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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i May 02. 2024

시가에서의 마지막 추석

 

바야흐로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가 6살 때의 추석이었으니까 벌써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설날에는 만두를, 추석에는 늘 핸드메이드로 '여자들만' 송편을 만들었다. 며느리가 한 명 더 늘었다는 이유로 제사음식이나 명절음식의 양은 더 많이 늘어났으니 당연히 송편의 양도 더 늘어났다. 결혼 전에는 송편을 만들어 먹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쌀가루 반죽은 금방 굳어 말라버린다는 걸 알지 못했었다. 밀가루와는 다른 점도로 쉼 없이 쌀가루 반죽을 치대 주면서 만들지 않으면 금세 가뭄 든 땅처럼 반죽이 쩍쩍 갈라져 버리기 때문에 쉼 없이 반죽을 조몰락해줘야만 한다. 아침 6시부터 시가에 가서 추석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내 몸은 잠에서 덜 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였을까? 아침부터 쌀가루 반죽을 치대니 나의 오른 손가락 마디마디는 분절되는 것 마냥, 마냥 아픈 통증이 세게 느껴져 썩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거기다 남자들은 거실에 앉아 생산성 없이 티브이 앞에서 노가리나 까면서, 가끔은 밤을 까대면서 부엌에 출입하지 않은 시가 남자들이 내 눈엔 잉여인간들처럼 미워 보였다. 누군 일하고, 누군 노는 이런 불합리함이 싫은 거다. 막상 차례상이나 제사상 앞에서는 아무것도 안 한 지네들이 주인공이고 여자들은 얼씬도 못하고 시다역할만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가풍이었다. 


아침에 첫째 아들의 며느리인 '형님', 시어머니와 나는 식탁에서 열심히 반죽을 치대며 송편을 빚고 있었다. 거실에 잉여인간들이 하나같이 다 얄미워 보여서 난 나의 피가 섞인 거실 속 남자인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아들!, 식탁에 와서 너도 송편을 빚어, 잘 못해도 상관없으니까 식탁에 와서 도와야지, 누군 일하고 누군 앉아있는 건 아니지 않니?" 라며 아직 새까맣게 어린 아들에게 건네는 이 말은 사실 아들을 빌미로 거실에 앉아 있는 남자들에게 말하는 외침이었던 것이다. 그래봤자 호칭이 "서방님"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호칭이 "아주버님"이란 사람은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자기네 집에서 연휴 아침을 쿨쿨 자면서 보내고 있어서 거실에 남자들이라 해봤자 나의 배우자와, 아들, 그리고 시아버님 세 명이 앉아 있었다. 아들은 나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식탁에 앉게 되었고, 나머지 두 남자들도 자연스럽게 식탁에 와서 송편 만들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송편을 빚고 있는데 어머님이 한 마디 하신다. 

"열 흘있다 다시 있는 제삿날 오후에 게이트볼 시합에 나가게 되었네, 내가 새벽에 제사음식 하고 갈 테니 며느리들은 아침에 와서 음식 돕지 말고 그냥 저녁에 와서 제사에 합류하거라" 

추석 후, 대략 열흘이 지난 후에 또 제사가 있다. 이 때는 추석 명절음식도 아직 다 소거되지 않은 터라 평소 다른 제사준비 때보다 음식을 적게 만들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한 제사이기에 제사음식을 간소하게 만든다. 하필 늘 추석 이후, 곧 또 다른 제사를 준비해야 해서 며느리인 나는 스트레스였는데, 저녁에 제사 때만 참석하라고 하니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아하고 있었다. 

형님은 내 왼쪽에서 송편을 빚으면서 말을 이어간다.

"어머님, 며느리가 둘씩이나 있는데 왜 그러세요? 저희가 아침에 만나서 둘이 음식 할 테니까 어머님은 그냥 다녀오세요." 라며 나의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내던짐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쌀가루 반죽처럼 아주 쉽게 굳어진 모양이었나 보다. 

형님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말을 건넨다.

"동서, 표정이 왜 그래?" 이 말.

이 말의 파장은 나비효과처럼 결국 모든 판도를 바꿔버리게 되는데..

나는 말했다. "기분이 나빠서요"

형님이 말한다. "기분이 왜 나쁜데?"

"그냥 기분이 나빠서 나쁘다고 말하는 건데, 왜요?" 나의 도발이었다.

이 집에서 서열적으로 늘 쪼랩인 내가 말대꾸를 하면서 맞받아친 것이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늘 형님이 나를 따로 불러 혼내면 눈물만 흘리면서 죄송하다고 말했던 둘째 며느리인 내가..

시어른들과 나의 배우자와 아이가 있는 식탁 앞에서 나도 모르게 (의도하지 않았다) 속에 있는 말을 뱉어버리고 만 것이다.

형님은 눈을 땡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잠깐 방으로 들어오라며 부엌의자를 박차고 결혼 전 내 배우자가 쓰던 지금은 서방님의 컴퓨터 방이 되어버린 그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뒤이어 나도 들어갔다. 


"동서!! 어른들 다 계신 식탁 앞에서 무슨 행동이야?" 

"기분이 나쁘다고 한들 그렇게 말을 하면 돼?" 


"형님이 저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어머님이랑 대화하시는 거였나요? 며느리 둘이 음식을 한다고 한들 저에게 먼저 물어보셨나고요? 저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고 왜 그렇게 확답의 말을 하신 거죠?" 


"그건 내가 사과할게, 하지만 동서 그러는 거 아니야, 어머님 연세를 봐, 지금 며느리를 둘이나 보았는데도 같이 음식을 하고 있잖아, 한 명이 더 들어왔으면 이제 부엌일 손떼실 때도 됐는데.. 블라블라블라..

"나 아까 동서가 그렇게 말해서 어르신 있는 식탁 위에서 쟁반 던지고 씨발이라고 말할뻔했어"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뱉지도 않은 '씨발'이라는 욕을 왜 이제 와서 말할 뻔했다고 말을 하는 건지 의아해하면서 대답했다. 

"형님이 씨발이라고 하면서 쟁반을 던졌으면요. 저 가만히 안 있었을 거예요, 아마 아수라장 됐을 거예요!" 

난 더 이상 수그리고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고, 저런 말에 기고 싶지도 않았다. 


내 감정이 그러하다고 개판을 치며 망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유야무야 명절음식은 마무리를 했다. 그 추석기간 동안 방 안에서 나눈 대화가 시원치 않게 느껴졌는지 추석 연휴 내내 형님이라는 작자는 말로 나를 찍어 눌렀다. 

"동서, 몇 주 전, 우리 가게 리모델링 했다고 시어른들이 동서 부모 모시고 우리 가게 와서 식사대접 했더라, 우리 집은 엄마만 있어서 그런 건지, 시어른들이 우리 엄마 모시고 식사대접도 안 했는데, 너무 화가 나서 말이야, 일부러 동서 부모님들에게 인사 안 했어. 동서 부모님들이랑 눈 마주쳤는데 그냥 쌩까고 지나갔어!" 


사실 확인을 위해, 집에 와서 부모랑 통화를 했고, 그때, 형님이 쳐다보고 인사도 안 하고 째려보고 지나갔었다고 말을 전했다. 대체 형님은 왜 그랬는지, 설사 그런 행동을 했다 한들, 내 부모에게 한 매너 없는 행동들을 나에게 전할 것까진 없지 않았을까? 


그 외 추석 연휴 내내 이따위 비슷한 말들로 날 찍어 눌러댔으니, 연휴 내내 난 몸도 마음도 성난 상태였었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난 혼자 거실에 앉아 많은 생각의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아주 어렵게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며 요동치는 소리와 함께 시어머님께 한 통의 문자를 전송했다.


"어머님, 앞으로 시댁의 모든 제사 및 행사에 불참하겠습니다" 


이건 형님이란 작자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지만, 형님 때문에 일어난 반기는 아니었다.

시발점이 되어준 거지 결코 형님이라는 여자 한 명 때문에 마치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배우자의 집안에 균열을 일으킨 건 결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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