상했던 내용들을 털어놨다.      

장화백과 백선생은 오래전부터 내연의 관계였는데, 각자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가끔씩 만나 섹스를 하는 사이였다. 그러는 동안 위기가 없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연륜에 걸맞게 갈등의 조짐들을 잠재워가며 관계를 비교적 건강하게(?) 꾸려왔단다. 

언제부턴가 백선생은 내 얘기를 하면서 그걸 듣는 장화백의 반응을 날카롭게 살피곤 했다.   

백선생이 나를 데려온 날, 장화백은 눈빛이나 말투 하나하나를 백선생으로부터 감시받으며 그동안 얼마나 숨이 막혔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나로 인해 가슴이 설렌 건 사실이었다며 그는 용서를 구했다. 그게 용서를 구할 일이냐며 반문하려다가 그만뒀다. 

내가 그 집에 두 번째로 방문해서 평생 받을 칭찬 다 받고 간 뒤, 그들은 장화백의 전시실 바닥에서 섹스를 했다. 장화백 위에 올라탄 백선생은 돌연 자신의 뺨을 때려달라고 했다. 평소답지 않음에 놀란 장화백이 거절하자, 백선생은 자기가 장화백의 뺨을 때렸다. 

아프고 놀란 장화백이 버럭 화를 내자 그녀는 돌연 실성한 듯이 양손으로 장화백의 뺨을 때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장화백은 백선생을 세게 밀쳤고 백선생은 뒤로 나동그라졌다. 

전시실 바닥에 알몸으로 주저앉은 채 백선생은 한참동안 장화백을 노려봤고 이윽고 일어나서는, 그림도 못 그리고 섹스도 못하면서 젊어지려고 발광하는 늙은 퇴물이라 선언하듯 쏘아붙이고는 옷을 입고 사라졌다 한다.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백이 끝난 후 더 할 말이 없는 장화백과, 원래 할 말이 없던 나는 한참을 침묵 속에 앉아있었다. 화제를 어떻게 돌려야 할지 난감했다.  

    

이제 개인전 준비하시겠네요?”     

무슨 개인전..?”     

조만간 유럽에서 개인전 하신다고..”     

그거 단체전이에요.”     

...”     

“10명도 넘어근데 항공권 지원이 안된다고 해서 난 포기했어요.”   

  

 할 말이 더 없어진 나는 그만 몸을 일으켰고 장화백은 인사를 하는 나에게, 앞으로 어디 가서 뭘 하든 꼭 그림을 그리라고, 다른 건 몰라도 그때 했던 말들은 정말 진심이었다고, 그림에 대한 내 재능은 분명히 내 인생의 지도가 될 거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듯 말했다. 

이 중에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다른 건 몰라도>였다. 절도 혐의로 붙잡힌 자가 어떤 물건만은 절대 훔치지 않았다고 항변하듯 궁지에 몰린 말투. 그러고 보니 그새 장화백은 많이 수척해지고 늙어져 있었다. 오늘은 청바지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난 마지막까지 칭찬을 받았다.      

집에 들어와 남은 것들을 마저 정리했다. 

문득 시계를 보니 밤 10시. 멍하니 앉아있다가 문득 나의 ‘무고함’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진작에 결론이 났고, 결론대로 실천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야반도주식으로 이사를 하는지’에 대한 의문. 

그래서 한때 호감을 가졌었고 가장 연민이 갔던 오선생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저 내일 이사 가요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답장은 없었다. 상관없었다. 

난 불을 끈 뒤 이불을 펴고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바람에 덜컹이는 현관문 소리에 퍼뜩, 매우 강력한 예감이 관자놀이를 찔렀다. 예감이라기보다 확신이라고 하는 게 옳았다. 멍청아, 넌 야반도주에 더 어울리는 인간이야!     

벌떡 일어나 휴대폰 전원을 끄고 서둘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멀지 않은 모텔에 투숙했다. 휴대폰 대신 모텔 주인에게 모닝콜을 부탁하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책이라도 한권 갖고 나올 걸 후회했다. TV를 켜고 의미없이 계속 채널을 바꾸면서 내가 확신했던 일들이 어떻게 실현될지, 아니면 그저 편집증적 엄살이었는지를 가늠하다가 새벽녘에야 의식을 잃었다. 


다음날 이삿짐차가 들어오는 시각은 8시 반. 난 8시에 일어나 집으로 갔고 휴대폰을 켰다. 

94개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1개는 이삿짐 센터, 93개는 백선생이었다. 

그 밖에 문자 17개와 음성메시지 4개가 있었는데 문자 말머리를 대충 넘겨 보면 ‘내가 잘못..’ ‘사람이 어떻게..’ ‘밤새 기다릴..’ ‘이런 식으로..’ ‘이건 아니잖..’ 등등의 단어들이 보였다. 

그동안 내 안에서 증폭된 이미지에 비해 다소 평범한 문장들이라는 게 의외였지만 그렇게 총 114개의 흔적에,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던 정나미는 땅을 파고 들어갔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아니나다를까, 짐을 탑차에 1/3쯤 실었을 때 백선생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건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짐칸 옆에 가만히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백선생에 대한 나의 감정 변화 추이는 이랬다 : 호기심 - 경외감 - 호감 - 매우 짧았던 신뢰 - 성가심 - 미묘함 - 불가사의함 - 연민 - 무의미함 - 혐오.

그리고 지금의 감정은 섬찟함이다. 이 순간을 예상했음에도, 나는 아직 저런 예측불가의 인물에 대처하는 게 서투르구나. 그러니까 어젯밤도 그렇게 도망을 쳤지. 

저 여자는 그동안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어젯밤 - 결국 다시 비서관 인생을 선택한 - 오선생의 고자질에 갑자기 열렬히 반응한 이유는 무엇인지, 또 지금 이렇게 찾아와서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이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물어볼 일이지만, 그보다는 혐오가 더 컸다. 조금 전 느꼈던 섬찟함이 일차적으로 가시고 난 뒤 ‘저 여자가 무슨 낯짝으로..’ 로 시작하는 평범한 혐오로 돌아왔고 그동안 쌓였던 걸 풀어버릴 마지막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까 궁리하다가 대담한 방식을 선택했다. 

.. 철저히 무시하기로 한 것이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는 자체 반론은 이삿짐차 짐칸 옆에 처녀귀신처럼 서서 나를 조준하듯 향하는 그녀의 시선 앞에서 자연스럽게 소멸됐다. 자존감이 그렇게 높다면 내 능력껏 박살내주마.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거기 없는 듯 행동했지만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짐을 나를 뿐이었다. 

긴장도 있고 쾌감도 있었다. 짐을 나르는 인부들은 일을 하는 틈틈이 그녀와 나를 힐끔거렸다. 지나가던 인근 주민들도 흔한 이사 풍경 사이로 우뚝 솟아 있는 그녀의 존재에 신선한 시선들을 던졌다. 

그저 멈춰있는 사람이 이렇게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도시의 익명성에 묻히려면 평균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돌연 멈추려거든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든가 해야 한다. 혼자 멈추고 싶으면 길가 벤치나 카페로 가야 한다. 저런 식의 비일상성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도시의 룰에 숨이 막혔지만 그건 나중에 회상할 때의 일이고. 당시로서는 그저 일촉즉발의 느낌이었다. 그녀는 정말 발걸음 하나 떼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나는 바삐 움직이는 와중에 그녀와 옷깃이 스치기까지 했다. 그럴때면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이러다 등 뒤에서 갑자기 칼로 나를 찌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그녀에게 등을 보일 때면 자연스럽게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많지 않던 짐들은 모두 차로 옮겨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녀는 미동 한번 하지 않았고 차가 출발할 때 배기가스와 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사이드미러로 보였다.      

도대체 저 여자 누구냐는 인부의 물음을 대충 뭉개면서 윗도리의 등 부분이 젖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하다 흘린 땀이 아닌, 식은땀이었다. 

실로 엄청난 대결을 펼치고 난 느낌, 승리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굴욕적인 패배도 아닌, 나름 최선을 다한 후의 보람 비슷한 감정이 찾아왔고 그 느낌을 굳이 해치기 싫어 백선생이 보낸 문자와 음성을 확인하지 않고 모두 지웠다. 

그리고 다시 사이드 미러를 봤다. 멀어지는 소도시가 보였다. 이제 다 끝났다. 지긋지긋했지만 얼마간 깨달음도 얻었고 달콤했던 기억도 서린 곳이었다. 폐허가 된 심신을 끌고 찾아갔고 대체로 수동적으로, 대체로 비겁하게, 하지만 품위와 경우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이제 차분해진 마음으로 이곳을 떠난다. 앞으로 한결 더 냉소적으로 살겠지만 쓸데없이 자책이나 반성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남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 것이다. 누구처럼 말이지.      

새로 이사 간 집을 꾸미는 데는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이전과 비슷했다. 공들여 청소를 하고 최소한의 물품들을 장만하고 밥을 해먹은 뒤 동네를 산책했다. 이전 집보다 문화적 색채가 덜했고 자연의 냄새는 몇 배 더 강했다. 

산책을 하는 도중 서울의 한강 다리보다는 짧지만 건너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는 다리를 천천히 통과했다. 다리 한가운데 서서 지류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갈대들이 무성한 풍경을 멍하니 보며, 앞으로 딱 1년 만큼은 북유럽의 어느 침엽수림에 요양온 것처럼 쥐죽은 듯 살기로 작정했다. 이내 나를 공격할 외로움과의 싸움에 있어서도, 실체는 없지만 뭔가 신무기를 장착한 느낌이 들었다. 


요리와 설거지, 청소와 빨래, 산책과 운동, 독서와 글쓰기 이렇게 네 종류의 카테고리를 제외하고 그 밖에 파격적인(?) 일과는 갖지 않았다. 심심하다고 친구나 지인에게 전화를 걸지도 않았고 (걸려온 전화는 받았다) 이웃들과도 인사 외의 언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일도 안 하고 사람도 안 만난다 해서 하루가 길진 않았다. 네 가지 일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날이 저물었고 그 네 가지중 하나가 잘된 날은 여지없이 보람이 찾아왔다. 

평균 일주일에 한번 꼴로 외로움이 찾아왔지만 참을만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외로움 앞에 흔히 붙이는 <참을 수 없는>이란 형용사가 낯뜨겁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외로움을 지병처럼 달고 잘만 살면서 뭘 참을 수 없어? 참을 수 없다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살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참을만 하게 외로운 도중 무시무시한 치통이 한번 찾아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병원에 가기 전 이틀 정도 지옥을 경험하면서 내가 그때까지 보고 듣고 겪은 모든 일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당장 죽겠는데. 

병원 가서 치료를 받고 지옥에서 벗어난 이후 그 다음번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 외로움이 치통을 달고 오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따뜻하게 보듬었다. 외로움이 친구라는 게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날 무렵 사건이 하나 생겼다. 내가 세든 집이 경매에 넘어간 것이다. 

어차피 월세라 보증금 보전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여기저기 관청을 오가며 정신없이 서류를 작성하고 자료를 제출해야 했다. 

그 복잡한 절차들을 자기 일처럼 세심하게 처리해준 등기소 직원이 있었고 그는 모든 것이 마무리 되었을 때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간신히 외로움을 길들여 놨더니만... 이란 생각을 하며 나보다 한참 어린 그를 받아들였고 우린 그로부터 6개월간 연인으로 지냈다.      

다시 6개월 후 월세 계약이 끝날 무렵 난 서울행을 결심했다. 

몇군데에 문의를 해서 계약직 일자리를 얻었고, 정규직 애인에게 그 얘기를 하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또다시 집을 구했다. 이번엔 서울 변두리의 조그만 원룸이었다. 

이삿짐 정리를 도와주면서 그는, 만약 내게 청혼했다면 받아들였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는 우리가 이렇게 헤어지는 거냐고 다시 물었다. 

여전히 대답이 없는 나에게 그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삿짐차를 따로 보내고 나는 기차를 타고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역까지 배웅을 나온 그에게, 내가 세상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겠냐고 물어볼 뻔 했다.       

.. 좋은 남자였다.      

기차가 출발하고 차창 밖 풍경이 흐르기 시작할 때 불현 듯 1년전 일이 떠올랐다. 

방금 떠난 그 집에 옮겨진 짐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정리하며 첫날밤을 맞았을 때 오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이사는 잘 끝냈니?”     


뭔가 심각한 말투였다. 오선생이 사용할만한 종결어미가 아니었다. 

?”라고 되물은 나에게 그녀는 용건을 기관총처럼 쏘아댔다.      


백선생님이 약을 먹었어. .. 이 씨발년아속이 시원하니그렇게 사과를 하고 그렇게 애원을 했는데 니년이 도대체 뭔데 무시해백선생님이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니가 장화백한테 살살 꼬리치고 유혹해서 그들 관계 끝장냈을 때 그때 어떻게든 응징했어야 했어이 양아치같은 년아!!”     


또 한 명의 다중인격자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녀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가 낮아졌다.      

“XX병원이야당장 내려와좋게 말할 때     

안 죽어.”     

뭐라고?”     

죽으려면 목을 매든가 투신을 했겠지다 쇼야잘 보살펴 드리렴.”     


전화를 끊고 나서 2차전을 기다렸지만 오선생은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대신 그날밤 늦게 반갑지 않은 다른 전화가 왔다.      


나랑 통화하기 싫은 거 알지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뭔데요?”     

거기서 무슨 교수로 있다는당신이랑 친한 그 추잡한 늙은 여자 전화번호 좀 가르쳐줘요.”     


백선생의 만행이 또 하나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망설이자 그녀는 오선생처럼 변해 갔다.      


그때 나한테 결혼 축하한다 그랬죠?”     

.”     

장난해사람 병신 만드니까 즐겁냐나 그런 지저분한 새끼랑 결혼 안 해!”   

  

 거기까지 듣고 전화를 끊은 뒤 백선생의 번호를 문자로 전송했다. 

그녀 역시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그녀가 백선생을 전화해서 만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지금으로선 알 도리가 없다.      


 내가 그놈의 시민학교에 발을 들여놓은 건 명백한 실수였다. 

하지만 시간의 마법 속에는 실연의 상처를 잔잔한 추억으로 만들어버리는 알려진 효과 외에, 인생의 다채로운 실수들도 시행착오적 자산으로 둔갑시키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뭐가 어쨌든 좀더 살아봐야 알 수 있겠지. 혹은 무의미한 과거로서 기억에서 아예 지워지거나.      

1년이 지난 지금 그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서울의 원룸에서 짐을 풀다가 전전집의 열쇠를 발견했다. 이걸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구나. 나는 짐정리를 하다 말고 열쇠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정말 이 그림이 내 인생의 지도가 될까? 그럴 것도 같다.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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