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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gifilm 박경목 Aug 24. 2023

1시간 배워서 영화 만들기

02 - 연기

내 이름은 김은희다. 유명한 드라마 작가의 이름과 같다.  구미시 모 학교의 도서관 사서로 15년째 근무중이다. 

두 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연기를 알려준다고 했다. 

연기를 어떻게 한 시간 만에 가르쳐준다는 거지? 그게 가능한가?

오늘은 수업을 빠지고 싶었다. 내게 연기를 시키면 어떡하지?

남 앞에 나가서 남들이 날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몸이 굳어진다. 

게다가 사투리를 쓰고, 내 목소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킬 것 같으면 도망치리라 마음을 먹었다.

수업에 갔더니,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왔다는 분은 나오지 않았다.


박감독은 집에 가서 뭘 쓸지 생각해봤냐는 이야기를 했다.

각자, 어제 했던 이야기에서 조금씩 진전된 이야기를 했다.

다음주 수업 시간에 오분 이상의 시나리오를 무조건 내라고 한다. 

못 써도 괜찮고, 말이 안되어도 괜찮다. 무조건 다섯 페이지 이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했다.


“오늘은 연기에 대해서 수업을 하겠습니다. 여기서 연기를 해보신 분 있으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럼 연기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거나, 연기를 해보고 싶으신 분이 있으세요?”

모두들 눈치를 보고 서로를 보고 확인하며 수줍은 웃음을 짓는다. 

박준철 씨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죽기 전에 연극 한 편 올려서 주연을 해보고 싶습니다. 어디가서 연기를 배울 수도 없고.”

박감독. “하면 돼죠. 이번 영화 부터 주연을 하시면 됩니다. 영화를 만들고 강의하면서 생각하게 된게 대본을 쓰고, 연출 하고, 연기하는 것이 모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접근법이 모두 똑같습니다. 한 시간 만에 여러분들도 연기를 잘 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모두들 몸을 고추 세우고 박감독이 약 파는 것을 흥미롭게 보기 시작했다. 눈들이 빛난다.


박감독. “원래 배우하고 싶은 데 연기를 못하는 사람들이 감독을 하고, 감독을 하고 싶은데 못하는 사람이 작가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연기를 해보고 싶었고, 출연도 했어요. 괴물 디브이디 보면 삭제된 씬에 저 나옵니다. 어깨너머 연인에도 나오고 몇 편의 독립영화에도 나옵니다. 저 역시 쑥스러운데 연기를 하고 제가 나온 걸 보면 쑥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나도 손은 안 들었지만, 연기 해보고 싶다. 

박감독. “저는 영화아카데미 에서 영화를 찍을 때 황정민 배우와 작업했었고, 독립영화를 하면서 작업했던 김영재 배우는 재벌집 막내 아들 송중기의 아버지로 나왔어요. 최근에는 더 글로리 하도영으로 나오는 정성일 배우와 작업했습니다. 대학로에서 연극하던 설경구와 이문식, 이정은 배우가 술을 마시고 작품에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연기자들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워크샵도 참여하고, 배우들과 연기에 대해서 물어보고, 제 졸업논문도 연기연출에 대한 부분 이었습니다. 연출자로서 가장 큰 고민이 어떻게 배우에게 디렉션을 주느냐, 혹은 그 전에 어떤 연기가 엔지인지 오케인지 아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 고민 끝에 저 만의 연출론을 만들고, 저 만의 배우 트레이닝, 저 만의 연출자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빈손연습

“간단한 것 부터 하겠습니다. 선생님 한 분만 나와주세요. 권삼석 선생님. 드시고 있던 생수병을 들고 나와주세요. ”

내 또래의 여성분이 앞으로 나왔다. 

“이번에 할 것은 빈손 연습 입니다. 선생님이 먼저 물을 마셔 보시고, 그 손 모양을 잘 기억해두세요. 그리고 이 생수병을 치우고 난 뒤 선생님이 좀 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이 손 모양과 먹는 모양을 해주세요. 잘 기억을 하셨다가. 그리고 여기 앉아 계시는 선생님들은 그것을 잘 보고 계셨다가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다른가를 찾아보시는 겁니다.”


권삼석은 쑥스러운지 쭈볏거리다가 생수병을 들어서 입에 대지 않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마시고 난 후 물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빈 손으로 마시는 시늉을 내었다. 권삼석이 손을 제자리로 다시 가져가자.

박감독. “어떤 것이 달랐나요?”

“손에 생수병이 안 들고 있는 것 같았어요.”

박감독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아무 말이 없었다.

박감독. “감독들이 배우에게 연기 디렉션을 줄 때 필요한 것은 관찰력 입니다. 배우들이 어떤 지점이 잘못되었는지를 연출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이렇게 모호하게 할 때도 있지만, 행동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그 행동이 있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는 게 연출, 그리고 연기의 시작 입니다. 

이 빈손 연습은 연출자와 배우에게 관찰을 알려줍니다. 행동을 정확하게 하면 감정이 생긴다. 라는 이론으로 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슬프면 울지만, 정확하게 울면 슬픈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관객도 그것을 보면 슬프다고 감정이 생깁니다. 이번에 선생님은 일단 첫 번째 병을 잡을 때 너무 손이 작았습니다. 이렇게 작게 잡은 손에 병이 들어가지 않겠죠?”

박감독은 자신이 작게 잡은 손을 보여준다. 

박감독. “그리고 선생님이 드실 때 손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병 입구가 입에 닿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보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연출이고, 그것을 정확하게 구현하려고 하는 것이 연기입니다. 연기는 모방입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권삼석은 다시 물을 마시고, 빈손으로 물을 마시는 마임 연기를 하였다. 

이번에는 저번 보다는 손 모양이 병을 잡을 수 있는 크기로 벌렸다. 그리고, 물을 마셨다. 

생각을 하고 보니까 뭐가 다른지 볼 수 있었다.

박감독. “어떤게 보이시나요?”

김미자. “물을 마실 때 고개를 드는 각도가 달랐습니다.”

박감독. “어떻게 달랐나요?”

김미자. “진짜 물을 마실 때는 고개를 젖혔는데 지금은 고개를 젖히지 않았습니다.”

박감독. “좋습니다. 또 다른 걸 보신 분은?”

박준철. “손에 무게감이 없었습니다. 속도가 달랐습니다.”

여러 명이 이제는 자기가 본 것을 이야기 했다. 

박감독. “이제 많이 볼 줄 아시겠죠? 이런 훈련을 통해서 배우와 연출 모두 관찰하는 능력을 키웁니다. 권삼석 선생님도 물병을 들어보세요. “

권삼석은 물병을 들어본다.

박감독. “다른 선생님도 자리에서 물병이나 다른 것을 들어보세요. 자신의 근육이 버티고 있는 힘을 느끼실 수 있나요? 어떤 근육에 어떤 자극이 있는지 느껴지시나요. 이 근육의 느낌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그 상상을 가지고 물병을 내려놓고, 눈 앞에 그게 있는 것 처럼 근육에 자극을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물을 마셔 보세요.”

수업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천천히 물을 마시는 것 처럼 빈 손으로 병을 들어 입에 물을 넣었다.

순간, 눈 앞에 빈 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병이 살짝 보이는 듯 했다. 그 병을 들고 물을 마시는 것 처럼 고개를 젖혔다.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박감독. “이걸 매일 십분 정도 쉬는 시간에 해보세요. 어렵지 않죠. 아니면, 다른 걸 하다가 멈춰서 내 행동을 관찰해보세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근육을 쓰고 움직이는 지 보세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십분간 쉬었다가 다음 수업이 이어졌다. 쉬는 동안 물을 마시면서, 손을 씻으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빈손 연습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있어서 연습은 하지 못했지만, 내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있었다. 구석에서 김미자와 권삼석은 혼자서 빈손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박감독. “이번에는 김미자 선생님과 김은희 선생님 나와 주세요.”

불의의 일격 이었다. 안 나가려고 주뼛거리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박감독은 계속 보면서 손으로 나오라고 했다.

다른 분들이 박수를 쳐서 어쩔 수 없이 나갔다.

박감독. “이번에 할 것은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입니다. 선생님들은 모두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라는 말을 했을 겁니다. 그걸 기억해서 상상하면서 말하는 겁니다. 다른 것들은 다 빼고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이 단어만으로 합니다. 엄마, 내가 화내서 미안해. 이지만 여기서는 앞의 말을 생략하고 미안해. 만 하는 겁니다. 앞에 있는 분이 엄마가 될 수도 있고, 동생이 될 수도 있고, 남편이 될 수도 있고, 자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 상황을 기억해서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한 분이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중 하나를 하면 다른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기억나는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그래서 앞에 나에게 말한 그 사람이 누구로 보이고 어떤 상황을 생각나게 하는지 집중해주세요. 자 시작해주세요.”

나는 멈춰서 말을 못했다. 그러자 김미자가 먼저

고마워. 라고 했다.

나는 고마워 라고 하고

미안해 라고 하길래 고마워 라고 했다.

몇 번 그게 왔다 갔다 하자 박감독이 멈추게 했다.

박감독.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에서 핵심은 상대방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것 입니다. 잘 들어주세요. 듣는다는 것은 저 사람의 말이 나에게 어떤 부분을 건드리는 지 마음을 열어놓고 완전히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듣는다는 것 입니다. 영화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듣는 연기 입니다. 저 사람의 연기가 나에게 어떤 자극을 주는지에 대해 온 신경을 예민하게 열어놓고 듣습니다. 그리고, 그 자극이 내 안에서 어떤 충동을 만들어 낼 때 까지 기다려주세요. 충동이 없으면 말하지 마세요. 충동이 있을 때만 말 하세요.”

그리고 박감독은 날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권삼석을 불러냈다.

박감독. “김은희 선생님은 지금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방어막들이 있어서 자기 자신을 잘 보이지 않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처음 이렇게 섰을 때 자신이 드러날까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이 수업에서 한 가지만 모두 약속해주세요. 여기서 들은 정보나 일들을 밖에 나가서 아는 척을 하지 않겠다고 동의해주세요. 본인에게 어떤 충고나 조언도 하지 않겠다고 모두 약속해주실 수 있으시죠?”

모두가 동의의 고개짓을 했다.

박감독. “연기를 트레이닝 하는 공간은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연기는 남을 속이는 것 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일어난 것 처럼, 다른 사람에게 감정적 전환을 이루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고도의 집중과 편안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내서 연기를 하는 것을 정서적 기억 이라고, 흔히들 메소드 연기라고 합니다.”권삼석과 김미자의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가 시작 되었다.

김미자의 미안해 를 하자 권삼석은 고마워 라고 답했다. 그리고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가 이어졌다.

처음은 탁구 하듯이 미안해 와 고마워, 사랑해 가 리드미컬 하게 왔다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권삼석이 미안해 라고 말하고 김미자가 사랑해 라고 말하는 데 

권삼석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맞은 편에 있던 김미자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고, 갑자기 강의실의 공기가 날이 선 것 처럼 팽팽하게 흘렀다.

박감독은 몰입해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둘은 계속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라는 말 을 하고 있었고 그 들만의 공간이 있고 그들과 우리 사이에 어떤 얇은 막이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제서야, 박감독은 둘의 연기를 중단시켰다.

박감독. “김미자 선생님은 뭐가 보였나요?”

김미자. “선생님이 미안해. 라고 말하는 데 우리 어머니가 보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 공부를 하고 싶은 데 학교에 보내달라고 하는 데 어머니가 미안하다고 하면서 못 보내주셨어요. 그때 그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다른 인물로 바뀌어 가고…”

박감독. “그때 여기에 있는 다른 분들이 보였나요?”

권삼석. “아니요.”

박감독. “그렇습니다. 이렇게 집중하고 있고 둘 사이의 대화에 듣는 연기만 하기만 하더라도 이 두 분 사이에는 다른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여기 배우들과 관객들 사이에 벽이 만들어집니다. 관객들은 이 두 분이 그들 세계에 사는 동안 집중해서 그 연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 단어만 이야기 하고 있어도 우리는 팽팽한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박감독. “권삼석 선생님이 잘 받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김미자 선생님이 이렇게 보내시면 그 에너지를 받아서 집중해서 다시 자극을 돌려주십니다. 그래서 김미자 선생님도 듣는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감독, 나 들어라고 하는 소리야?’

권삼석은 정말 맑아 보였다. 크게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워 하거나 뒤로 숨지도 않아 보였다. 그 뒤로, 박준철이 나와서 권삼석과 씬을 했고, 이소진 선생님이 나와서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를 했다.

이소진 선생은 계속 미안해요, 고마워요. 내가 미안해. 이렇게 규칙을 어겼다. 그리고 계속 자기 이야기를 했다.

박감독.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의 사적인 이야기는 듣는 게 불편합니다. 선생님의 그 마음이 충동이 될 때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로 해주세요.”

까칠하기는. 저렇게 하면 욕먹을 것 같은데.

이소진 선생은 끙 하고 한 번 참고는 권삼석과 장면을 했다. 그러다가 눈물이 터졌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하다가 계속 눈물이 나왔다. 시집 간 딸에게 미안한 일이 떠올라서 그랬다고 했다. 이소진 선생은 화장을 고치러 가겠다고 나갔고, 수업이 끝날 때 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스타니슬랍스키 의 '배우수업' 의 서술방식을 따랐습니다.)

p.s. : 이 밖에도 즉흥을 통한 대사 게임, 말하지 않고 자극을 주기, 오디션, 리허설 훈련등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있다. 대학에서 연기연출 수업을 할 때는 심화 학습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사실주의 연기와 다른 연기도 하기도 한다. 영화 연기나 지금 현업 감독들의 연기, 홍상수 감독의 연기 연출에 대한 이야기도 따로 할 기회가 있을것 같다. 파스빈더의 연기연출론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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