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울 근, 먹 묵, 놈 자, 검을 흑
어려서 엄마 손에 이끌려 서예학원에 갔습니다. 주에 5일, 5년을 다녀서인지, 묵향이 참 좋습니다. 벼루에 맑은 물을 붓고 먹으로 부드럽게 갈아 내어 만드는 그 과정이 좋아요. 마치 성당 안에 울리는 엄숙한 찬송가 같아서, 절에서 느끼는 고즈넉한 향 내 같아서 그 자체로 마음이 참 편안해집니다.
근묵자흑이라는 사자성어는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 배웠습니다. 먹을 가까이하는 자는 검어진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과 가깝게 지내면 나쁜 버릇에 물들기 쉽다는 의미지요. 당시 나이에도 그것은 이해가 잘 됐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제 옷에는 빨래를 해도 지워지지 않는 먹물이 이곳저곳에 묻어 있었거든요. 다만 먹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듯한 말은 조금 의아했습니다. 열 살 꼬마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나 봐요.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을 멀리하라고?"
"우리 학원에는 좋은 형도 있고, 친구도 있고. 게다가 원장님은 진짜 훌륭하신 분인데..."
"학교 선생님도 이 학원에 다니시는데. 왜 서예를 하는 사람을 멀리 하라고 하지?"
물론 지금은 주변 환경이 사람을 얼마나 쉽게 동요시키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질투 같은 감정이 얼마나 빠르게 퍼지는지 또한 충분히 알고 있지요. 그러나 '근묵자흑'은 여전히 제겐 참 어려운 사자성어입니다. 어떤 기준과 어떤 색이 나에게 맞는 기준인지, 색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신선한 공기와 따스한 햇살을 머금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욕설이나 나쁜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첫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죠. 그의 주변에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합니다. 그 자신이 원래 밝은 성격인 데다가, 늘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주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공원에 갔다가 버려진 쓰레기를 주으며 환하게 웃는 그에게 뭘 그렇게 까지 하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고, 뭐 깨끗하면 누구나 놀기에도 더 좋잖아요. 근데 사실은 이렇게 하면 내 기분이 더 좋아요. 좋잖아요. 나도 좋고. 남들도 좋고."
언젠가부터 그의 생각과 말투를 좇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와 남을 모두 웃음 짓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의 마음과 말투를 따라 하다 보면 제 얼굴이 조금은 더 밝아지지 않을까요?
링컨 대통령은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태어났을 때의 얼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내면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사실 바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때 누군가에게 “새로 님 참 밝게 늙었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어치피 생길 주름인데 시기나 질투, 분노로 만들어진 주름은 갖고 싶지 않거든요.
근묵자흑이든 근주자적이든.
앞으로도 좋은 사람의 모습들은 많이 따라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