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우리나라에서 금기시되는 '부모 흉보기'. 난 부모가 싫다. 싫고 밉고, 인간 대 인간으로의 대인관계로만 놓고 보면 내 부모만 아니었으면 애진작에 손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 자식 간 사이는 그럴 수 없는 관계이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더더욱 그렇다. 균등하고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부모의 양육이 없으면 자식들은 생계와 목숨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어마어마하게 큰 존재이자 어릴 때는 거의 신과 같은 동급으로 자식은 부모에게 기대면서 살 수밖에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닌 역할과 도구로서 딸을 취급하는 걸 알면서도 묵인하고 부모와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무적의 말 '가족'이라는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선택할 수 없는 부모의 타이틀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나에게 있어 감옥과도 같은 탈출해야 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나보다 두 살 많은 형제인 오빠가 한 명 있다. 겉에서 보기엔 아들, 딸 그리고 부부, 누가 봐도 정상가족 범주에 속하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을 띄고 있으며, 중상층보다 더 잘 사는 누가보다 남부럽지 않게 돈 걱정 없이 사는 평범보다는 부자에 속하는 가족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정상가족의 균열을 내가 내어버렸고, 결국 천륜을 끊어버리게 되는데.. 하나같이 주변에서는 이런 날 못마땅하게 여기는지 "불효녀', '너 천벌 받아, 그러면 못써', '어떻게 부모에게 그럴 수 있니? 지금에서라도 잘못했다고 빌어라'. '너 같은 자식을 낳아봐야지 너도 알게다'.라는 말로 나를 누르고 깎아내는 말들만이 돌아왔다. 그 상황이 어찌한들 간에 무조건 자식이 잘못했다는 주변인들의 반응에 나는 온갖 정나미가 다 떨어져 나갔었다.
'당신네들은 정서적 학대, 언어폭력, 신체적 학대를 가족으로부터 당하면서도 그려려니 하면서 묵묵하게 웃으면서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지요.' 반박하고 싶어졌다. 물론 나 또한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손쉽게 끊어 낼 수가 없었다. 알다시피 가족이었으니까 말이다. 서른 살, 내 방 코너에서 아빠랑 오빠가 번갈아 가면서 나를 주먹으로 때리고, 그걸 새언니와 엄마가 쳐다보는 수치심까지 느끼고도 난 천륜을 끊어 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가족이기 때문에 난 그러고도 가족을 보았고, 며칠이 지난 후에는 아무 일 없었다듯이 웃으면서 일상 대화를 하고 있는 내가 당시 너무 싫었다. 마음 같아서는 죗값을 받게끔 경찰에 신고하고 잘못이 있다면 상대방들에게 죗값을 당연히 받게끔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하나,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끈질기고 질기고 끊고 싶어도 절대 손쉽게 끊어내뜨릴 수 없는 지겹디 지겨운 인연, 가족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 결혼생활의 유지 또한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기 싫은 원가족의 울타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더 쉽게 이혼이라는 결정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 원가족들과 엮이고 싶지 않으면 오롯이 내가 자립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돌다리도 부서질 정도로 두들겨보면서 신중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 특유의 남들과 비교하듯 말을 하자면, 남들이 보면 복에 겨운 개소리 지껄인다고 한다. 부자인 부모 밑에서 남부럽지 않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어릴 때 미국에 가서 학교도 다니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지낸, 겉으로 보기에는 '네가 왜 가출을 하는데" "부모 비위하나 맞춰주는 게 그렇게 힘드니?'라면서 어릴 적 친구들에게 되려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누구도 날 이해하거나 위로해 주지 않았다. 결혼하고 나서는 "뭐가 불만이야?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 도박을 하니? 폭력을 행사하니?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고 이혼을 운운하고 그래?" 그렇다. 난 나의 고충과 아픔, 이해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 한 들, 돌아오는 말들은 하나같이 배부른 소리라면서 나를 운운했다. 그러는 사이, 난 어느 순간, 내 주변인들에게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고, 점점 고립되면서 나의 소리를 내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
내가 천륜을 끊어낸다 해도, 부모는 핸드폰이 생긴 내 아들에게 안부를 묻고, 전화를 걸었다.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내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짜고짜 (늘 그러해서 익숙하지만) 아들에게 "할머니 너네 동네 가니까 나오렴, 너네 엄마랑도 같이 나와" 라며 말을 했고, 항상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는 아들덕에 난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어 손짓으로 엑스를 보여주며 아들에게 혼자 나가라고 속삭였다. 관계에 있어 난 나와 내 부모와의 관계를 아이에게까지 전이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들과 내 부모와 연락을 하고 지내도 통제하지 않았다. 그건 내 아들과 내 부모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관계의 양상을 띠고 있으니 그 부분까지 터치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잘못이라면 나의 잘못이었던 거다. 아들은 할머니에게 "엄마는 안 나간데요, 저만 나갈게요"라고 말하니 "아니 너네 엄마는 왜 그런다니? 언제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안 보고 산다고 하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죽을 때까지 안 보려고 하냐? 대체 너네 엄마 왜 그런다니? 몰라, 엄마도 데리고 나와!" 나의 의사는 무시된 채, 아이에게 강요하는 태도가 역겹도록 싫었지만 내 목소리조차 들려주기 싫었기에 대꾸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혼자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났고, 아이 통장에 용돈 몇십만을 넣어주었다. 당신네들은 꼭 돈으로 생색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아들에게 용돈준 걸 기여코 나에게 말하고 싶었는지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난 받았다. 왜 아들 통장에 용돈을 넣어준걸 나에게 보고하고 자랑하듯 이야기하는지.. 내가 돈을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그럼 내가 감사하다고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건가? 아이 돈은 아이 돈이다. 난 절대 아이가 누구로부터 받은 용돈들은 터치한 적이 없다. 부모들이 늘 하는 "엄마가 일단 가지고 있을게, " "엄마가 보관해 줄게" 그러면서 꿀꺽하는 부모들이 많은 거 안다. 난 그게 싫었다. 아이가 받은 용돈들은 고스란히 아이 통장에 넣어주고 나중에 아이가 사용할 수 있게끔 보호해 준다. 그런데 마치 나에게 돈 몇 푼 쥐어준 것 마냥, 감사하다는 소리가 듣고 싶다는 것 마냥, 생색내는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이왕 난 부모에게 오랜만에 내 목소리를 들려준 김에, 내가 왜 연락을 피하는지, 왜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안 보고 산다니'라는 말을 내 아이에게는 하지 말라면서 차근차근 읊조렸다. 그러는 와중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울먹거리며 울기 시작했고, 옆에서 아빠라는 작자는 전화기를 뺏어 들어 나에게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썅년아 끊어!!" 그렇다. 부모로부터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날 것 그 자체의 "화"와 함께 뱉어진 욕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