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듣고 있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더라고.'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을 할 때 사람들은 실제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등의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속이 끓어오른다는 것이 단순히 비유만은 아닌 것이다. 만약 이 때의 몸 상태를 측정한다면, 관측자는 실제로 그의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거나 스트레스성 호르몬이 분비된다거나 하는 신체적 변화를 보고할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소리'를 듣는 행위가 어떻게 신체 변화라는 물리적 현상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소리'란 본질로 보면 공기를 진동시키는 행위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보면 평소와 다른 공기 진동이 나의 피부에 와닿고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 공기의 진동이 마음은 물론, 신체적 변화의 원인이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이 '육체와 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가정으로는 이 당연하고 일상적인 현상조차 잘 해명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새로운 인간관이 필요한 이유는, 세심하게 살펴보면 이렇게 도처에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던 존재 모형을 토대로 이해하면 이 현상을 훨씬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인체가 육체뿐 아니라 육체를 둘러싼 몇 겹의 에너지 층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의 피부뿐 아니라 각 오라 층에도 진동이 일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감정적으로 화를 내며 아이를 훈육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때 부모는 아이가 '나의 말'을 듣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혹은 나의 감정이 아니라 '말'에 주목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의 존재장에 먼저 닿는 것은 '말'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뿜어져 나온 '화火'의 파동이다.
부모의 감성체에서 뿜어져 나온 화의 파동은 아이의 존재장에도 공명을 일으켜 아이의 감성체에 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렇게 유발된 화는 아이의 감성체뿐 아니라 신체와 지성체에까지 확장된다. 결국 아이는 몸에 열이 오르고, 이를 회피하려는 몸의 반응으로 인해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는 '감정적 훈육'이 교육 효과를 떨어뜨림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메커니즘은 상세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렇듯 존재의 구조를 오라로까지 확대하면 그간 설명하기 어렵던 여러 현상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스트레스성 질환'이라 부르는 심인성(心因性) 문제들의 해법을 찾는 데도 이 모형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오라'라는 영성계의 개념을 소개하고 싶어 하는 것도, 그것이 신비주의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경험을 잘 설명하는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지혜이기 때문이다.
물질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그림처럼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내 안에 일어나는 변화가 모두 나에게서 유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감정적‧정신적 변화가 실은 내부 원인 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온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일수록 그 원인이 '나'가 아니라 '타인'에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내게서 뿜어져 나가 상대의 화를 불러일으키는 에너지는 보이지 않고, 그 결과 화를 내는 타인의 말과 행동만 보이니, 늘 내가 아니라 타인이 먼저 화를 낸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화는 화를 부르고 다정함은 다정함을 부르는 것이 존재의 섭리다. 그래서 이 원리를 진즉에 아셨던 석가모니는 이를 '업業, karma'이라 부르셨다. 업이란 외부에서 내게 부과하는 형벌이 아니라 내가 만든 에너지가 결국 나에게 되돌아오는 원리를 의미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우주의 물리법칙은 우리의 마음과 인생에도 적용된다. 사람들과 불화를 겪는 경향이 있다면, 타인을 탓하기에 앞서 나를 먼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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