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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i May 20. 2024

비우기

일상에세이

그동안 손쉽게 결핍을 채우는 방법으로 구매와 소비를 택했었다. 그로인해 허하고 채워지지 않은 마음 한 구석을 빠르게 채울 수 있었다. 택배가 오는 기쁨, 하나씩 박스를 뜯어서 내가 고른 새 물건을 보고 있노라면 결핍이 금방이라도 채워진 듯한 효과를 얻었다. 그 결과 물건들에 마음이 압도당한 것처럼 함몰되어 허우적거리면서도 차곡차곡 정리하고 구매를 반복했었다.


마음의 전환기가 오면 난 비우고 비운다. 큰 파도가 높게 휘몰아치고 나간 것처럼 미친 듯이 버리고 비운다.

매월  자동이체로 기부하는 기부단체에 물품을 보내 개발도상국에 내 물건들이 가기도 하고, 국내 장애단체에기부, 그 외 중고나라 및 당근거래 그리고 나눔, 그리고 나머지는 헌 옷수거함 및 분리수거. 그거조차 안 되는것들은 75리터 쓰레기봉지에 넣어진다. 비우기도 요령껏해서 지구에게 덜 미안한 감정이 들게 하고픈 나의 마지막 발악인 듯싶다.


2024년 또다시 마음의 전환기가 찾아와 비우기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1월에 1차로 비우기를 했고, 24년 2차로 비우는 중이라 오늘은 새벽요가수련 후,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선 계속 비우고 비웠다. 생활걸음 만보를 찍은 거 보면 약 빤 쥐처럼 온 집안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분류작업을 하면서 비운 게 느껴져 뻐근하고 욱신거리는 몸보다 심적 가벼움이 더 크게 느껴져통증이 상쇄되었다.


정리를 하면서 생각에 잠긴다. 뭐가 그리 허했길래 그때 왜 이렇게 이런 걸 많이도 구매했을까? 상념에 사로잡히며 물건을 보며 그 물건을 구매했던 계절, 그때의 냄새, 그때의 공기, 그때의 내 마음이 아리게 몽글몽글 세세하게 피어오른다. 모든 감각이 예민한 HSP(Highly Sensitive Person)의 1인으로 삶을 살아가면 남들보다 불편감도 고통스러움도 더 많지만 이런 섬세함이 나에겐 소소한 행복감을 주기에 예민한 내가 나는 좋다.


곧 이 비우기도 끝이 나겠지만, 나는 안다. 이번 비우기의 의미와 목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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