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입영하셔도 됩니다."
우리 집으로 들어가려면 꼭 지켜야 하는 절차 한 가지가 있다. 군사경찰에게 군가족용 신분증을 보여주는 일이다.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신분증을 놓고 오기라도 했다간 남편 혼자 집에 가서 가져와야 한다.
나는 전투비행단 안에 있는 관사(官舍)에서 직업군인의 아내로 살고 있다. 우리 아들과 딸은 직업군인 아빠 덕분에 매번 입영을 하고 있다.
부대 밖에서 거주할 수도 있지만 조종 특기인 남편은 비상이 걸리면 신속하게 출근을 해야 한다. 때문에 전투기 조종사들은 대부분 관사에서 살고 있다. 주말 부부를 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가족들도 관사에서 거주하고 있다.
내가 벌써 8년째 관사에 살면서 겪은 장점과 단점을 써보겠다.
장점
1. 신분이 명확한 사람들만 거주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기가 안전하다.
2. 공군 마트(BX) 이용이 가능하다. 저렴하게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다.
3. 면허만 있는 운전 초보자라면 제한속도 20~40인 부대 안에서 남편과 운전연습을 할 수 있다.
4. 나는 무교이지만, 부대 안에 교회, 성당, 절이 모두 있어 종교 생활이 가능하다.
단점
1. 편의시설(마트, 병원 등)이 다소 멀다.
2. 배달의 민족을 거의 사용할 수 없다.
(부대 문 앞까지 배달해 주는 식당이 간혹 있지만 차 타고 가지러 나가야 한다. 이건.. 배민이 아니야..)
3. 전투 비행단이기 때문에 전투기 이륙하는 굉음 소리를 매번 듣는다. 훈련 시 부대 출입에 다소 제한이 있고, 소등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장점과 단점사이
1. 남편의 상사, 동료, 후배 가족들과 이웃사촌이 된다.
부대 위치가 원가족과 살던 거주지가 아니라면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다. 관사에 살면 남편의 직장 동료, 와이프들과 대면하게 된다. 그들이 윗집에 또는 옆집에 살 수도 있다. 가깝고도 먼 이웃사촌이 된다.
내가 관사에 산지 2년 차 정도 되었을 때 일이다. 같은 대대 아주머니들이 소통하는 카톡 단체방이 있었다.
대대장 아주머니께서 점심식사 모임을 추진하셨다. (이곳에선 선배기수 아내를 '아주머니'라고 호칭한다.)
처음 아주머니들끼리만 만나는 자리라 어색하고 떨렸다. 간호사, 한의사, 방송국 직원, 스튜어디스 등 각양각색의 일을 해왔던 또는 하고 있는 그녀들. 직업군인 남편 하나 믿고 타향살이를 자처하고 있는 처지에 짠함과 동질감을 갖게 되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아주머니들과는 유독 친밀감이 느껴졌다.
아! 다행히 결혼 전 직장 상사분이 걱정했었던 선배들의 김장은 담근 적이 없다.
언제까지 관사에 살지 모르겠지만 관사에 사는 동안 이웃사촌분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