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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Mar 31. 2024

운전 253일. 셀프 세차장을 가다.

세차를 배웠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지만


   

요정 할머니의 손짓 한 번에 묶은 때 가득했던 잿빛 신데렐라가 한 번에 공주님이 되었어요-라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긴 어둠을 단숨에 극복한다는 것에서 어떤 희열을 느낀다고 할까? 아무리 강력한 적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다니! 그래서 같은 계통(?)인 엉망인 집을 열심히 정리했더니 새집이 되었다던가 늘 꼴찌였지만 은거 기인을 만나 초절정고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좋아한다.

     

어쩌면 이렇게 모자란 나도 기연만 만난다면 꽤 괜찮은 사람으로 레벨업 할 수 있을지도?!    

 

그래서 운전을 시작한 이후, 나는 나의 실력을 단숨에 업그레이드 시켜 줄 수 있는 수업, 혹은 강사와의 만남을 꿈꿔왔다. 동시에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은 차를 새것처럼 만들어줄 세차 장인과 만남도.     


오빠의 차는 그다지 더럽진 않았지만 10년 넘게 탄 차인만큼 세월의 흔적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나는 ‘엄청난 세차’를 하고 나면 ‘새로운 차’로 탄생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세차 전문가’를 찾는 일에 몰두했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이 ‘디테일링 세차’. 하지만 디테일링 세차는 가격이 엄청 비싼 데다 근처에 취급하는 곳이 없어 포기해야 했다. 엄마는 ‘그냥 타자’고 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집 근처 세차장 중 가장 평이 좋은 곳에서 세차를 했다. 두근두근.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심지어 가격은 두 배를 주었는데...  

   

그 후 엄마는 세차 트라우마에 빠져 버렸고(세차비 또 사기당할까 봐 가기 무섭다!), 나는 여전히 ‘새 차 같은 세차’를 바라면서도 눈탱이 맞은 경험에 몸을 사리게 되었다. (두 배를 불렀던 그곳은 전화 상담에서는 일반가격을 불렀다.)     


분노를 담아 이 사건을 주변에 털어놓자 사람들은 그 작은 차를 왜 맡기냐며 그냥 셀프 세차를 하라고 했다. 때마침 최근 집 근처에 셀프 세차장이 새로 생긴 상황이었다. 셀프 세차를 하기엔 최적인 상황! 하지만 말이 쉽지. 한 번도 안 해 본 것을 해보기가 너무 두려웠다. 모르는 걸 알아야 질문이라도 하는데,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유튜브를 살펴보기도 했지만 감이 오지 않았다.     


딱 한 번만 해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셀프 세차를 하면 된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에게 ‘그럼 갈 때 나 좀 데리고 가라’고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그리고 ‘그래, 같이 가자!’라고 대답은 들었지만, 실제로 나를 데리고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흑….     


시간은 흐르고 다시 차에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극도로 더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차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났으니 한 번쯤 해줄 때가 된 것 같았다. 여전히 환골탈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열심히 검색한 끝에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평 좋은 세차장을 발견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세차하러 그렇게 멀리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음. 내가 좀 유별난 것일까?     


결국, 우리는 마을에 있는 출장 세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 한 번은 이용해 봐야, 좋은지 나쁜지 알지! 그런데 이것도 예약이 얼마나 힘들던지! 몇 번이나 예약이 가득 차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엄마가 말했다.     


“출장 세차 예약한 곳이 참 양심적이더라. 오늘 오후에 비 예보 있는데 할 거냐고 묻더라고. 그렇지만 한다고 했어.”

“....??”     


아니 비 예보가 있는데 세차를 맡겼다고?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예약은 한 상태. 나는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물었다. 비 온다는 데 예약을 했다고? 내 질문에 엄마가 대답했다.     


“계속 미뤄서 못했잖아. 이번에 해야지.”   

  

그 대답을 통해 깨달았다. 엄마에게 세차란 차가 깨끗해진다는 의미 그 이상으로 ‘그냥 해야 하는 어떤 것’의 의미라는 것을…. 사실 그것보단 ‘내가 하자고 하니까 그냥 하자’의 마음이었던 것 같지만…. 내가 너무 세차세차 했던 걸까? 엄마에게 스트레스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세차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청소에 있어서 나는 보이지 않는 곳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보이는 곳은 다른 사람도 닦을 수 있으니까, 안 보이는 곳을 닦는 게 진짜 관심(정성)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세차도 보이는 곳만 닦았을 뿐이었다. 게다가 세차를 끝내고 두 시간 뒤에 비가 왔다. 아. 안녕 내 돈….     


그날 이후 며칠 미세 먼지가 심한 날이 며칠 이어지고, 보슬비가 내렸다. 앞쪽은 그럭저럭 참을만한데 뒷유리 쪽이 엉망진창이었다. 다시 세차를 맡기기엔 돈이 아깝고, 이대로 타고 다니기엔 부끄럽고…. 어쩌지?     


그러던 중, 집에 일이 생겨서 갑자기 오빠가 내려왔다. 간단한 근황 토크를 나누다가 오빠는 내려왔으니 세차나 좀 해야겠다고 했다.     


“세차? 셀프로 할 거야?”

“당연하지. 이 근처에 셀프 세차장 있지?”

“어. 새로 생겼는데, 사람들이 괜찮다던데? 아무튼, 셀프 셀차할 거라고? 그럼 나도 데려가! 나 할 줄 몰라서 지금까지 손 세차만 맡겼어.”

“그 작은 차를 손세차 맡겼다고?”

“어. 그러니까 이 기회에 나 알려줘. 배우자!”

“콜!”     


드디어 셀프 세차장에 가보는구나! 머릿속에는 세차장에서 몇 시간씩 보냈다는 주변인들의 이야기와 인터넷에서 지나가듯 보았던 셀프세차 꿀팁들이 정신없이 머릿속을 오갔다. 이제 은거 기인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내가 바로 은거 고수가 될 테니까! 우하하하! 머릿속은 꽃밭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내가 외출을 한 사이, 오빠는 혼자 자신의 세차를 마치고 왔다.     


“뭔데! 나 가르쳐 준다며!”     


분노한 나에게 오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가면 되잖아. 내 차는 했으니까 네 차로 가자.”     


어쩐 일이지? 세차장을 한번 다녀왔으니 분명히 안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오빠는 군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생각도 못 한 일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는 내게 잘된 일이었다. 원래는 오빠 차를 세차하는 걸 옆에서 보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직접 실습도 하게 되었으니까, 훨씬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이래서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는 건가?


그렇게 나는 오빠와 함께 인생 처음으로 셀프 세차장에 향했다.      


우리가 방문한 셀프 세차장은 몇 개월 전에 동네에 생긴, 동선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집에서 차로 짧으면 1분(..), 멀면 3분(..) 정도 위치에 있는 신생 세차장이다. 동시에 입장 가능한 차는 4대. 오빠가 세차장에 들어서며 말했다.


“아까는 한 대도 없더니 지금은 좀 들어왔네. 일단, 빈자리에 주차해.”

“차는 파킹으로 둬?”     


주유소 자동세차인가 어딘가는 세차 시 중립으로 둔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도 같아서 물으니 오빠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어, 하고 대답했다.     


“원래는 저기 기계 가서 카드 만들고 충전하고 해야 하는데, 카드는 내가 만든 거 쓰면 되고. 충전이나 한 만 원만 하고 와.”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오만 원짜리 한 장. 어디에도 지폐 교환기는 보이지 않았다. 오빠는 조금 전까지 2층은 문을 닫고 있었다고 했지만 다행히 내가 방문한 시간에는 2층 문이 열려있었다. 게다가 정말 다행으로 2층 사장님이 세차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분이었다! 그에게 말해 오만 원짜리를 교환한 후,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충전 다 했어!”

“그럼 보자…. 넌 어려운 거 하지 말고 오면 그냥 A 코스로 해.”  

   

A 코스는 고압수를 뿌리는 것과 폼을 뿌리는 것이 자동으로 진행되는 코스였다. 나는 그냥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거참 신기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 코스를 누르는데 문득 화면에 떠 있는 기본요금 3,000원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기본요금은 뭔데? 여기에 차 대면 내는 거야? 파킹비가 3천 원?”

“세차장 사장님이 그 정도로 나쁜 분은 아닐 것 같지 않니? 그냥 주차비로만 3천 원 받으면 너무한 거 아닐까?”     


그런가? 오빠는 한숨을 깊게 쉬고는 버튼을 눌렀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도 이 기본요금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 언젠가는 이해가 되겠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오빠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차 위로 자동으로 물이 뿌려지고 거품이 뿌려졌다. 우왕, 신기하다.      


“그리고 이제 미트로 차를 닦아야 해.”

“때 미는 것처럼?”

“어. 근데 넌 미트가 없잖아? 그럼 여기에 구비되어 있는 솔로 그냥 문질러.”

“나 이거는 알아! 사람들이 이거 기스 많이 난다고, 자기 것 들고 다니면서 쓰라던데?”

“그렇지. 하지만 네 차는 괜찮아. 이렇게 해도.”

“창문이나 유리도 그냥 다 똑같이 문질러?”

“원래는 따로 하는데, 네 차는 같이 해도 괜찮아.”     


아까부터 계속 네 차는 괜찮다니! 차 너무 차별대우하는 거 아니오! 전 차주 너무하네! 나는 속으로만 그렇게 말하며 열심히 차 표면을 문질렀다.     


“다 문질렀지? 그럼 이제 고압수로 쏘아.”

     

오빠는 그렇게 말하고 버튼을 누르고 고압수를 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게 고압수 손잡이를 넘겼다.     


“네가 해라.”

     

고압수는 생각보다 셌다. 힘이 없는 나는 조금만 딴생각하면 손잡이에서 힘이 빠져서 물이 졸졸 흘러서 신경 써서 손잡이를 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만 빼면 할만했다. 셀프세차는 시간과 싸움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순식간에 물이 나왔다가 멈출지 알았다. 그래서 짧은 시간 내에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급해서 더욱 걱정스러웠었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걱정했던 것보단 훨씬 할만했다.     


“물 다 쐈지? 그럼 건조시키러 가자.”     


세차장이 넓지 않아서 차를 아주 조금만 앞으로 움직이니 건조 장소에 도착했다.     


“이제 닦아.”

“아, 드라이빙 타월인가 그거?”

“어, 근데 넌 없으니까, 내가 쓰던 거 이걸로 대충 닦아.”

“방향이나 이런 거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창문도 그냥 닦아?”

“원래는 있는데, 네 차는 그냥 똑같이 해도 돼.”     

나는 냉정한 전 차주를 (속으로) 욕하며 열심히 박박 차를 문질렀다. 열심히 닦고 있는데 오빠가 말했다.     

“야. 대충 닦지 말고. 문도 열어서 구석구석 닦아.”

“닦아도 되는 거지? 그렇지 않아도 나 그게 신경 쓰였어. 세차 맡겨도 문틈에 얼룩 같은 건 안 지워주더라고! 그래서 안 지워지는 거로 생각했는데!”

“힘주면 지워져.”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차 문을 열고 구석 부분을 힘껏 문질렀다. 그러자 검은 얼룩이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우와! 나는 예전부터 매번 그런 건 아니고아주 가끔상태 좋을 때만(?) 그렇지만 이런 디테일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일이라거나, 오래된 조각상 사이에 낀 먼지를 빼는 일이라거나. 쾌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렇게 열심히 닦고 있는데 오빠가 말했다.     


“대충 닦아. 네 차는 그래도 돼.”

“아, 진짜 너무 하네!”

“나 너무 힘들어. 세차장 하루에 두 번 왔단 말이야.”     


그렇지만 그건 오빠가 내 약속을 어기고 먼저 왔기 때문이잖아! 그렇게 반박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침묵을 택했다. 일단은 지금은 오빠가 선생님이었다. 가르침을 주는데 토를 달 수는 없지. 지금은 내가 아쉬운 순간이니까!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난 실내 세차도 해보고 싶은데.”

“여기 에어건이랑 청소기 있네. 이걸로 먼지를 붙어내고 빨아들이면서 하면 되는 거야.”

“오홍. 해볼까? 이것도 돈 드나?”

“당연하지?”

“... 그럼 안 할래.”     


세차 맡긴 지 2주도 안 된 상황이었다. 차 내부는 그렇게 더럽지 않았다. 거슬리는 건, 내게 거슬리는 건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예를 들면 환풍기 틈새의 먼지라던가….     


“그럼 집에 가자.”

“아, 나 더 닦고 싶은데”

“담에 너 혼자 와서 닦아.”

“쳇. 오키.”     


그렇게 내 첫 셀프 세차는 모든 과정이 20분도 걸리지 않아서 끝났다. 사용한 금액은 1만 원이 안 된다. 하지만 외장의 몸 상태는 손 세차를 맡겼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건 네 차라서 그래!라고 오빠는 말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건 네 차라서 그래!라고 오빠가 또 말했다. 그걸 몰라서 내가 지금까지 그 돈을 썼다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도 이제라도 안 것이 어딘가. 몰랐다면 계속 그 돈을 썼어야 했을 텐데. 아니면 차가 더럽다고 스트레스만 받았을 거고. 이 정도 금액과 시간이면 신경 쓰일 때면 한 번씩 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취미로 세차하는 것도 괜찮을 듯?”     


몸을 움직이느라 머리는 비울 수 있고, 내가 하는 만큼 결과물이 나오고, 결과물을 즉각 확인할 수 있는 취미라니, 정말 좋은 취미 아닌가?  

   

“그것도 좋은 취미지. 그렇지만 네 차라서 간단하게 끝난 거야. 원래 세차의 세계는 엄청 심오해.”  

   

오빠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잘났다, 진짜.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깨끗해진 차 면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간단한 걸, 지금까지 두렵다고 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고 나니 정말 별거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이라고, 낯설다고 하지 않았을 뿐…. 문득 내 인생에서도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그 생각을 했을 뿐인데 떠오르는 선택들이 많았다. 과거는 흘러갔고, 내게 남은 것은 미래뿐.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내게 많이 생기겠지. 처음이니까, 낯서니까 두려워서 포기하는 일들. 한 번만 해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발만 동동 굴리는 일들. 이번 경험이 그 모든 일을 해결해주진 못하겠지.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나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신데렐라 이야기 속 마법사가 된 거와 같겠지. 그러나 나는 마법사도 신데렐라도 아니니까…. 그저 이번 일이 다음에 아주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를,    

 

다음엔 혼자 셀프 세차장에 가봐야지. 그리고 그다음엔 주유소에서 하는 세차장을 꼭 가봐야겠다. 그리고 엔진룸 청소 너무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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