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죽음을 아는 삶은 어떤가.
절대자의 위치에 서서, 매일을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며 살아온 존재에게 신계는 본인의 직장이자 본인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나 앵무새 대왕과의 만남 이후, 절대자는 히미에게 너와 마히로는 돌아가야겠다고 말한다. 이후 그가 마히로에게 후계를 제안하긴 하지만 아마 그는 이미 선택을 내렸을 것이다. 본인의 전부이자, 세계들을 유지하는 신계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마히로의 행복과 히미의 행복, 나츠코의 행복을 위해 그는 본인의 세계를 부수는, 믿기 어려운 선택을 했다.
이 글을 읽는 그대들은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자신이 아닌 삶들을 위해, 자신이 이루어낸 평생의 삶을 부수는 절대자. 죽음은 새로운 삶이고, 붕괴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들어 맞는다. 한 생명의 죽음으로, 다른 한 생명의 삶이 생겨난다. 그렇게 한 생명의 죽음과 맞바꾼 삶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말미에서 히미는 자신의 결말을 알면서도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초록색 문을 연다. 마히로에게 '멋진 삶이지 않니.'와 같은 말을 하면서 말이다. 자신의 죽음을 아는 삶을 멋지게 살아나가고, 멋지게 끝맺겠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유한하고 정해진 결말이 있다고 해서 그 삶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아니라는 걸. 히미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보여준다.
같은 하루를 계속 반복하면서, 삶의 의미가 흐려지는 사람이 많은 요즘의 사람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는 히미의 불꽃을 통해 아름답지 않은 삶이란 없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절대자 옆에서 부유하고 있는, 신계를 만든 돌을 보고 마히로는 악의가 가득한 돌이라고 한다. 이에 절대자는 오랜 시간 동안 찾은, 악의가 없는 돌들을 활용하여 세계의 균형을 맞추는 일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악의가 없는 돌들은 악의가 없는 사람만이 만져야한다고 일러둔다. 이에 마히로는 꿈속에서 그 돌 역시도 악의가 가득하다고 말한다. 아마 이때 절대자는 실감했을 것이다. 본인이 평생을 해온 일 역시도 악의, 본인의 고집과 악의가 담긴 행동이었음을. 그리고 결단했을 것이다. 신계의 전달 혹은 몰락을. 이후 실제로 대면했을 때, 절대자는 같은 말은 하지만 마히로는 자신 역시도 악의가 있기에 만질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말미에 마히로는 흰색 돌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는데, 이때 왜가리는 그 돌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즉, 세계를 유지시켜주던 하얀색 돌의 가치는 그냥 일반적인 돌멩이와 같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이는 곧 세계를 유지시키는 행위가 쓸모없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신계의 필요성이 없다는 걸 알려주기도 한다.
또한, 세계의 유지보다는 세계의 멸망도 필요하며 그 세계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그 세계에 속한 존재들이어야 한다는 걸 제시해주기도 한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