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수, 맑을 청, 없을 무, 고기 어
"아부지. 딱 대고 있으세요. 이제 이쪽에서 갑니다."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야 돼. 범위를 좁히고!!"
"아휴 걱정 마세요. 엄청나게 들어갈 거니까 놓치지 말고 잘 올리기나 하세요."
"걱정 말고 잘 몰기나 해 인석아."
팔다리를 걷어붙인 아들이 작은 하천 한쪽 귀퉁이에 자리한 아버지를 향해 소리칩니다. 비장한 표정의 아버지는 양팔을 한 껏 벌린 채 물아래 고운 모래에 족대를 넓게 펴고, 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긴장되는 순간. 이내 아버지와 눈 사인을 주고받은 아들이 요란스럽게 다리를 움직입니다. 크게 물장구를 치며 속도를 올려요.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호기심 어린 표정의 아이들은 함께 신이 나서 할아버지와 아빠를 응원합니다. 엄청난 물장구와 물보라를 일으키며 족대 그물망을 물 밖으로 꺼내 봅니다.
........
작은 피라미 한 마리와 수초들 뿐입니다. 허탕이에요.
"와 이렇게 했는데도 안 잡히는 거면, 여긴 고기가 없는 거야. 그죠 아부지?"
"맞다 맞아. 아마 작년에 우리가 와서 여기 씨를 말린 탓인 게야. 이거 완전 씨가 말랐군."
부자(父子)를 약 올리기라도 하듯, 작은 물고기들은 자유롭게 하천을 돌아다닙니다. 부자는 육안에 들어오는 고기를 애써 외면하고 멋쩍은 듯 웃을 뿐이죠.
부자의 허풍을 보며 그들의 아내들은 그저 웃고 맙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어릴 적 족대질을 하면 몇 마리는 쉽게 잡곤 했는데, 요즘은 통 신통치 않아요. 물장구와 허풍만 요란할 뿐이지만, 족대 그물에 걸리는 웃음들이 그대로인 것은 참 다행입니다. 비록 물고기는 잡지 못했지만, 부자(父子)는 부자(富者)입니다.
수청무어라는 말은 후한(後漢) 시대에서 유래된 사자성어입니다. 명제(明帝) 때 오랑캐 50여 부족을 복속시킨 반초라는 장수가 조정 내직으로 올라가자, 그 후임자인 임상(任尙)에게 충고한 것에서 유래했지요. 충고를 무시하고 엄한 정치를 펴나간 임상은 결국 5년을 가지 못하고 50 여 부족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엄격한 다스림과 원리원칙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의 사소한 잘못은 눈감아 주라고 조언한 것이 바로 수청무어입니다.
수청무어는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숨을 곳이 없으니 살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통상 사람이 지나치게 바르고 허물이 없으면, 곁에 사람들이 잘 따르지 않는 의미지요. 개인의 처세에 이르는 사자성어지만, 대한민국 현재의 사회, 정치에 넓게 이르고 있는 격언이기도 합니다.
수청무어라고 하면 작은 폐해는 대충 넘어가라는 다소 부정한 말로 들리기도 하는데, 이를 확대 해석하여 자기 합리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스스로에게만 관대한 기준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근래의 '수청무어'는 조금 다르게 해석이 됩니다. 사소한 잘못을 넘어가라는 의미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남의 잘못과 허물을 지적하는 자기 합리화를 지적하는 의미로 말이죠.
아이를 지적하지만, 진작 본인의 실수와 잘못에는 둔감한 부모들. 팀원들을 괴롭히는 나르시시스트 관리자. 필요에 의해 싸우고 화해하며 악수하는 정치인들의 잇속. 많은 현상에서 수청무어라는 사자성어를 곱씹어 봅니다. 맑은 물에 고기가 살지 않듯이 나도, 남들도 작은 잘못과 실수를 하며 살아갑니다. 맑은 물과 같은 성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요.
사람을 지탱하는 허리는 모두 33개의 척추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로는 머리를 받치고 아래로는 골반과 연결되어 있죠. 33개의 척추 뼈 사이에는 척추뼈와 신경을 보호하기 위한 디스크가 존재합니다. 척추뼈끼리 닿아 뼈와 신경이 상하지 않도록 완충의 기능을 갖고 있지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이치에 타인의 허물과 잘못을 지적하는 엄격한 원칙만이 존재할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에도 융통성이라는 작은 디스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