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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Feb 24. 2024

운전 10일 차. 차에서 불이 나면 어쩌지?

초보운전, 후진 연습 후

"저녁 먹고 뭐 할 거야?"

"운전 연습 할 건데?"


내 심드렁한 대답에 엄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난 네가 저녁에는 연습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그럼 난 언제 연습해? 낮엔 출근하는데?"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지금은 환하잖아. 아직 어둡지 않은데?"


엄마가 창밖을 내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노을도 들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퇴근 후, 엄마는 충분히 피곤할 수 있지. 나는 밥그릇을 비우고, 엄마한테 물었다.


"아니면 나 혼자 갈까?"

"안돼! 아직 나는 널 혼자 못 보네!"


음. 그래, 내 나이면 엄마가 혼자 밖에 내보내기엔 좀 걱정스러울 나이긴 하지.


**


보통사람보다 5분 일찍 퇴근하는 엄마는 차 빼기에 기가 막힌 자리에 주차를 해뒀다. 아무래도 엄마가 내 주차연습을 달갑지 않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 같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하며 들고 왔던 초보운전 자석을 차에 쓱 붙였다. 이미 차에는 제법 커다란 스티커로 초보운전이라도 붙여둔 상태였다.


"인터넷에 보니까 이걸 8개씩 붙이는 사람도 있던데. 나도 그렇게 붙일까?"

"... 그럼 뒤에 못 봐서 안 돼."

"아니 유리에 붙이는 게 아니고, 자석이라서 이렇게 트렁크에 붙이는 거야."

"... 그래도 그건 아니야."


쳇. 하긴 엄마 입장에서는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는 거 자체가 기분이 상할 일일 지도 모른다. 10년 이상 스틱 화물차를 운전한 엄마인데, 나와 차량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 차를 몰고 다녀야 하니까. 안전벨트를 야무지게 맨 엄마가 외쳤다.


"이제 쭈욱, 밟아봐."


나는 근 40년을 뚜벅이로 살았다. 그러나 운전을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기분이다. 내가 늘 걸었던 골목길은 왜 이렇게 좁은 것이며, 불법 주정차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왜 사람들은 인도에서 걷지 않고 도로 위를 걷는 것이며, 차량이 오는데 왜 도망가지 않는 것일까?


언젠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내 앞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던 차량이 있었다. 사람이 있는데! 저따위로 운전하다니! 내가 조금만 더 앞에 있었다면 아마 발등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다. 내가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야 했는데! 차폭감은 도대체 어디 나라 말이냔 말인가!


약 5분 정도의 운전 끝에 한산한 주차장으로 왔다. 주차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반듯하게 그어진 주차 라인을 기대했고,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아 땀을 뻘뻘 흘리며(?) 고뇌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주차 라인이 다 지워진 상태였다. 그리고 두 대의 차량이 아주 넓은 거리를 유지하고 주차된 상태였다.


"저 하얀 차 옆에 주차한다고 생각하고 연습해 보자."

"...."


왜 하필 차 옆에 주차하라는 거지? 혹시나 긁으면 어쩌려고? 그냥 저기 연석이 삐죽 튀어나와 있는 저곳에 대는 연습을 하면 안 될까? 하지만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뭐. 지금 여기선 엄마가 선생님이니까.


유튜브를 보고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일단, 기준 차량에 바짝 붙이고, 몸이 차량을 빠져나갔다는 느낌으로 쭉 나가서, 많이(?) 꺾은 후, 후진을 해서 들어오면 된다고 했다. 음. 겁이 나서 생각보다 붙진 못했지만 일단 꺾고 후진을 했다. 


"처, 천천히!!"


시속 20킬로로 겨우 달리는 나는 왜 후진할 때는 이렇게 막힘이 없는 것일까?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우아하게'를 외치던 운전면허 학원의 강사가 생각난다. 잘 계시나요? 아저씨?


그런데 주차를 하긴 했는데 문제는 주차된, 기준 차량과 너무 떨어져 있다. 중간에 한대는 차가 더 대어도 될 것 같은데?


"내가 내려서 봐줄게!"


엄마가 차에서 후다닥 내린다. 그리고 차 뒤에 서서 손짓을 한다. 아, 아니야. 그건 아니라고! 잔뜩 예민해진 나는 차의 창문을 내려 외친다.


"엄마! 내가 후진하다가 엄마를 박으면 어쩌려고 뒤에 있어! 비켜!"

"그래!"


엄마가 연석 위로 올라갔다. 나는 다시 주차를 해보았다. 그런데 다시 했는데도 똑같았다. 아, 유뷰브에서 안 그랬는데! 바로 슝 들어갔는데! 그런 나를 보며 엄마가 외쳤다.


"너는 차를 댈 때 계속 꺾고 있어서 그래. 중간에 이렇게 풀어줘야 하는데-"

".... 내가 이래서 엄마랑 안 오고 싶었어."

".... 뭐?"

"나는 집중해서 하고 싶은데, 엄마가 옆에 있으면 신경 쓰이잖아. 엄마는 할 것도 없이 심심하고! 나는 맘 쓰이고!"


내 못된 말에도 엄마는 엄마다. 알겠다고, 그럼 자신이 멀리 가 있을 테니 편히 해보라 나를 응원한다. 그러자 내 마음은 더 안 좋다. 괜히 쫓아낸 느낌에다 엄마한테 화풀이를 하는 기분. 나는 엄마에게 그냥 있음 심심하니까 가서 통화라도 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한번 더 주차를 해보는데, 갑자기 기준 차량에 불이 들어왔다! 깜짝 놀라 놀아보니, 차주분이 트렁크 문을 열고 있다. 아이고- 언제 왔는지, 엄마가 옆에서 외쳤다.


"차 뺄런가보다. 그렇게 있지 말고 얼른 네 차를 빼줘야지!"

"주차해서 빼주려고 했어!"


왜 가족들이랑 운전을 배우면 안 되는지 알겠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운전을 배우기가 정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집이 좀 있는 편이다. 운전은 정말 생 초보. 엄마는 베테랑. 바짝 엎드려 가르침을 사사하여도 모자랄 판에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고 있으니.... 엄마니까 봐주지, 보통 사람이라면 엄청 화를 낼 것 같았다. 아, 내 앞길이 암담한 것 같은 건 내 착각이겠지?


다시 엄마가 차에 타고, 나는 처음 내가 연습하려고 했던 연석 주변에서 하자고 말했다. 엄마는 예시를 보여준다며 차에 올랐다. 그리고 엄마는 시원하게 차를 긁어버렸다.


"아이고! 아까워라!"


엄마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느긋했다.


"뭐, 어때. 중고찬데."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까운 거지!"

"내가 긁었다고 생각해. 그럼 덜 아까울 거야."


엄마는 그런 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차를 세우고 내려 긁힌 부분을 확인했다. 나도 따라 내렸는데 생각보다 진짜 많이 긁혀 있었다. 한 30센티 정도? 차 앞쪽 범퍼 하단의 흰색 페인트가 완전히 다 벗겨져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긁었네?"

"그러니까! 많이 긁었어. 차량이 너무 낮아서 어렵다."


엄마는 평생 트럭만 운전해 왔다. 그러다가 5년 가까이 운전을 쉰 상태. 그런데 지금 모는 차는 스포츠카 형태로 나온 차체가 매우 낮게 디자인된 차였다. 낯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빠의 첫 차이기도 했으니... 오빠도 많이 긁어먹었을 것 같은데.? 혹시나 하고 엄마가 긁은 반대쪽을 보니 역시나 시원하게 긁은 자국이 있었다.


"이쪽에 오빠가 벌써 긁어먹었네. 양쪽으로 긁어서 도리어 대칭적이네. 괜찮아."


내 말에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 보았다. 흠. 난 진심인데...


차량을 세운김에 우리는 차량 이곳저곳을 건드려보기로 했다.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라디오가 나오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조용한 차가 싫다고 했다. 라디오? 그건 나도 모르는데? 결국 차 이곳저곳을 다 만져보았다. 진짜 별별 것을 다 누른 후에 라디오를 켜기는 했는데, 문제는 끄는 법을 못 찾았다는 점이다. 엄마는 심심하니까 계속 틀어놓자고 했지만, 나는 정신 사납다고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끄는 법을 몰랐던 우리는 결국 음소거를 택했다.


그런데 차 앞유리에 자꾸 습기가 꼈다. 분명 올 땐 안 그랬는데? 아, 유튜브에서 습기 차는 건 온도차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기회에 적극적으로 다 눌러봐야지. 뚝딱뚝딱. 어, 없어진다? 어, 또 생기는데? 음, 좀 덥네? 에어컨을 켤까? 아닌데, 켜져 있는데? 왜 안 시원하지? 고장 났나? 역시 수리를 맡겨야 하나? 고민하던 날 보며 엄마가 시원하게 해답을 내렸다.


"에이, 일단 수건으로 닦자!"


엄마가 수건으로 앞 유리를 쓱 닦았다. 흠. 역시 수동이 빠르다. 다시 자리에 앉은 엄마가 물었다.


"근데 이 차 라이트는 어떻게 켜지?"

"이거 오토로 해놓으면 자동으로 밤 되면 켜진다던데?"

"그래? 신기하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해."


그런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다가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차를 한 바퀴 돌리고, 원하던 연석 근처로 왔다. 분명 유튜브에선 다 돌리랬는데, 엄마는 후진 중에 풀라고 했다. 후진 중에 풀라고? 흠. 유튜브의 가르침과 전혀 달랐지만 유튜브보다 엄마말을 믿어야... 겠지?


"아니, 더 감아야지!"

"...????"

"더 감아! 감으라고!"

"아니! 엄마! 봐봐! 날 보라니까! 이거 봐! 난 지금 최대한 감았어! 여기서 더 감을 수가 없다고! 그런데 어떻게 더 감아? 게다가 아까 엄마는 나보고 후진 중에 풀라고 했잖아."

"... 내가?"

"어. 내가 아까 계속 감고 있으니까 각도가 너무 크게 들어간다고, 중간중간 풀어서 들어가야 한다고 했잖아!"

"풀라고 했는데 못 풀면, 알아서 감으라고 알아들어야지?"


... 뭐라고요?!


이번엔 남아 있던 차 옆에 주차하는 연습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사색이 되었다.


"붙어! 붙는다고!"

"아닌데? 아직 여유 있는데?"

"아니라니까! 부딪친다고!"


결국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이럴 수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웠다! 아니, 이거 왜 이렇게 가까운 거야? 차체가 너무 낮아서 그런 것 같은데.. 의자는 이미 더 높일 수 없을 만큼 높인 상태였다. 허리에 쿠션이래도 대서 시야를 높여야 하나? 


"아니, 엄마 자리에선 보여? 어떻게 알았어?"

"나도 안 보여. 하지만 감으로 알았지. 차가 앞이 튀어나와 있잖아. 그걸 생각하고 움직여야지."

"차폭감 너무 어려운데."

"....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집에 가자."


고작 20분 연습했는데, 엄마가 집에 가자고 한다. 이래서 언제 실력이 느려나.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가야지. 결국 차를 끌고 집까지 왔다. 쫄보답게 시속 10킬로도 겨우 내서 집으러 기어 들어왔다.


엄마가 나를 위로했다.


"그래도 넌 소질이 있는 거야. 어떤 사람들은 처음 운전하면 대화도 전혀 못하고 그러는데, 너는 나랑 대화도 하잖아."

"음? 나 안 우울한데? 난 내가 생각보다 잘 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난 이것도 못할 줄 알았거든!"


정말이었다. 나는 내가 너무 겁에 질려서 차를 움직이는 것 자체를 하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도로에서 움직였다! 달렸다고 하기엔 좀 민망한 속도지만, 아무튼 내가 차를 움직였다는 그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내 대답에 엄마는 엄청 당황한 눈치였다. 시속 10킬로로 가는 뻔뻔한 녀석이 그런 대답을 할 줄 상상도 못 한 것 같았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지."

"오, 근데 불 켜졌다! 오토라서 자동으로 켜진 것 같아!"

"음?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불빛이-"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맞은편 차량과 눈이 마주쳤다. 놀랍게도 그 눈빛이 느껴졌다. 불쾌감이 가득한 눈빛. 저건 어제 내가 오빠랑 야간 주행하면서 하이빔 맞았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한- 헉,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깜빡이를 당겨보았다. 오 마이갓. 정말로 상향등이 켜져 있었다! 헐.. 죄송합니다.


그렇게 집에 들어왔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나갔던, 그 기가 막힌 위치가 그대로 비어 있었다. 주차장 자체가 거의 비어 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싸! 러키를 외치며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갑자기 심한 탄 냄새가 났다.


"엄마, 어디서 탄 냄새 안 나?"

"음. 난다."


우리는 둘이 한참 코를 킁킁거렸다. 엄마가 차 본넷 근처를 킁킁거리다 차에 손을 올렸다.


"차가 너무너무 뜨거운데?"

"그래? 아까 운전했을 때도 그랬어?"

"아니. 아까는 안 그랬지. 에어컨도 아까 퇴근할 때는 시원했어. 지금은 안 시원하지만."

".... 사실 나 엉덩이 뜨거운 기분이었는데."

"..."

"우리 아까 차 이것저것 만지고 나서부터 그런 거지?"

"그런 것 같은데.."


불길함이 스멀스멀 몰려들었다. 아까 경고등 같은 게 있었나? 하지만 계기판을 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 사이드미러 본 기억도 없다. 도대체 난 뭘 본 거지? 앞만 보았나? 그런 것치곤 멀리 보지도 못한 것 같았는데? 그나저나 설마 이대로 불이 나는 건 아니겠지? 아, 불나면 옆차랑 다 보상해줘야 하나? 


"화장실 가야 하니까, 일단 들어가자!"

"아니, 차에 불나면 어떻게 하고 들어가?"

"시동 껐잖아. 괜찮아."

"시동 끄면 괜찮은 거야?"

"괜찮지!"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집 안으로 달려갔다. 나는 한참을 서성이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후 오랫동안 차에서 불이 나면 어떻게 하면 될지, 보험회사에서 처리를 해주는지, 해준다면 어디까지 해주는지(내차? 옆차? 혹시 아파트까지 번지면 아파트 피해까지 커버해 주는지!) 걱정했다. 엄마와 함께 운전을 하고, 베테랑 운전자인 엄마가 곁에 있어도 이렇게 고민을 하는데, 혼자 운전을 했다가 이런 일을 겪으면 얼마나 머리를 쥐어뜯었을지 생각했다. 참, 다행이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차에선 불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나와 운전을 하면 화장실로 달려가는 버릇이 생겼다. 하아.









** 꽤 오래전에 써둔 글인데 공개가 되어 있지 않은 걸 발견하고 뒤늦게 올립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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