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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Dec 08. 2024

누구를 향한 심장일까 - 이별, 그 뒤에도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 Opinion | 드라마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일본 배우라 하면 '사카구치 켄타로'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배우 이세영과 함께 주연을 맡은 '사랑 후에 오는 것들'로 사카구치 켄타로는 다시 한번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멜로 장인 사카구치 켄타로의 또 다른 작품이 나왔다. 바로, 일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이별, 그 뒤에도]이다.


 이 작품은 올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온 스크린 상영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온 스크린(On Screen)은 앞으로 방영될 최신 드라마 시리즈 화제작을 상영하여 일부 선공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첫 장면부터 하얗게 빛나는 홋카이도의 설원이 펼쳐지는 모습에 유독 첫눈이 많이 내린 올겨울이 생각났다. 차디찬 겨울의 모습과 그 추위를 녹여줄 따뜻한 하와이 절경을 모두 담은 작품이다. 올겨울은 이 작품으로 추위를 이기고 몸을 녹여보자.



 [이별, 그 뒤에도]는 '장기 이식으로 인한 기억 전이'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이는 이 작품의 오카노 마키코 프로듀서가 실제 장기 이식을 한 부친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만들어졌다. 다소 무거운 소재지만 사랑이라는 아름다움을 담아내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이야기는 두껍게 쌓인 눈길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시작된다. 버스 안에 함께 있는 두 남녀, '유스케'와 '사에코'는 오래된 연인이다. 유스케는 사에코에게 비밀로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그녀를 이끌고 목적지로 향한다. 하지만 끝내 그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무거운 눈덩이가 버스를 덮치고, 한기가 서리는 눈 바닥에 두 사람은 쓰러진다. 무대 위 주인공을 비추는 핀 조명처럼 쓰러진 두 사람을 비추는 장면은 마지막이 된 이루어지지 못한 슬픈 웨딩식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이 사고로 유스케는 세상을 떠난다. 오직 심장만을 남긴 채. 그 심장은 병상으로 누워있는 '나루세'에게 간다. 이로써 새 삶을 살게 된 나루세는 이전과 달라진 삶을 산다. 마시지 않던 커피를 마시고 못 치던 피아노를 치며, 이전에 없던 밝음을 가진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 마구 떠오른다. 이는 모두 심장의 주인, 유스케의 것이다. 마치 뇌처럼 심장 안에 유스케의 모든 것이 기억으로 남겨져 있었다. 


 이윽고 남겨진 기억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마음이 시키는 사랑은 브레이크가 없다.


 한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에코는 슬픔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매일을 살아간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나루세를 만나게 된다. 출퇴근 길, 같은 열차를 타는 사에코와 나루세는 마주치는 시간만큼 부쩍 가까워지게 된다. 그 후 사에코는 나루세에게 심장을 기증한 사람이 유스케라는 걸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깊어진다. 


 깊어진 관계는 두 사람 간의 미묘한 기류를 만들어 낸다. 넘을 듯 안 넘을 듯 희미한 선을 둔 채, 결국 선을 넘어버린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선을 넘으면 안 됐다. 나루세에겐 아내 '미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애틋한 사랑처럼 보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사실상 바람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에코는 유스케의 심장을 가진 나루세를 유스케와 동일시한다. 유스케를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나루세에게 이끌린다고 생각한다. 나루세는 사에코의 소중한 이를 뺏어갔다는 죄책감에 그녀를 신경 쓰고 잘해준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두 사람은 그 마음의 출처를 헷갈려 한다. 사에코의 마음이 유스케를 향한 건지 나루세를 향한 건지, 나루세의 마음은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유스케의 것인지 혼란스럽다.


 나는 두 사람이 각자만의 사정과 이유로 합리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복잡 미묘하게 흐르는 관계를 읽었고, 끊어낼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스스로와 타협하며 관계를 이어나간 것처럼 보였다. 결국 사에코가 나루세를 떠나고, 떠난 사에코를 만나러 간 나루세의 모습이 두 사람이 서로 진심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품은 마음의 실체를 마주한 것이다.


 머리와 다른 마음은 고장 난 브레이크와 같다. 마음에 가속이 붙는데, 사랑에선 더욱이 그렇다. 마음이 시킨 사랑은 브레이크가 없다. 나도 모르게 붙은 가속은 커져버린 이끌림을 만든다. 사에코와 나루세의 모습처럼.







깊은 사랑은 깊은 흔적을 남긴다.


 앞서 말한 것에 의하면, 이 작품은 바람, 불륜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것이 아닐 거다. 소중한 이가 떠나고 남은 빈자리의 크기,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영원한 사랑의 존재와 진실한 사랑의 존속성. 깊은 사랑은 깊은 흔적을 남기며 평생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스케 심장에는 사에코와 진심으로 사랑했던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죽기 직전까지 그녀를 감싸 안으며 사랑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 애틋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다는 걸 극적으로 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나루세가 기혼으로 설정된 게 아닐까 싶었다. 심장에 강력하게 박힌 유스케의 사랑은 영원히 사에코를 향하고 있기에, 사랑하는 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루세의 심장(곧 유스케의 심장)도 사에코에게 향하도록 한 것이다. 심지어 나루세는 자신에게 곧 죽음이 닥친다는 걸 알면서도 사에코를 놓지 못했다. 다른 시선으로 보면 사에코를 사랑한 유스케의 마음이 계속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과연 영원한 사랑이 있을까 의심하게 되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영원한 사랑이 존재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인물


 [이별, 그 뒤에도]는 흔한 클리셰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언뜻 보면 그럴 수 있지만, 나는 섬세한 인물 표현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뚜렷한 인물 특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요 등장인물 '사에코와 유스케, 사에코와 나루세'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보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먼저, 사에코와 유스케이다. 사에코는 매사 책임감을 가지며 열심히 사는 인물이다. 미래를 위해, 잘 살기 위해 항상 힘이 들어가 있다. 그녀에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즐거움보단 앞으로 개척해 나가야 되는 존재이다. 미리 대비하고 준비해 나가야 되는 것. 미래에는 좋은 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있기에 무조건 아름답게만 볼 수 없다. 


 반면, 유스케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인물이다. 숨겨진 아픔이 있지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 어두운 부분도 밝게 보려고 한다. 긍정의 기운은 주위 사람들도 기분 좋게 만든다. 모든 일을 유연하게 대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는 바짝 힘이 들어간 그녀를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이는 그들의 대화, 그리고 유스케가 사에코에게 건넨 커피를 통해 보여준다.


"인생을 좀 더 즐겨야지, 앞일을 모르니깐 인생이 즐거운 거야."
"아니, 늘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순 없어."
"힘 좀 풀어!"
"인생에 대해 알기나 해?"
"좀 더 유연하게 살자, 그러려고 내가 있는 거잖아, 사에코를 더 유연하게 해주려고."
"그렇긴 해, 내 유연제지, 유스케는."
유스케曰 : 

"일이 잘 안 풀려서 속이 타는 것 같은데, 그러면 일단 커피라도 마시면서 진정해야지. 커피 마신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만 한숨 돌리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그렇게 최악은 아니구나 생각이 들지도 몰라. '뭐 어때,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식으로. 거기다 안 보이던 게 보이게 되거나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을 찾기도 해. 커피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처음엔 싫다고 생각했던 것도 나중엔 즐거운 일로 변하는 거야."


 다음은 사에코와 나루세이다. 사에코는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는 도전적인 인물이다. 슬픔을 이겨내 성장하려는 자세와 단단한 마음을 지녔다. 똑 부러지게 자기 의견을 얘기하는 자신감과 당참을 가진 그녀는 활달한 성격에 원만한 사교성을 지닌 사람이다.


 반면, 나루세는 잔잔한 물결 같은 인물이다. 모험적인 사에코와 달리 주어진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로 보였다. 이는 오랫동안 몸이 아팠기에 보이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아픈 몸 때문에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며, 부족한 자신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감정의 동요가 겉으로 크게 나타나지 않는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이다. 다만, 유스케의 심장을 이식한 후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별, 그 뒤에 일어난 수많은 이야기.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의 감정선. 때론 기쁘기도, 슬프기도, 답답하기도, 화나기도 한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오가는 작품, [이별, 그 뒤에도]였다.


 끝으로, 유스케가 지쳐있던 사에코를 위해 연주한 피아노에 숨은 진심을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SMILE', '사에코, 웃는 거야. 앞으로도, 계속'










※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 아트인사이트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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