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리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달리기를 하면 항상 1등을 하곤 했다.
학교에서도 다른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며 놀던 기억이 생생하다.
달리기를 잘했던 나는 동네에서 소닉이라는 별칭이 붙여지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육상부에 가입하여 학교 간 육상대회에서도 입상을 한 적도 있다.
그만큼 동네를 이곳저곳 누비며 집에서는 아버지께서 똥개라는 별명도 지어주시고 참 노는 걸 좋아했다.
옛날에는 동네에 오락실이 많았다.
지금은 닌텐도와 플스 등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PC방을 가서 게임을 할 수 있었지만
예전에는 동네 오락실이 아이들의 모임장소이기도 했다.
나 역시 오락실의 단골손님이었다. 오락실을 가면 눈이 충혈되도록 오락을 하며
모니터에 빠져들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오락실을 나오곤 했다.
일요일 아침 어머니께서는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시면서
나에게 돈 천 원을 주시며 교회에서 만나자고 얘기를 하고 나가셨다.
나는 엄마가 나간 걸 확인 후 바로 옷을 입고 천 원을 손에 쥐고 바로 오락실로 향했다.
오락실에서 동전으로 바꾼 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오락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예배시간이 다 끝나는 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교회로 향했다.
돈은 내손에 100원짜리 동전만 남아 있었다. 겨우 도착한 나는 헌금함에 동전 100원을 넣고
목사님의 마지막 축도를 받으며 예배를 구경하듯 자리에 앉아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보면
나오시는 목사님께 꿀밤을 먹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의도치 않게 매주 십일조를 드리게 된 아이가 되었다.
교회에서의 모임이 끝나면 나는 곧장 학교 운동장을 가서 약속이라도 한 듯 동네 아이들을 만나
축구를 하고 피구를 하며 일요일 하루를 노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아직 철부지 없는 아이라 엄마가 교회를 가라 해서 교회를 다니는 아이였고
교회를 다니면 뭐가 좋은지도 모르고 그냥 떠 밀려다닌 아이였던 것이다.
아직 신앙은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던 것이다.
다만 엄마와 아버지가 싸우는 날이면 기도는 했던 것 같다.
어릴 적 기억으로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항상 어머니와 싸우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럴 때면 뭔가 무섭고 화목한 가족이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때마다 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우리 가족 싸우지 않고 행복한 가족이 되게 도와주세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도를 하면 다음날에는 엄마와 아빠는 싸우지 않으셨다.
정말 하나님이 계신 걸까? 내 기도를 들으신 걸까? 그럴 때에는 “감사합니다”다시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아직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는 모르지만 내 작은 음성에 귀를 기울이신 듯했다.
이렇게 어린 시절을 불안함과 즐거움으로 보낸 나는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