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gifilm 박경목 Sep 24. 2023

단편소설

쥐가 나타났다. 어제 저녁 방송이 끝나고 나서 시청자 게시판에서 디제이의 멘트 아래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의견이 올라왔다. 엔지니어와 작가인 희연과 함께 방송을 다시 한 번 들어보았다. 디제이의 멘트가 비는 중간 중간에 약하게 잡음이 들렸다. 쥐 울음소리다. 내가 쥐 소리라고 하자 엔지니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방송국에 쥐라니. 전선이 낡아서 잡음이 끼어든 걸 거 에요. 제가 점검 해볼게요. 아마 피디님이 결혼을 얼마 앞두고 있어서 예민해져서 그런 거 에요. 


창 밖에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파업은 벌써 육 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출근할 때 검게 그을린 동료들의 얼굴과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 업무에 복귀하는 나를 동료들은 이해한다며 어깨를 다독여 줬다. 회사 측의 회유가 있기도 했지만 윤정이 어머니를 앞세우고 나타나 설득을 벌였다. 결혼을 앞두고 이게 뭐하는 거냐. 이미 다른 사람들도 복귀를 하고 있는 마당에 마지막에 남으면 찍혀서 잘린다는 논리였다. 어쩔 수 없이 방송에 복귀한 지 이 주가 되었지만, 인력들이 부족한 탓에 방송 사고는 계속 일어났다. 엔지니어도 밖의 동료들이 신경이 쓰이는 지 창 밖을 내다봤다.


-저도 이쪽 분야는 잘 몰라서요. 여하튼 뭐든지 해봐야죠.

윤정에게 전화가 왔다. 스튜디오 안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파업 아직도 해?

-넌 뉴스도 안보냐?

-언제까지 할 거래? 이러다가 결혼식 할 때까지 안 끝나는 거 아냐? 

-그게 지금 할 소리냐?

-그럼 몇 명이나 올 수 있는 거지? 오빠가 그 동안 뿌린 돈이 얼만데. 파업하고 있더라도 축의금은 모아서 주겠지? 청첩장은 돌렸어?

윤정은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점은 어머니와 많이 닮았다.

-피디님 청첩장 주세요.

-괜찮아.

-저라도 갈게요.

가방에서 윤정이 쑤셔 넣어준 청첩장을 하나 꺼내서 엔지니어에게 건넨다. 엔지니어는 청첩장을 받아서 희연에게 건네고 다시 하나를 더 받으려고 기다린다. 최악이다. 

-김 작가도 가야죠. 우린 한 팀인데.

희연은 청첩장을 받아들고 내용물을 보고 있다. 울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희연은 청첩장을 들고 희미하게 웃었다.

-몇 개 줘 보세요. 제가 친한 사람 몇 명에게 줄게요. 피디님 너무 위축되지 마세요. 누구라도 방송은 해야 하잖아요. 잡음 문제는 제가 처리할 테니 결혼준비만 신경 쓰세요.


엔지니어가 나가고 난 뒤에 다시 한 번 찬찬히 방송을 들어보았다. 이번에는 예전보다 더 뚜렷하고 크게 울음소리가 들렸고 바스락 거리며 돌아다니는 쥐의 소리도 들렸다. 얼마나 큰 놈일까? 어디에 있는 걸까? 대체 어떻게 이리로 들어온 걸까? 왜 하필 내 스튜디오에 들어온 걸까? 희연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며 쥐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런 거 같기도 하고...희연은 주위에 사람이 있나 살펴보고 조용히 말했다. 병원가야 돼요. 그래...병원.


아이는 건강하네요. 조금씩 형체가 보이시죠? 푸근한 인상의 산부인과 의사는 희연과 내게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누워서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생명을 보던 희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손을 잡았다. 괜찮아. 잘할게. 아기가 엄마 닮아서 예쁘게 생겼네요. 희연은 의사의 말에 눈물을 흘리다가 웃음을 짓는다. 저렇게 작은 덩어리를 보고 이쁘게 생겼다니. 화면에 보이는 회색의 시커먼 덩어리. 쥐처럼 생겼다. 

내가 쥐를 처음으로 가까이 보게 된 것은 9살 때 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삐걱거리는 나무 대문을 밀자 잠겨 있었다. 문을 잡아당기자 조그마한 틈이 생기고 아홉 살의 작은 몸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도케다시로 되어있는 현관에 신발을 벗고 올라서자 욕을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지만 난 그 목소리가 아버지의 부인 이라는 걸 알았다. 


아버지의 부인은 안방의 물건을 집어던졌다. 벽에 부딪히고 부숴 지지 않은 무언가가 방안에 뒹구는 소리가 났다. 나무 살에 창호지가 붙어있는 여닫이 문 틈 사이로 아버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어머니는 앉아서 벽을 보고 있었다. 부수려고 해도 부술 게 없는 집이었다. 

아버지는 낮에 집에 올 뿐 밤에 잠을 자고 간 적은 없었다. 그 여자의 자신감에 찬 목소리를 들으면서 홍길동이 누군지도 몰랐으면서 아버지와 그 여자, 그리고 엄마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놀이터에 가야지 라고 생각하고 나가려 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안방 앞에 있는 냉장고 뒤 였다. 냉장고 뒤에서 회색의 시커먼 덩어리에 옅은 붉은 색의 발을 가진 놈이 삐져나왔다. 놈은 머리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보며 안방문의 창살을 버팀목으로 해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징그럽게 생긴 짙은 회색 털과 붉은 눈과 긴 꼬리가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엄마, 아버지...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다. 쥐를 처음 보는 건데 그 자그마한 게 왜 그리 무서웠는지. 놈이 바들바들 떨며 아주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내가 움직이면 놈이 내게 달려들까 두려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얼어 있었다. 불과 몇 초 안되는 시간이지만 몇 시간이나 흐른 것처럼 나는 숨이 막혀왔다. 위로, 위로 기어오르던 놈은 앞발을 내밀어 윗 살을 잡으려다 미끄러져 마루로 떨어졌다. 너무 놀라 숨이 터져 나왔고 놈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부리나케 내 앞으로 달려왔다. 마루 난간을 넘어 현관으로 떨어져 나온 놈은 내 발 밑을 스쳐갔다. 그리고 이내 현관의 작은 틈으로 기어들어갔다. 

안방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밖을 내다봤다. 아버지의 아내도 나를 보았고 그 여자는 손에 들었던 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 얼굴은 얼어 있었고 여자는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여자는 안방을 나와서 나를 지나고 현관을 지나서 나무 대문을 당기고 나갔다. 여자의 두툼한 궁둥이에 쥐꼬리가 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낚싯줄에 낚인 붕어 마냥 여자와 거리를 두고 따라 나갔다. 아홉 살의 나는 엄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조금 전에 내 발밑을 지나갔던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미웠고 어머니를 원망했었다. 가족 사항 적는 게 반성문 쓰는 것 보다 힘들었고, 홍길동전을 국어책에서 보는 게 괴로웠다. 


윤정은 나의 가족사를 듣고도 나와 결혼 하겠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언니의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윤정은 철이 들면서부터 빨리 결혼하고 싶어 했었다. 동물병원 수의사 였던 그녀는 첫 월급으로 식기세트를 사고 두 번째 월급으로 장식장을 채울 세계문학전집을 샀다. 방송국에 피디로 입사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윤정의 집에 인사를 갔다. 윤정은 나의 가족사는 자기 집에 알리지 말자고 했다. 

윤정의 집에 다녀온 일주일 후, 내가 일하는 프로그램에 희연이 작가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제3세계 음악을 많이 알았다. 방송사 시험 과목 외에 방송에 관해 아는 게 없었던 나는 그녀가 선곡한 음악과 그녀가 쓰는 멘트에 반했다. 그녀와 밤새 프로그램을 바꾸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행복했다. 가구라고는 앉은뱅이책상 하나 밖에 없는 희연의 자취방에서 따뜻한 아랫목과 두툼한 이불이 나의 안식처였다. 윤정은 아이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가질 지를 계획하는 여자였고 희연은 나의 무책임함을 물리칠 줄 도 모르는 여자였다.


2주전, 희연의 임신을 알고 윤정에게 헤어지자고 말을 했다. 모두 퇴근한 시간 윤정은 병원에서 작고 하얀색의 애완용 생쥐를 손에 쥐고 주사를 놓고 있었다. 다른 여자가 있다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윤정이 생쥐를 손에 쥐고 터트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윤정은 내게 자신이 어떻게 결혼을 준비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윤정은 생쥐에게 입을 맞추고 쓰다듬고 둥지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희연을 정리하라고 했다. 나는 윤정에게 매달렸고 윤정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윤정은 자기 손에 잡혀있는 생쥐에게 하듯이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엔지니어의 연락을 받고 방송국으로 혼자 돌아왔다. 스튜디오의 낡은 케이블을 교체하였다. 방송 테스트를 해봐야 되니 들어오라고 하였다. 엔지니어는 마이크와 음악을 테스트 하고, 사운드 세팅을 달리하며 소리를 들려주었다. 역시 케이블 문제였나 보다. 잡음은 들리지 않았다. 엔지니어가 체크를 받고 퇴근을 했다. 콘솔 테이블에 테스트를 위한 시디가 한 장 있었다. 해리스 알렉시우. 희연이 처음 내게 들려주었던 시디였다. 시디를 틀자 제사장과 같은 음색의 소리가 스튜디오 안에 퍼진다. 내게 안식을 준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윤정에게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해야겠다. 더 이상 끌려갈 수 없다. 윤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정은 친구를 만나고 있다며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시디에서 음악이 튀어서 노래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시디를 꺼내서 케이스에 넣는데 찌직 하는 소리가 난다. 전선이 또 불량인가? 콘솔에서 볼륨을 낮춘다. 전선에서 나는 잡음 소리는 멈추었는데 다시 찌직 하는 소리가 난다. 쥐의 울음소리다. 어디지? 콘솔박스 아래를 살펴보았다.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콘솔박스 아래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다. 저 어둠 속에서 쥐가 툭하고 튀어나올 것 같다. 엔지니어에게 전화를 걸어 계속 쥐 울음소리가 난다고 하자 엔지니어는 출근하면 방역회사에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쮜직 쮜직...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저 빌어먹을 쥐새끼. 잡아버리겠어. 후렛쉬를 꺼내서 안을 비췄다. 잘 보이지 않는 선 사이로 기다란 빗자루의 손잡이로 쑤셔 보았다. 죽어. 죽어. 놈은 빗자루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찍찍 대며 울고 있다. 윤정이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내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뭐하는 거야? 전화도 안 받고?

-어떻게 여기 있는 줄 알았어?

-음악이 들렸어. 오빠가 있을 데가 뻔하지. 뭐 하고 있는 거야?

-스튜디오에 쥐가 있어서 잡으려고.

-여기에 무슨 쥐가 있다고. 나오면 오빠가 잡을 수나 있겠어?

나는 빗자루를 다시 들어 어두운 그 곳을 쑤셔댔다. 무언가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 번 힘차게 빗자루를 쑤셔 넣자 어둠속에서 후다닥 거리며 시커먼 쥐가 내 눈앞으로 튀어 나왔다. 내 얼굴을 밟고 머리 위로 올라가 내 등을 타고 지나갔다. 쥐가 스튜디오 안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윤정은 아무런 미동도 안하고 있으면서 나와 쥐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었다.

-잡아봐. 어서.

나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빗자루를 고쳐 잡고 쥐를 때려잡으려고 했다. 빗자루를 내려치려는 마음과 징그럽다는 마음이 부딪히고 있었다. 내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쥐는 미친 듯이 스튜디오 안을 뛰어다니다가 내 발 밑으로 달려왔다. 내 발 위로 올라와서 바지를 붙잡고 위로 올라오려고 했다. 나는 놀라서 몸을 흔들어서 쥐를 떼어냈다. 쥐가 바닥에 다시 떨어지자마자 윤정이 콘솔에 놓여있던 해리스 알렉시우 시디를 쥐를 향해 던졌고 시디 케이스의 뾰족한 모서리는 쥐의 목에 박혔다. 쥐는 그 자리에서 부들부들 떨고는 축 늘어졌다. 바닥에는 쥐의 피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윤정의 질문을 알아차리고 내가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조금 전에 그 여자 만나고 왔어. 산부인과를 소개시켜줬어. 그런 일이 있었으면 미리 나와 상의를 했어야지. 그 여자와는 이야기가 잘 되었어. 다음 주부터 여기 출근 안 할 거야.

희연에게 연락을 하려고 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당신 감당할 수 있겠어? 일주일 남았어. 회사와 당신의 가족에게 어떻게 이야기 할 건데? 당신의 큰 집 식구들은 당신을 뭐라고 할까? 당신 어머니가 원하는 거 그거 다 무시할 수 있겠어? 당신이 원하는 게 여기서 그만 두는 거라면 그래 마음대로 해. 그렇게 해.

전화가 울렸다. 희연에게서 온 전화였다.

-받아봐.

전화벨은 계속 울리고 있었고 난 눈앞에 죽어있는 쥐를 어떻게 치워야 하나만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후 결혼식이 열렸다. 아버지는 어색하게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기뻐서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의 아내는 나를 대견스러워 하고 있었다. 방송에 복귀한 사람들 몇 명이 얼굴만 내비치고 가버렸다. 친구들은 윤정의 집과 그녀를 보고 결혼 잘 했다며 부럽다고 했다. 그리고... 희연은 윤정의 말처럼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녀의 자취방은 비워 있었고 그녀에게 연락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내가 입장을 하고 사회자가 신부 입장을 말했다. 비디오카메라의 라이트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비디오카메라가 비키자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잡고 나에게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얀 웨딩드레스에 얼굴은 커튼처럼 가리고 있었다. 신부의 아버지는 내게 신부를 넘겨주었다. 웨딩도우미가 신부의 얼굴에 있는 커튼을 올렸다. 거기에는 아주 커다란 쥐의 얼굴이 있었다.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쥐. 얼굴에도 짙은 회색의 털과 붉은 눈과 뾰족한 앞니를 드러낸 쥐가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몸이 얼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주례가 신부에게 반지를 끼우라고 하였다. 반지를 끼우려고 손을 잡는데 하얀 살결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쥐의 발가락이었다. 반지를 끼우자 주례는 내게 신부와 평생을 함께 할 서약을 하라고 하였다. 목구멍에 피 냄새가 쳐 올라와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혀오고 심장을 커다란 쥐가 파먹고 있는 것 같았다. 하객이 앉아있는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아버지가 낚싯줄에 묶여 있었고 아버지의 아내가 아버지를 줄로 당기고 있었고 하객 자리에는 작고 하얀 생쥐 들이 찍찍 거리며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례는 내게 계속 대답을 묻는다. 함께 하겠습니까? 하겠습니까? 까? 까? 나는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드디어 막혀있던 목구멍을 뚫고 내 입으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찍.찍"

작가의 이전글 미식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